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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23
한자 鐵器時代
영어음역 Cheolgi Sidae
영어의미역 Iron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이상균

[정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철제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한 시기.

[개설]

우리나라에서 철기 시대는 B.C. 3~2세기부터 A.D. 300년까지의 시기이다. 고대왕국이 정립되기 이전의 성읍국가, 연맹왕국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청동기가 점차로 소멸되고, 중국으로부터 철기가 도입되어 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한다. 이 시기에는 철제 무기류는 물론, 철제 농구와 더불어 우경이 시작되어 농업 생산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철기 시대 한반도 중·남부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성립되었으며, 이중에 고창 지역은 마한에 해당되고 있다. 마한은 목지국을 포함한 54개 소국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가운데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이 고창에 있었던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마한과 관련된 유적은 최근에 서해안 고속국도 건설부지 내에서 주거지와 함께 주구묘[주구(周溝)라고 하는 도랑을 둘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독무덤[옹관묘] 등의 분묘 유적이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우평리, 남산리, 신덕리, 교운리, 봉덕리, 석교리, 신송리, 낙양리, 성남리 유적 등에서 조사된 바 있다. 주구묘는 성남리, 남산리, 예지리, 만동, 봉덕리, 광대리, 도산리 유적에서, 독무덤[옹관묘]는 예지리, 성남리, 남산리, 신덕리, 송룡리 등에서, 돌덧널무덤[석곽묘]은 신덕리, 널무덤[토광묘]은 예지리 유적에서 조사되었다.

[주거지]

고창 지역의 주거지는 대부분 낮은 구릉상에 모여 있으며, 밭 경작에 의해 경사가 낮은 평평한 곳이 많다. 주거의 형태는 주로 방형과 장방형을 이루며, 경사가 낮은 곳으로 배수 시설이 있다. 주거지에서는 장란형 토기[길쭉한 달걀 모양 토기], 단경호[목짧은 항아리], 장경호[목긴 항아리], 발형 토기[바리 모양 토기] 등 각종 토기와 더불어 방추차, 화살촉, 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 시설로는 4주식, 화덕자리, 벽구 시설, 칸막이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주거지는 서해안 고속국도 건설 구간, 고창과 장성 간 고속국도 내에서 조사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거 유적은 우평리, 남산리, 신덕리, 교운리, 봉덕리, 신송리, 낙양리, 성남리, 석교리Ⅰ, 석교리Ⅲ 유적에서도 조사되었다. 고창 주변의 부안 지역에서는 부곡리, 장동리, 신리 등, 영광 지역에서는 마전, 군동, 하화, 강변 유적 등을 들 수 있으며, 주거의 형태와 구조 등에 있어서 고창과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구조의 주거지는 마한의 특징적인 형태이며, 분묘도 유사한 것들이 분포하고 있다.

[묘제와 출토품]

고창에서의 묘제는 돌덧널무덤[석곽묘], 독무덤[옹관묘], 널무덤[토광묘], 주구묘가 존재한다. 독무덤[옹관묘] 는 예지리, 성남리, 신덕리, 송룡리 등이고, 석곽묘는 신덕리, 토광묘는 예지리 유적에서 조사되었으며, 칠암리 고분은 장고형 분구묘[전방 후원분]로 추정되고 있다. 주구묘는 성남리, 예지리, 만동, 봉덕리, 광대리, 도산리 유적에서 조사되었다. 고창 지역 주구묘의 주구 내에서는 각종 토기와 더불어 고리손잡이 큰칼[환두대도], 고리손잡이 작은칼[환두소도], 철모(鐵矛), 철겸(鐵鉗), 목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주구묘의 입지는 일반적으로 낮은 구릉 대지 위에 위치하며, 분구나 매장 주체부가 유실된 경우가 많다. 또한 유물이 많지 않으며, 발견된 유물도 파손된 것이 대부분이다. 주구묘는 다장의 형태를 띤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고 있어 영산강 유역의 옹관 고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주구묘는 근래에 이르러 조사 예가 증가하고 있다. 서해안 고속국도 전라북도 구간 내에서는 고창 지역 외에도 부안 신리·부곡리·대동리·하입석리, 전라남도 구간 내에서는 영광 군동·원당·하화, 무안 인평리, 나주 용호 고분군, 함평 순촌 유적 등 주로 서해안을 따라 발견되며 군집을 이룬다.

특히 예지리의 독무덤[옹관묘] 에서는 조형토기[새모양 토기]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조형토기는 문헌에서도 관련된 기록이 보이듯이 장례와 관련한 의식에 사용되었다. 조형토기는 영혼 불멸 사상에 의한 피장자의 승천과 관련하여 장례 후에 동시에 안치된 것으로 보이며, 제사장이나 수장급의 중요 인물이 소지하여 제사를 집행할 때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조형토기는 서해안 지역에서는 서천 오석리, 익산 간천리, 영광 군동(라) 유적의 무덤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무덤이 아닌 전주 송천동 A지구의 4호 주거지, 완주 상운리 유적의 주거지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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