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520
한자 淸錫學園
영어공식명칭 Cheongseok Academy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덕1동 36[대성로 29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동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연도/일시 1924년 5월 5일연표보기
설립자 청암(淸巖) 김원근(金元根)|석정(錫定) 김영근(金永根) 형제
대표 김락형(金洛馨)
전화 043-221-8109
팩스 043-221-8108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에 있었던 교육 기관.

[교육목표]

애국애족, 성실근면, 자립자활, 사회봉사, 솔선준법하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설립되었다.

[설립목적]

설립당시에는 교육을 통해 힘을 길러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나라를 구하고자(교육구국·敎育救國)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설립경위]

청석학원은 일제 강점기인 1924년 5월 5일 김원근(金元根)[1886~1965]·김영근 형제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하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일념으로 대성보통학교를 설립하면서 출범했다. 김원근·김영근 형제는 온갖 역경을 딛고 모은 재산을 민족교육을 위해 투자하였으며 이로 인해 청석학원은 민족사학으로 불린다.

[변천]

청석학원은 이후 1935년 청주상업고등학교(2002년 3월 1일 청주대성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1946년 청주대학교, 1951년 대성중학교(학제개편에 따라 청주상업고등학교에서 분리), 1959년 대성여자중학교, 1961년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1975년 청석고등학교를 차례로 설립했다. 그리고 1942년 공립에 병합되었던 대성초등학교가 1965년 부활됨으로써 7개교에 이르는 교육의 전당으로 발전했다. 특히 각 학교는 명문학교로 이름이 높으며 또한 청주가 일찍부터 교육도시로 불리는 것도 청주대학교청석학원 때문다.

청석학원은 법인명칭을 1935년 청주상업학교, 1945년 김해학원, 1948년 7월 12일 대성학원으로 사용하다 1991년 4월 11일 청석학원으로 변경하였다.

그동안 청석학원이 배출한 인재는 16만 여명에 이르며, 지역 사회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수많은 저명인사를 각 분야에서 배출했다. 특히 충북교육계는 20여 년 동안 청주대학교 출신이 이끌어 온 것을 비롯해 관계, 언론계, 체육계 등 지역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청석인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청석학원은 2004년 창학 80주년을 맞이했으며 ‘교육구국’, ‘교육입국’의 설립정신을 다가올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와 이념으로 승화시키고 발전시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황]

2005년 3월 현재 청주대학교, 청주대성고등학교, 청석고등학교,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대성중학교, 대성여자중학교, 대성초등학교 등 7개 학교를 경영하고 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6개교 152학급, 대학교 7개 단과대 25개 학부 5개학과, 4개 대학원 석사 53, 박사 13개학과에 총 학생정원 17,940명, 재학생 17,849명, 졸업생 165,313명, 교직원 수 1,000명에 이르고 있으며 수익사업체로 청석빌딩과 남선상사(도정 및 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석학원은 일제 강점기에 설립자 형제가 일제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모은 재산을 교육을 통해 힘을 길러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나라를 구하고자 모두 육영사업에 바쳐 설립되었다. 특히 학교설립에 들어간 재원도 무일푼으로 시작해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일군 순수한 민족자본일 뿐 아니라 독립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실시해 민족사학의 전형(典型)으로 평가된다.

대성보통학교와 청주상업학교,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설립에는 설립자가 실용교육을 통한 부국(富國)을 이루기 위한 애국, 교육관을 볼 수 있으며, 광복 직후 순수한 4년제 대학으로 청주대학교를 세운 것에서도 교육구국(敎育救國), 교육입국(敎育立國)의 일념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당시 인구 3만 규모의 조그만 지방도시에 4년제 대학이 세워진 것은 전례없는 일로 청주가 교육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에도 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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