항목 ID | GC04100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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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象王山大城 |
이칭/별칭 | 주류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봉운로 951-125 |
집필자 | 서정석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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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상왕산 대성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봉운로 951-125[원평리 394-1] |
성격 | 성곽 |
양식 | 석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1m~2m[성벽 잔존 높이]|2,19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에 있는 석성.
[건립 경위]
상왕산 대성(象王山大城)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1619년(광해군 11)에 편찬된 서산 지역 읍지(邑誌)인 『호산록(湖山錄)』에 “상왕(象王)이 쌓았다는 전언과 함께 1597년(선조 30) 정유년에 이시언(李時彦)이 증축하려다 그만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위치]
서산과 예산의 경계를 이루는 가야산[678m]의 북쪽 끝 상왕산에 자리한다. 서산시 운산에서 예산군 덕산으로 통하는 지방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고풍저수지를 지나 서산 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이 위치한 곳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직진해서 1㎞쯤 더 가면 길 우측으로 상왕산 대성이 보인다. 상왕산 대성에서 북쪽으로 500m 거리에 서산 마애삼존불상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 산자락에는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사적 316호]가 위치한다.
[형태]
둘레는 2,190m이다. 성벽은 자연할석을 이용하여 외면(外面)만 맞추면서 조잡하게 축조하였으며, 면석과 면석 사이의 틈새는 주먹 크기 정도의 쐐기돌로 메우고 있다. 자연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협축으로 축조한 구간도 있고, 편축으로 축조한 구간도 있다. 대체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서남쪽 모퉁이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서남쪽 모퉁이가 상왕산의 최고봉을 지나는 반면에 북벽은 상왕산의 북사면에 형성된 계곡부를 지나고 있어, 전체적인 성내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低)형으로 되어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현황]
상왕산 대성은 성벽 전체를 돌로 축조하였는데, 2011년 현재 대부분이 붕괴되어 있는 상태이고 극히 일부만 남아 있다. 따라서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는 구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에서도 성벽 상부는 붕괴되어 대체로 1~2m 정도의 높이만 남아 있다.
성내의 부대시설로는 성문과 건물 터, 우물 터 등을 들 수 있다. 성문은 서문지가 평문식(平門式)의 형태로 뚜렷하게 남아 있으며, 남문지도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 터는 6개소 정도가 남아 있는데, 산성의 규모에 비해 건물 터가 많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성내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모두가 조선 시대 기와편과 자기편이다. 우물 터는 지금도 물이 샘솟고 있다.
최근에 성내에서 가장 중심되는 부분에 청소년 수련원이 들어서 그 과정에서 건물 터의 일부는 파괴되었고, 성벽도 일부가 절단되었다. 2006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이 지표 조사를 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상왕산 대성은 높은 산봉에 자리하고 있어 농성에 적합한 구조를 하고 있다. 조선 시대 이시언이 증축하고자 할 때에도 군사들이 산이 깊고 길이 멀어 출입이 곤란하다 하여 좋아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혼란기에 피란용으로 축조된 산성으로 파악된다. 또한 『호산록』에 근거하여 백제 주류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