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056
한자 權斗紀
영어음역 Gwon Dug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권두추(權斗樞)
생년 1647년연표보기
몰년 1684년연표보기
본관 안동(安東)
여원(汝元)
소한(素閑)
아버지 권우(權堣)
어머니 최유해(崔有海)의 딸
아내 이합(李柙)의 딸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원(汝元), 호는 소한(素閑)이다.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을 역임한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최유해(崔有海)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고, 부인은 이합(李柙)의 딸이다. 권두추(權斗樞)의 동생이고, 함경감사를 역임한 권익관(權益寬)의 아버지이다.

[활동사항]

1669년(현종 10)에 통덕랑(通德郞)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3년부터 사간원 정언과 사헌부 지평을 거쳐 사헌부 집의·성균관 사성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난 후 외직으로 서원현감이 되었다.

이 당시 서원현이었던 것은 고을 주민 박상한(朴尙韓)이 반역죄로 처형되면서 청주목이 일시 강등(1665~1674)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현감으로 재직 중에는 재결(裁決)을 신속히 하여 관아에 체송(滯訟 : 소송이 미해결로 정체됨)이 없었다고 한다.

내직으로 들어와서 부수찬이 되어 경연에 입시(入侍)하였을 때 문의(文義)를 조리 있게 분석하여 명석한 식견을 널리 알렸다. 1683년(숙종 9) 교리가 되어 더욱 직분에 충실하는 동안, 영부사 송시열(宋時烈)태조(太祖)의 존호(尊號)에 정륜소의(正倫昭義)를 가상(加上)함으로써 위화도회군의 위업을 현창(顯彰)하자는 소를 올린 일이 있다.

이 때 송시열의 주장에 반대하였는데, 송시열이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자, 마침내 신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고 교외로 나가 은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석정(崔錫鼎)이 지은 묘갈명이 전한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4.04 본문 내용 수정 영부사 송시열(宋詩烈)이 태조(太祖)의 존호(尊號)에 ->영부사 송시열(宋時烈)이 태조(太祖)의 존호(尊號)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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