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307
한자 敎育
영어음역 gyoyuk
영어의미역 education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기수

[정의]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개관]

교육은 인간형성의 과정이며 사회개조의 수단이다. 바람직한 인간을 형성하여 개인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서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나날을 보내게 하며 나아가 사회발전을 꾀하는 작용인 것이다.

청주는 충청북도의 교육, 문화, 경제의 중심이자 도청소재지로서 충·효·예를 숭상하는 충절의 고장이며, 국토의 중심지로 중부권 개발을 선도하는 교통의 요충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문화 발상지로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평생학습 도시, 과학 문화도시로 선포되는 등 미래를 대비한 교육활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10월말 현재 인구 62만여명인 청주시의 교육기관 현황은 유치원 93개, 초등학교 52개(분교 1개 포함), 중학교 27개, 고등학교 27개, 특수학교 3개 등 총 학생수는 12만4천여명이고 교원수는 5천5백명에 이른다.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경우 청주교육대학교를 포함 총 4개의 대학이 있으며 총 5만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현황]

(1) 유아교육

유아교육은 인간생애에 있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형식적 교육으로 교육대상인 만 3~5세에 유아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유아기의 발달이 유아간의 성숙과 사회 문화적 환경에 따라 개인차가 크며, 발달속도가 연속적, 점진적이기 때문에 유아교육이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면서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정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유아교육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1907년 학무국이 보통교육 및 유치원 교육에 관한 사항을 다루면서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1908년 한성고등여학교에 부속유치원이 처음 설립되고 관립 및 사립유치원 교육이 시작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교육법(1948년), 교육법 시행령(1952년), 유치원 시설 기준령(1962년), 유치원 교육과정령(1969년)이 제정 공포되어 유치원 교육의 기틀이 잡혔고, 1970년대에는 유아의 취학전 교육수요가 급증하게 됨으로써 유아교육 기관의 확충과 더불어 일부 유치원의 공교육화가 추진하게 되었다.

1980년대 유아교육 진흥법과 유아교육 진흥법 시행령이 제정되었으며, 1991년에는 교육법 제148조에 의해 유치원 취학 연락이 만 3세로 하향 조정 되었다.

청주의 유아교육은 기본생활습관 정착, 놀이중심교육, 통합교육,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협력공동체로 함께 하며, 특히 효생활 문화와 자기 주도적 능력의 신장, 창의성 개발 및 개별화에 중점을 두고 활동중심 통합적 수준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1929년 청주상당유치원이 사립으로 설립되었으며 유아교육의 공교육화에 따라 1978년에는 주성초등학교 등 3개 초등학교에 병설유치원을 시작으로 연차적인 취원 기회의 확대로 2004년 말 현재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포함하여 총 93개 276학급 7천1백여명이 재학하여 그동안 양적 확대와 질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2005년도 현재는 공립유치원 47개, 사립유치원 48개로 총 95개원으로 학급 수 283, 원아수 7,484이며 단설유치원은 산성유치원(7학급), 덕성유치원(5학급), 남성유치원(5학급), 서원유치원(5학급)이다.

(2) 초등교육

초등교육은 개화기 이전의 서당 교육을 효시로 1906년 8월 보통학교령에 의해 보통학교로, 1938년 조선교육령에 의해 심상소학교로, 1941년 소학교령에 의해 국민학교로 바뀌었다가 1996년 3월 1일 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청주시내 초등학교는 1900년대 청남학교(1904년)와 주성초등학교(1907년) 2개교를 시발로 2004년말 현재 52개교(분교 1개교 포함) 1천7백여 학급에 6만1천여명의 학생이 학습하고 있다.

1910년대 개화기 이전의 초등교육은 청주군(지금의 청원군 포함)에 70개 450명을 가르치는 서당이 있었고 주로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통감(通鑑)』, 『소학(小學)』, 『사서삼경(四書三經)』, 『당송문(唐宋文)』 등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서당관리에 관한 훈령으로 다스려 왔으나 1908년 서당금칙을 공포하여 서당의 운영과 교과내용까지 일본인의 통제에 들어갔다.

1907년 4월 1일 청주공립보통학교는 학부령에 의하여 청원군청 부속 소건물에서 개교하였고 12월에 신 교사를 지어 이전하였다. 수업 연한은 당시 보통학교 4년이었고 남학생만 수용하다가 1927년 4월에 폐교된 보성여학교 학생을 수용하여 처음 여학생을 가르쳤다. 이후 일본인이 교장으로 임명되었고 초창기 아동 수는 70명, 교사 1명과 부교원 1명이었다. 1937년에 영정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을 바꾸었고 1943년에 청주 주성국민학교로 개칭한 후 현재의 주성초등학교로 다시 개칭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민영은 청주사립보성여학교를 운영하다 학교를 청주공립보통학교에 병합한 후에 1917년 폐교하였다. 이후 1925년 7월 20일 청주공립보통학교는 여자부를 분리수용하기 위해 청주공립제2보통학교로 1933년 5월 29일 분리, 개교하였고 이 학교는 여자만을 수용하는 보통학교가 되었으며 현재의 교동초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한편 상당구 문화동 4번지[대성로 108]에 일본인 자녀의 교육을 위해 1915년 10월 1일 설립된 동정학교는 광복전까지 동정국민학교로 지속되다가 광복 후 중앙국민학교 그리고 현재 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사립학교로는 1904년 방홍근이 광남학교(廣南學校)를 설립하였고 1909년 8월 청남학교로 개편되었으며 대성보통학교는 청주지역의 교육사업가인 김원근(金元根)[1886~1965], 김영근 형제가 기존의 사립학교를 인수하여 1924년 대성보통학교로 인가받아 새로 출발한 학교이고 오늘날 학교법인 청석학원의 모태가 되었다.

1938년 제3차 교육령으로 인해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명칭이 각각 심상소학교로 변경되었고 소학교령에 의하여 수업 연한 4년의 보통학교를 6년제 소학교로 존속시켰으며 조선어는 정과에서 없애고 모든 교육과정을 일제와 같이 한다는 내용이다.

이 당시 석교국민학교(1937년 3월 31일)가 남녀공학으로, 청주사범학교 부속 국민학교(1941년 4월 20일)가 석교국민학교 교실을 일부 빌려 개교하였다.

1938년 청주공립보통학교는 청주공립영정 심상소학교로, 제2보통학교는 청주수정 심상소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1941년에 다시 청주공립 영정국민학교와 청주공립수정국민학교로 바뀌어 남녀공학으로 개편되었다.

일제의 강압정치는 사립학교를 허용하지 않아 대성보통학교는 21회에 걸쳐 946명의 졸업생을 내고 폐교 되어 영정학교로 흡수되었다. 청남학교는 1942년 지금의 영운동 교사로 이전하여 1945년 4월 1일 공립학교로 전환되어 현재의 청남초등학교에 이르고 있다.

광복당시 청주에는 영정국민학교(주성초등학교), 석교국민학교, 동정국민학교(중앙초등학교), 청남국민학교, 사범학교 부속학교와 의무교육 확대로 청주의 동쪽에 중앙국민학교, 서쪽에 한벌국민학교, 남쪽에 남성국민학교, 북쪽에 덕성국민학교를 설립하게 되어 청주 동서남북으로 균형을 이루어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경제개발 계획과 근대화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함으로써 취학 아동수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1960년대 들어 청주 서부지역에 서원국민학교(1963년)가 설립되었고 종교학교인 삼육국민학교(1963년), 사립학교로는 1965년 대성국민학교, 북동지역인 우암동에 우암국민학교(1966년)가 설립되고 운호학원에서 사립학교인 운호국민학교(1966년)가 각각 개교하였다.

서남부 방면인 모충동에는 한벌국민학교에서 분리하여 모충국민학교(1968년)가 개교하여 1960년까지 청주시내 초등학교가 9개교에서 1960년대 후반에는 15개교로 증가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청주의 동부방면에 용담국민학교(1971년), 서북부 방면에 주성국민학교, 덕성국민학교, 우암국민학교의 학생들을 이관하여 운천국민학교(1974년)를 개교하였고 청주내덕국민학교(1977년), 창신국민학교(1978년)가 각각 개교하였고 1976년 삼육국민학교는 폐교되었다.

1970년대 말에는 청주시내에 초등학교가 19개교로 증가하였다. 또한, 학생수도 많은 증가를 보여 학급수가 증대되어 대규모 학교로 되었으며 학생수도 법정 정원 60명을 초과하여 80명에서 심한 경우 108명까지 수용하여 교실부족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청주초등교육의 목표는 세계화, 지방화 교육으로 대별된다.

조기 영어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초등학교에 특활영어시범학교를 지정 운영하였고 1990년대 사직초등학교 교육방송, 북일초등학교 영어특활 연구 시범활동과 주성초등학교, 북일초등학교의 어학실 설치, 복대초등학교와 청주교대 부속초등학교에서 영어 교과실험이 시범적으로 실시되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1990년대는 교육자치의 시대가 열리면서 충청북도 교육위원회가 개원하여 경직된 중앙집권제로부터 벗어나 주민의사에 의한 교육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1996년 3월 1일에는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3) 중등교육

청주에 중등학교가 설립된 것은 1911년 11월 개교한 청주공립농업학교로 지금의 청주농업고등학교이다. 1923년 4월 일본인 여자중학교로 청주공립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1924년 4월에 청주공립보통학교(지금의 청주중학교청주고등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35년 5월에는 청주상업학교(지금의 청주대성고등학교대성중학교)가 설립되었다.

청주공립농업학교는 조선교육령이 발효된 후 1911년 6월 14일에 설립인가를 받고 지금의 북문로1가 청원군청 후관에서 일본인 미야모토(宮本政藏)를 초대 교장 임명하고 11월 1일 개교한 충북 최초의 중등학교였다.

학교 교육의 목표는 당시 학칙 제1조에서 “조선인을 충량한 일본인으로 만들고 일본어를 습득시켜 되도록 적은 경비로 농림업에 종사케할 실업교육을 한다.”로 밝히고 있는데 수업 연한은 2년이었고, 학생정원은 학급당 50명으로 총 100명이었으며 수업료는 무료였다.

1912년 6월 22일 실습지를 따라 현재의 사직동 청주여자중학교 자리로 옮겼고, 1920년 9월 1일부터 3년제로 개편하고 월 70전의 수업료를 받았다. 1923년 3월 31일에 다시 5년제로 학제를 고치고, 4월 30일 현재의 영동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자리로 2차 이전하고 1924년 4월 26일 교명을 충청북도 공립농업학교로 개칭하였다.

1937년부터 학급당 50명씩 10학급 500명으로 정원을 늘렸으며, 1938년 9월 30일에는 현재의 교사인 내덕동 산 1번지로 이전하였고 기존의 농과, 임과, 수의축산과 등이 현대적 감각에 적합한 농업유통정보과, 산림환경자원과, 골프환경과, 식품가공과, 조경과로 개편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청주여자중학교청주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던 청주고등보통학교는 1924년 4월 19일 고등보통학교의 설립인가를 받고 5월 5일 청주고등보통학교의 개교식과 입학식을 청주농업학교 구 교사인 지금의 사직동 청주여자중학교 자리에서 거행했으며 7월 14일 5년제 고등보통학교 각 학년 2학급의 학제 인가를 받았다.

1925년 4월 관립에서 청주고등보통학교로 변경되어 도립으로 이관되었고 1926년 4월에 신축한 본관 2층으로 이전하여 1929년 3월 6일 제1회 졸업생 49명을 배출했다.

청주상업학교는 1924년 사립 대성보통학교를 만들어 청주에 육영 사업을 펼쳤던 김원근, 김영근 형제는 다시 중등 교육의 필요를 절감하고 상업학교를 설립키로 하여 1935년 5월 5일 청주공립보통학교의 교사를 가교사로 하여 1학년 60명으로 개교식과 입학식을 거행하여 출범했다.

초기 수업 연한은 5년 5학급으로 총 250명이 재학하였고 1936년 6월 25일 지금의 내덕동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1951년 8월 31일 청주상업학교청주상업고등학교대성중학교로 분리되었다. 2002년 3월 1일 청주상업고등학교는 교명을 청주대성고등학교로 개칭하였다.

청주고등여학교는 1923년 4월 21일에 일본인 여자중등학교로 개교하여 광복과 함께 소멸한 학교인데, 초기에는 매 학년 1학급의 학생 중 4분의 1정도가 한국인 학생이었다.

교지는 청주여자고등학교 자리였던 상당공원 옆이며, 1938년에 한국인 학생을 위한 여자중등학교가 설립된 뒤에는 청주제1공립고등여학교로 바뀌었고, 한국인 학생은 극히 소수였다.

청주에서도 사범교육을 위해 1923년 3월 13일 설립인가를 받고 4월 30일에 수동에 있던 수위대 영사를 빌어 도립 사범학교가 설립되었다. 이후 사창동 종묘장 건물, 청주고등보통학교의 강당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1929년 도립 사범학교의 폐지 시책에 따라 폐교하였으며 그동안 졸업생수는 2년제, 3년제를 합하여 총 6회 178명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후 교사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관제를 개편하여 1941년 4월 1일 관립 청주사범학교를 설립하여 초창기에는 청주농업학교고 일부를 가교사로 하여 심상과 1학년 2학급으로 출발하였다. 후에 현재의 청주교육대학교 자리로 옮겼으며 광복전까지 단기 강습과 310명, 강습과 120명을 일선 교사로 배출하였다.

1938년 4월 한국인 여자중학교인 제2고등여학교가 지금의 청주여자중학교 자리에 설립되어 종래의 청주고등여학교는 청주공립제일고등여학교가 되었고, 1939년 4월에 일본인 중학교인 제이중학교가 지금의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자리에 설립됨에 따라 청주공립중학교(1938년 교명 변경)는 청주제1공립중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1945년 3월 31일에 청주여자상업학교가 대성보통학교 자리에 개교하였다.

광복 당시 청주의 중등학교는 학교수 15개 학급수 107학급, 학생수 8,630명이었다. 청주농업학교, 청주제1공립중학교, 청주상업학교, 청주제2중학교, 청주사범학교, 청주제1공립고등여학교, 청주제2공립고등여학교, 청주여자상업학교 등인데 이중에서 일본인만을 수용하던 청주제2중학교, 청주제일고등학교는 광복과 함께 함께 사라졌다.

광복 후 공업계 중등학교로 청주공업중학교를 개교하였는데 야간 중학교인 청원중학교를 청주공업중학교에 병설하였고, 1949년에 세광중학교가 개교하고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청주제1공립중학교가 청주중학교로, 청주제2공립고등여학교청주여자중학교로 바뀌었다.

이후 1949년 11월 30일 새 교육법이 제정되어 교육법 제8조로 6년간 의무 교육이 밝혀졌고, 동81조에서는 수업 연한을 규정하여 중학교 4년, 고등학교 2년, 사범학교 3년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제도를 마련했고, 1951년 3월에는 이를 다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3년씩 분리하는 정책이 결정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분리에 따라 1951년 8월 31일에 청주사범학교에서 청주사범학교와 병설중학교가, 청주중학교에서 청주중학교청주고등학교가, 청주농업학교에서 농업고등학교가, 청주상업학교에서 청주상업고등학교대성중학교가, 청주공업학교에서 공업고등학교와 주성중학교가, 청주여자중학교에서 청주여자중학교청주여자고등학교가 분리되어 8교의 중학교와 6교의 고등학교가 생기게 되었다.

2004년말 현재 청주지역의 중학교는 27개 838학급에 약 3만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교원은 1,400여명에 이르며 고등학교는 27개 752학급에 약 25,000여명이 재학하고 있고 교원은 1,600명에 이른다.

(4) 고등교육

광복과 함께 청주에는 사학으로 대성학원이 청주상과대학으로 인가 받아 대학을 설립하였는에 이는 인구 3만인 청주에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건립된 사학이었다.

청주상과대학은 김원근, 김영근 형제가 나라를 빼앗긴 암흑 속에서 조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하며 보통학교와 남녀 상업학교를 세워 민족의 혼을 일깨워 오던중 광복과 함께 새나라 건설에 시급한 인재 양성을 위해 사재를 출연하여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청주 상과대학은 1949년 7월 20일 학생 정원 240명에 480명으로 증원 허가를 받았고, 11월 9일에는 다시 학생을 720명으로 증원과 함께 Ⅱ부 대학인 야간부를 인가 받았다. 1950년 5월 3일부터 청주상과대학에 초급대학이 부설되었고, 법학과를 증과 하였으나 1951년 3월 19일 1회 졸업생을 내고 폐교 되었다. 이후 1951년 7월 17일 교명을 청주대학으로 바꾸었으며 1954년 3월 21일 중부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대학원이 설립되었다. 이후1981년 3월 1일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고 2004년 말 현재 17,787명의 학생이 재적하고 있으며 교원은 273명이다.

1950년 5월 1일자로 도립으로 4년제 청주초급농과대학(중학교 5년, 대학 2년)이 인가되었고 이는 청주지역 최초의 관립대학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이 설립된 후 농업과 40명, 축산과 40명 입학정원을 가지고 학칙과 교육과정을 학생은 모집하였으나 한국동란으로 개교하지 못하고, 피난길에 올랐다.

2년제 청주초급농과대학은 개교한지 1년 5개월 만인 1953년 1월 29일 4년제 학부 대학인 청주농과대학으로 승격했으며 동시에 농학과 240명 축산학과 160명으로 증원되었고 임학과 160명이 신설되었다.

1956년 4월 23일 청주농과대학은 도립충북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설립후 4년 6개월 만에 종합대학교의 주축이 될 종합대학의 터전을 잡았다. 1956년 9월 현재의 개신동 충북대학교 자리로 이전하였고 1977년 9월 22일 국무회의에서 국립학교 설치령이 통과됨으로써 단과대학이었던 충북대학이 종합대학교로 출범하였다. 종합대학 승격 당시는 4개 단과대학(공과대학, 농과대학, 사범대학, 사회과학대학)에 입학 정원 1190명이었으며 2004년 말 현재 재적생 21,444명이고 교원은 686명이다.

서원대학교은 1968년 3월 9일 청주여자초급대학이 개교함으로써 탄생되었고 1970년 청주여자대학으로 개편되었고 1973년 청주여자사범대학, 1979년 남녀공학의 청주사범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88년 3월 1일 서원대학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92년 3월 13일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2004년 말 현재 9,333명이 재적하고 있으며 교원은 171명이다.

청주교육대학교는 1941년 3월 28일 청주사범학교로 설립되었고 1962년 국립학교설치령 개정에 따라 2년제 교육대학이 설치되었다. 1984년 3월 1일 교육법 개정에 따라 4년제로 승격되었다. 1993년 3월 국립학교설치령 개정으로 청주교육대학교로 개칭하여 초등학교 교원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재적생 현황은 2004년 말 현재 1,835명이고 교원은 64명이다.

청주전문대학은 1914년 4월 조선총독부 청주자혜의원 조산부 및 간호부 양성소를 설치하면서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 1945년 10월 충청북도립청주병원 부속 간호부 양성소 설립인가를 받았고 1948년 3월 충청북도립청주병원 부속고등간호학교로 승격되었다. 1953년 7월 청주간호고등기술학교로 개편되었으며 간호학교는 의료기관의 의료종사원 양성만이 아니라 각급 학교의 간호교사 양성에도 일익을 담당하였고 1974년 3월 1일 청주간호전문학교로 개편하였다.

이후 1978년 청주시 사창동에 교사를 신축하였고 1979년 청주간호전문대학, 1982년 국립청주전문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99년 명칭을 국립청주과학대학으로 개칭하고 2000년 2월 캠퍼스를 증평군으로 이전하였다. 재적생은 2004년 말 현재 2,406명이고 교원은 70명이다.

(5) 특수교육

특수교육은 장애자가 일반사회인과 공동생활을 하여 자주적 생활 능력, 사회적 적응 능력을 길러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으로 청주지역에는 청주혜원학교, 청주맹학교, 청주성신학교가 있다.

청주맹학교는 시각장애자 사립특수학교로 1967년 3월 8일 청주맹학교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학급으로 개교하였고 2005년 2월 24일 유치원 15회 초등학교 38회 중학교 38회 고등학교 37회 전공과 5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청주혜원학교는 정신지체자 공립특수학교로 1학급 학생 20명 교직원 4명으로 1980년 4월 23일 개교하였다. 2005년 2월 18일 유치부 19회, 초등부 20회, 중학부 17회, 고등부 14회, 전공과 8회 졸업식을 가졌다.

청주성신학교는 정서장애자 사립특수학교로 1988년 11월 23일 정서장애 아동을 위해 설립인가를 받았고 2005년 2월 17일 유치부 제16회 초등부 제11회 중학부 제8회 고등부 제5회 졸업을 거행하였다.

이와 함께, 특수학급은 1978년 주성초등학교에 설치를 기점으로 2005년 현재 유치원은 주성초등학교 1개 학급에 3명, 초등학교는 내덕초등학교를 비롯 24학급에 155명, 중학교는 청주남중학교을 비롯 12학급에 82명, 고등학교는 청주농업고등학교를 비롯하여 2학급에 59명이 각각 재학하고 있다.

(6) 평생교육

평생교육은 학습사회의 기초이므로 모든 국가는 평생교육을 장래 교육 정책의 중심개념으로 삼아 학교가 중심이 된 교육체제 하에서 모든 이들을 위한 평생 학습체제로의 개편을 위한 교육제도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평생학습사회는 폐쇄적인 학교교육체제와는 달리 다양한 학습 경험을 인정하고 허용하는 열린사회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학습사회론을 수용하여 평생학습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이념적 목표를 설정하고, 1999년 평생교육법을 제정하여 “학교교육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활동”을 평생교육이라고 규정함으로써 평생교육의 법적 기틀을 확립하였고, 평생교육센터 및 지역평생교육센터의 근거 마련을 통하여 평생학습의 전문화와 지역화를 도모하고, 사내대학 및 원격 대학 등 다양한 형태의 평생교육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청주지역의 평생교육은 각 지역별로 위치한 사회복지관에서 주부 대상의 컴퓨터교실, 노인대학, 아동을 위한 방과 후 교실, 아동청소년사회교육의 일환으로 유도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평생학습관으로는 중앙도서관, 청주시립정보도서관, 충청북도학생회관, 청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가 있으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학교시설을 활용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으로는 1996년 충북대학교의 시민주부대학, 여성대학이 청주시의 위탁교육으로 개강하였고, 청주대학교는 2005년 자격과정을 비롯하여 총 14개 과정에 84개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서원대학교는 1992년 대학교부설 평생교육원 설치 승인을 인가받아 3개 교육과정에 6개 교과목 196명의 입학생과 함께 개원하였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충청북도지역대학은 원격교육 형태의 평생교육기관으로 1987년 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충청북도지역학습관을 신축·개관하였다.

[의의와 평가]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로 교육정책 및 제도의 수립에 있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이나 행정은 근시안적이고 개편이 잦은 형태로 일관되어왔다. 이는 광복 이후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재정의 궁핍, 급속한 인구성장 및 교육의 팽창 등 여러 가지 내외적 요인에 따라 교육의 건전한 성장이 어려운 조건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려운 조건 아래에서도 양적 팽창, 민주적 제도의 도입, 교육투자의 증대,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화, 교육기술의 전문화 등 여러 면으로 성장해 왔으며, 이러한 성장 발전을 위하여 부단히 교육정책이 바뀌고 학제도 수정, 보완되었다.

앞으로는 이제까지의 혼란과 대증요법적 대응방식에서 벗어나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현재의 문제점을 점차 보완해갈 수 있는 안정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세부적인 많은 문제점과 개선책에 우선하여 대전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은 교육이 정치변동으로부터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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