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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869
한자 靈塔寺
영어공식명칭 Yeongtap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로 139-33[성하리 산67]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찬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통일 신라 말엽 - 영탑사 도선 국사가 창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798년 - 영탑사 중건[1798]
중수|중창 시기/일시 1911년 - 영탑사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28년 - 영탑사 중건[1928]
중수|중창 시기/일시 1985년 - 영탑사 대웅전 건립
최초 건립지 영탑사(靈塔寺)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로 139-33[성하리 산67]
현 소재지 영탑사(靈塔寺)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로 139-33[성하리 산67]지도보기
성격 대한 불교 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수덕사(修德寺)의 말사(末寺)
창건자 도선 국사
전화 041-356-3204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 사찰.

[개설]

영탑사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의 연화봉에 위치한 대한 불교 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소속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제7교구 수덕사(修德寺)에 속한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영탑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나 통일 신라 말기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 후기 보조 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중수하였으며 그 후 1798년(정조 2)에 연암당(鍊岩堂) 지윤(智允)이 중건하였다. 1911년에 신도들이 중수하였으며, 1928년에 이민동이 노전(爐殿)을 중건하였다. 영탑사는 원래 대웅전이 없었는데 1985년 30평[99.17㎡] 규모의 대웅전 건립을 시작하여 1990년에 완공하였다. 1992년에는 화재로 노전이 소실되었으나 최근에 복원되었다. 2010년에 산신각을 승려 초운이 신축하였다.

[활동 사항]

영탑사는 여러 모금 활동, 환경 보호 활동 등 자비와 생명사랑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2016년 현재 영탑사의 주지는 초운이다. 19년 전 영탑사 총무로 있다가 주지로 부임하였다. 현재 신도는 약 800명 정도로 면천면 일대에서 불도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내의 중앙을 통과하는 계류를 경계로 남서쪽에 대웅보전이 있고 북동쪽으로 요사, 산신각, 유리광전, 석탑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의 유리광전 안에는 약사여래상이 양각되어 있다. 요사의 수미단 위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지금의 산신각은 자연석 기단에 초운 주지가 2010년에 신축하였다.

[관련 문화재]

영탑사는 보물 제409호 당진 영탑사 금동 비로자나불 삼존 좌상(唐津靈塔寺金銅毘盧遮那佛三尊坐像),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1호 영탑사 약사여래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 영탑사 칠층 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9호 영탑사 범종(靈塔寺梵鐘)이 있다.

[관련 이야기]

영탑사가 있는 상왕산 연화봉 꼭대기에 약 4m쯤 되는 바위가 솟아 있다. 이 바위 중간에 넓은 빈 자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마치 의자의 등받이 모양 형태로 되어 있다. 바위 전체로 보면 커다란 의자 형상이다. 이 등받이 모양의 바위 정면 일부를 다듬어 예서체로 '依斗岩(의두암)'이라 새겨 놓았고 좌측 아래쪽에는 '人道正一(인도정일)'이라 새겨져 있다. 이는 1887년(고종 24)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1835~1922]이 새긴 것이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북쪽 서울을 바라보고 임금님의 만수무강과 나라가 융성하기를 기원한다."라는 '每依北斗望京華(매의북두망경화)'라는 글자를 줄여서 바위에 조각한 것이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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