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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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청원군청 근처에 있던 청주목 소속의 객관(客官)을 중수한 내력을 이정구(李廷龜)가 기술한 중수기. 청주읍에 부임한 한백겸(韓百謙)이 객관을 중수하였는데, 그 시말을 이정구가 기술해놓는 글이다. 목판(木版)으로 간행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奎章閣本)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인했다. 이정구의 『월사집(月沙集)』 37권, 5~7장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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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작성된 청주의 옛 지도. 「청주목지도」는 충청도지도 52장 중의 하나로, 36×25.5㎝ 크기의 채색 필사본 지도이다. 지도는 상단에 ‘「청주목지도」’라 하고 북쪽을 아래로 하여 남쪽을 내려다 본 형식이다. 지도의 중앙에 읍성을 배치하고 읍성을 우회하는 무심천(無心川)과 미호천(美湖川), 주변에 산지를 배치하였다. 다른 지도에서 흔히 보이는 건치연혁은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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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이후 영조(英祖) 시기에 저술한 것으로 보이는 『청주읍지(淸州邑誌)』. 조선 후기 영조(英祖)[재위1724~1776] 때 청주의 역사·인문(人文)·지리적 내용을 총괄하여 기술한 『청주읍지(淸州邑誌)』로 필사본(筆寫本)이다. 표지 제목을『낭성지(琅城誌)』라 했으며, 제1장 첫째 줄에 읍지(邑誌)라 기록했다. ‘낭성(琅城)’은 청주를 일컫는 이름중의 하나이다. 내용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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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에 중국의 주자(朱子)가 『대학(大學)』에 대한 자세한 해설(장구(章句))을 붙인 내용에 혹문(或問)이 첨가되어 있으며, 청주목(淸州牧)에서 간행된 책. 중국 송나라 때 주자가 당시 번성하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는 새로운 유학(儒學: 性理學)의 체계를 세우면서, 『예기(禮記)』에서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두 편을 독립시킴으로써, 『대학(大學)』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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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인 청주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시습(金時習)[1435~1492]의 시문집(詩文集).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저자로 유명한 김시습의 각종 시문(詩文)을 모은 것으로, 이 문집에 나타나는 김시습의 사상은 당시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선양(抑佛揚儒)하는 추세와는 달리 유불공존(儒佛共存)적인 태도로 표현되어 있다. 시집 15권 4책(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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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문신 이승소(李承召)[1422~1484]의 시문집. 1514년(중종 9) 간행본, 1535년 간행본 2종이 전해온다. 1535년 간행본은 이수동이 충청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청주목(淸州牧)에서 총 15권으로 편집한 목판본(木版本)으로 제9권부터 제15권까지의 2책이 전해오고 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첫째, 시(詩)에는 미인도(美人圖)·병풍화(屛風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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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위경지(魏慶之)가 편찬한 시문집(詩文集)으로 1439년(세종 21)에 청주에서 판목으로 간행한 책. 이 책은 중국 송(宋)나라 때의 위경지가 편찬한 시문집으로 조선 초기에 집현전(集賢殿) 경연(經筵)에 1본(本)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 후 청주에서 1439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충청감사 윤형(尹炯)의 발문 “正統己未朝臣尹炯等…刊於淸州…正統四年 忠淸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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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申洬)[1600~1661]이 1660년(현종 원년)에 청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기근대책용(饑饉對策用) 농업서적. 이 책의 권말 간기에 의하면 “시경자구월하한(時庚子九月下澣)”이라 되어 있어 신속이 1660년(현종 원년)에 서원현감(西原縣監)으로 있을 때, 흉년을 만나 『구황보유(救荒補遺)』를 지어 1554년(명종 9)에 간행하여 배포된 『구황촬요(救荒撮要)』의 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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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때에 웅절(熊節)이 편찬하고, 웅강대(熊剛大)가 주해한 책으로 청주목에서 1488년(성종 19)에 목판으로 간행. 권말의 간기에 의하면, “홍치원년무신계춘일 승훈랑행청주교수김효정근발(弘治元年戊申季春日 承訓郞行淸州敎授金孝貞謹跋)”이라 하여 1488년 3월에 청주목에서 간행된 목판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1444년(세종 26) 8월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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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에서 발간한 시지. 1책 2권, 가로 19㎝, 세로 25㎝로 4·6배판이며, 상권에는 1편 자연환경부터 하권인 14편 인물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1976년에 발간된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20년간 전개된 시정 전반 및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 발전된 새로운 영역을 포함하여 각 분야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1997년 2월 20일에 간행되었다. 서술 범위는 선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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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청일전쟁 후 1894년 7월에서 1896년 2월까지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 갑오경장(1894~1895)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상실까지 약 15년간은 서울과 지방의 전 지역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청주지역도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청주도 1895년에서 1896년 사이에 공주부에 편제되었다가 충청북도로 개편되었다. 갑오경장 추진 배경의 하나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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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물건에 본래의 기능을 살리면서 조형미를 조화시키는 솜씨, 또는 그 제품. 공예는 인간생활 주변에서 쓰여지고 있는 가구, 그릇, 옷, 주택장식 등 생활용품이며, 이는 공예가 인간생활과 매우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공예는 일반 비품으로부터 장식품, 신앙물, 시설물에 이르기까지 아주 광범위하다. 신앙물은 장승, 신주, 불상, 석등, 석탑, 부도 등이 있으며 시설물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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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원(汝元), 호는 소한(素閑)이다.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을 역임한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최유해(崔有海)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고, 부인은 이합(李柙)의 딸이다. 권두추(權斗樞)의 동생이고, 함경감사를 역임한 권익관(權益寬)의 아버지이다. 16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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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인쇄된 흥덕사 절터와 고인쇄문화의 종합박물관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양병산 기슭에 위치하는 흥덕사는 고려 우왕 3년(1377)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며 세계기록유산인『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를 비롯하여『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 등을 금속활자로 간행한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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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강원도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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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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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청주읍성의 남문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옹성리(甕城里) 및 문외리(門外里)의 각 일부를 묶어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라 명명하였다. 1947년 일본식 동명을 폐지하고 남문로2가(南門路二街)로 바꾸었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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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도안현(道安縣)은 현재의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5 잡지 제4 지리2)에는 한주(漢州) 흑양군(黑壤郡)의 영현(領縣)인 도서현(都西縣)이라 하였다. 본래 고구려의 도서현(道西縣)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쳐 도서현(都西縣)이라 하였다. 고려 때 도안현(道安縣)이라 하여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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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일어난 동학계(東學系) 농민의 혁명운동. 1894년(고종 31) 3월 사회개혁을 위하여 1차 봉기하고,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기습으로 빚어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9월에 재봉기하여 1895년 초까지 삼남과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일대에서 관군, 일본군, 민보군과 전개한 전쟁이다. 청주는 남북접 농민군이 서울로 진군하는 길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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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백제 때 대목악군(大木岳郡), 신라 때 경덕왕(景德王)이 고쳐 대록군(大麓郡)이라 하였다. 고려 때 다시 목주군으로 고쳐 청주목에 속했던 2군(郡), 7현(縣) 중의 하나이다. 1172년(고려 명종 2)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성종(成宗) 때 달리 신정(新定)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려사(高麗史)』). 목주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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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에 소론(少論) 과격파들과 남인(南人)이 영조(英祖)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노론(老論)이 지지하는 영조의 즉위로 위협을 느낀 소론의 과격파들과 남인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曾孫)인 밀풍군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이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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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문화재는 크게 유형에 따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으로 나누고, 지정여부에 따라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구분한다. 청주시에는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문화재가 널리 분포되어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조선시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본영을 드나들던 출입문인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忠淸道兵馬節度使營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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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상호간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규율하는 법. 통치작용 중 입법 및 집행과 구별되는 사법은 형식적으로 파악하면 법원이 담당하는 작용이 되지만, 실질적으로 파악하면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당사자로부터의 쟁송의 제기를 기다려 독립적 지위를 가진 기관이 제3자적 입장에서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 제101조 제1항에서‘사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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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과 사창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저장미를 보관하던 창고 조선시대 지방관청 소속의 저장미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던 곳으로,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청주목 소속의 창고는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이 읍성 안에 있었으며, 서쪽으로 미호천(美湖川) 연변에 신원창과 금성창이, 북쪽에 오근창, 동쪽 멀리 청천창, 남쪽 멀리 주안창이 있었다. 이들은 세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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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청주는 전통시대 이래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많은 역사적 유산과 전통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다. 광복이후 시로 승격된 청주는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로서 지방행정의 중심지이고, 전자산업 등 첨단산업의 발달로 우리나라의 주요 공업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청주는 전통적으로 교육도시로 불릴 만큼 교육인구의 비중이 높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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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의 쉼터는 공원과 유원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공원은 어린이공원, 근린공원, 도시자연공원, 묘지공원, 체육공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민의 생활과 가장 관련이 깊은 공원은 근린공원과 도시자연공원과 체육공원이다. 그 이유는 어린이공원의 경우 아파트나 단독주택 지구의 어린이 놀이터이고, 묘지공원은 망자의 매장을 목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한편 청주시의 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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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동부에 위치한 구. 북서쪽은 청원군 오창면, 북동쪽은 청원군 내수읍, 동쪽은 청원군 낭성면, 동남쪽은 청원군 가덕면, 남쪽은 청원군 남일면, 서쪽은 흥덕구와 접하고 있다. 구청소재지는 상당구 우암동에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백제시대에는 상당현(上黨縣)[낭비성(娘臂城), 낭자곡(娘子谷)]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685년(신문왕 5)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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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제7대 임금 세조(世祖)가 1464년 온양온천의 행궁으로 가는 도중에 청주목에 머무른 사건. 조선왕조 제7대 임금 세조가 즉위 10년(1464) 봄에 종기를 치료하고자 온양온천의 행궁으로 가는 도중에 청주목의 초수리(椒水里)[현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와 청주목에 6일간 머무른 사건이다. 1464년 2월 21일부터 2월 26일까지 6일간 행해진 세조의 청주 행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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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제4대 임금 세종(世宗)이 안질(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1444년 청주목 초수리에 행차하여 머문 사건. 조선왕조 제4대 국왕 세종은 안질(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1444년(세종 26) 봄과 가을 두 차례 청주목의 초수리(椒水里)[현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에 행차하여 약 4개월간 머물렀다. 이 기간에 세종의 눈병은 일정한 치료 효과를 보아 초수 행차의 건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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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는 예부터 깨끗하고 수준 높은 교육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청주를 교육의 도시로 일컫는 데는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청주가 역사적인 교육도시라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청주백화점 뒤뜰에 우뚝 솟아 있는 국보 제41호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을 주목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새겨져 있는 명문이 교육도시 청주의 역사를 웅변으로 나타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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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어린이들의 학습을 위하여 중국 고전에서 선현들의 금언(金言)·명구(名句)를 편집하여 만든 것으로, 1454년 청주목(淸州牧)에서 새롭게(新刊) 목판인쇄의 형태로 대자(大字)로 간행된 책. 한문(漢文) 초학자가 『천자문(千字文)』을 배운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과 함께 기초과정의 교재로 사용된 책으로, ‘명심’이란 명륜(明倫)·명도(明道)와 같이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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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역사. 선사시대의 청주지역이 어떠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학술조사를 거친 곳이나 지표상의 채집된 유물을 통해 알려진 선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 주변은 대단히 완만한 구릉성 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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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와 숙박 및 공물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한 곳. 역은 참(站)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다가 1597년(선조 30) 통신만을 위주로 하는 파발을 두어서 변서(邊書)의 급한 전달을 임무로 하였던 곳이다. 신라 487년(소지왕 9) 우역(郵驛)을 설치하였고, 그 뒤 통일신라시대 이후 9주(州) 5소경(小京)이 설치되는 등 지방제도가 확립되고 중앙의 관리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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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 에 신라 웅주(熊州) 연산군(燕山郡) 영현(領縣)의 하나였다고 한다. 본래 백제 때 두잉지현(豆仍只縣)으로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연기현으로 고쳐 연산군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이 되었고,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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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燕山郡)은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문의면(文義面)지역으로, 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에 따르면, 본래 백제 때의 일모산군(一牟山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연산군으로 고쳐 고려에도 그대로 쓴다고 하였다. 연산군의 영현(領縣)은 연기현(燕岐縣)[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과 매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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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저장미를 보관하던 창고.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청주목 소속의 지방관청 소속의 창고로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이 읍성 안에 있었으며, 서쪽으로 미호천(美湖川) 연변에 신원창(薪院倉)과 금성창(金城倉)이, 북쪽에 북창인 오근창, 동쪽 멀리 청천창(靑川倉), 남쪽 멀리 주안창(周岸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청주목에서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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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줄여서『직지』는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이다. 원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直指心體)』, 『직지』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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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의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 남석교(南石橋)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옛 청주읍성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성안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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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하며 성리학, 주자학의 정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상의 변천사, 인물, 유적 모두를 포괄하는 용어. 유교가 우리나라에서 불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이념의 철학사상으로 부흥되는 것은 고려 귀족사회의 모순이 첨예화되는 13세기 후반부터이다. 지방 중소지주출신의 관료,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집단은 위화도회군 이후 조선 태조(太祖)를 도와 조선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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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이중(頤仲)으로 아버지는 이창수(李昌壽)이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66년에 문과 정시(庭試)에 병과 8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1731년에 청주목이 서원현으로 강등되고 서원현감으로 도임하여 근민헌(近民軒)을 창건하였는데, 이 근민헌은 후일 철종 말에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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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란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 축적되고 존재하는 문화이다. 청주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상대적인 문화 개념이다. 청주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화의 독자적인 완결성을 공간적으로 강조할 때 이런 문화단위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의 독자적 문화문법(文化文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디면서 내재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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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아버지는 장령(掌令)을 지낸 지전(池筌)이고, 남편은 통정대부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된 충의위(忠義衛) 정검(鄭儉)이다. 부인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효성스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하동정씨(河東鄭氏) 정검에게 시집을 가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피해 딸과 함께 마을 뒤 응봉산(鷹峯山)으로 피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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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정진원(情盡院)이 있던 터 원(院)이란 전국 각 역(驛)에 둔 숙박시설로 정진원(情盡院)이 이에 해당한다. 원의 설치목적은 공무연락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공적임무를 띤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었다. 정진원은 청주에서 회인-보은- 문의-부강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숙박시설이었다. 정진원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남쪽 남석교 건너에 있었다.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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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는 행위, 즉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지역적으로는 시민에게 삶의 질 향상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주민참여 속에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중앙과의 연계속에서 청주시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일을 추진하는 일체의 정치적 행위를 의미한다. 흥덕구 송절동의 경사진 지형에서 경사방향을 따라 만든 토광묘는 배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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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에 속한 향(鄕)의 하나. 주안향(周岸鄕)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의 청주목(淸州牧)에 속한 향(鄕)으로, 달리 주애(朱崖)라고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청주의 동남쪽 60리에 있으며, 문의(文義)와 회인(懷仁)을 지나 있다고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淸州牧) 방리(坊里)에는 주안면(周岸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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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에 속한 속현(屬縣)의 하나. 진주현(鎭州縣)은 진천(鎭川)의 옛 이름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地理)에 따르면 한주(漢州) 흑양군(黑壤郡)은 달리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하였다. 본래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흑양군으로 고쳤다. 금물노군(今勿奴郡)은 달리 만노군(萬弩郡), 수지(首知), 신지(新知)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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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에 속한 속현(屬縣)의 하나. 청당현(淸塘縣)은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안면(淸安面) 지역이다. 청당현은 달리 청연현(靑淵縣)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고려 초에 청당현으로 고쳐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으로 삼았으며, 후에 감무(監務)를 두어 도안현(道安縣)을 함께 다스리게 하였다. 1405년(태종 5) 백성이 적고 땅이 좁다하여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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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에 있었던 지방자치행정기관. 청원군을 대표하고 지방자치행정을 담당했던 기초자치단체기관으로 군청의 위치는 청주시에 있었다. 청원군청은 기초자치단체로 청원군의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관리하는 주체기관이었다. 즉, 청원군정을 운영함에 있어서 부자치단체장 등 보조기관과 소속행정기관, 하부행정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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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청주목 관아의 누각. 망선루는 객관(客館)의 동쪽에 있었는데, 옛 이름은 취경루(聚景樓)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1361년(공민왕 10)에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하였다가 이곳에 옮겨와 수개월 동안 머물렀었다. 도적이 평정되자 문과와 감시(監試)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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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1930년대 청주의 행정구역. 제2차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을 23부 337군으로 개편하였는데, 청주는 청주군이라 칭하며 공주부에 속하게 되었다. 제2차 갑오개혁(1894. 12. 17~1895. 7. 7) 때 칙령 98호에 따라 종래의 도(道)·부(府)·목(牧)·군(郡)·현(縣) 등의 행정구역이 폐합되어 전국이 23부 337군으로 개편되었다. 이 때 충청도는 충주부,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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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청주의 정치, 행정, 군사, 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조선시대의 석축읍성. 조선시대 축조된 청주읍성은 청주시의 최고 최대의 역사유적지이다. 청주의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 흔적을 시내 중심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청주읍성은 청주의 보금자리요 청주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이다. 청주읍성은 읍성의 나라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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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1930년 청주의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청주군 동면, 남면, 북주내면의 일부를 청주면으로 개칭하였으며, 1931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1896년 청주목이 청주군이 되면서 27면, 836동리로 편성되었고, 청사는 북주내면(北州內面) 서리(西里)에 위치하였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주군 동면, 남면, 북주내면의 일부를 떼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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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지방행정제도. 성종 대의 12목, 현종 대~고려 말까지 8목 중의 하나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나 국초에는 지방세력이 강대했던 반면 중앙 행정력이 극도로 미약했기 때문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고, 중앙에서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태조(太祖)는 지방세력이 강한 지역에 대한 조치로 주·부·군·현의 칭호를 고치고,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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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순조 26)에 청주목에서 일어난 괘서사건(掛書事件). 1826년 3월 16일 청주성 북문에 두장의 괘서(掛書)가 걸린 사건과 같은해 10월 초 청주목 관아에 괘서가 걸린 사건을 말한다. 청주북문 괘서사건은 충청병사 이겸회의 조사로 주모자 김치규(金致奎), 유치중(柳致仲), 이창곤(李昌坤) 등을 체포하고, 안성에 살고 있는 공모자 유성호(柳性浩)를 체포함으로서 일단락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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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도청소재지. 청주시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시대에 상당현(上黨縣), 일명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시대인 685년(문무왕 5)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고 757년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청주(淸州)로 지명을 고쳤고 983년(성종 2) 청주목이 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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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관아(官衙)와 민거(民居)를 둘러쌓은 성. 읍성은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우리나라 역사서로서 가장 오래된『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신라 685년(신문왕 5) 3월에 서원소경을 설치하고, 689년 윤(閏) 9월 26일에 서원경성을 쌓았던 기록이 있어 청주읍성의 전신은 아마도 통일신라가 구주오경제(九州五京制)를 갖추던 신문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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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의 동쪽 문이 있던 자리.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동문터는 개인문(開寅門 혹은 闢寅門)이라하였으며, 1910년대에 이른바 시구(市區) 개정사업 때 헐리었다. 동문의 안쪽에는 감옥과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이 가까이 있었고, 홍살문을 지나는 큰 길이 청주목 관아와 연결되었으며, 문밖에는 잉어배미라 불리던 논과 그 동쪽으로 문외리 마을이 있었다. 성문 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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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져 있는 명소 기행. 오늘의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 한다. 청주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노령산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은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 두 산자락 가운데 든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바로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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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北門) 자리에서 남문(南門) 자리에 이르는 큰길로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성안길은 일본식 명칭 본정(本町)[본정통]을 대신하여 최근에 새로 만든 지명이다. 예전으로 치면 청주읍성의 안에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읍성은 예로부터 청주의 사회, 경제, 군사,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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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에 속했던 속현(屬縣)의 하나. 청천현(淸川縣)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에 따르면 상주(尙州) 삼년군(三年郡)[현재의 충청북도 보은군] 소속이었다. 본래 살매현(薩買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궁예전(弓裔傳)」에 ‘靑州[或云靑川]’가 두 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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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와 충청남도를 합쳐 부르는 지명. 충주와 청주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지명으로, 1106년(고려 예종 1)에 처음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라 불린 이래 1395년(태조 4) 양광주(楊廣州) 소속 군현을 나누어 경기도라 하고 충청도와 분리하면서 몇 차례의 명칭 변동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충청도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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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지어진, 청주 또는 청주의 유적을 대상으로 지은 시 작품. 청주는 국토의 중심부로 땅이 비옥하여 호걸이 많이 나고 사대부가 살만 한 땅으로 여겨졌다. 그에 걸맞게 이곳을 지나는 시인이나 청주지역의 문사가 남긴 한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이어진 한시는 주로 청주 공북루(拱北樓)의 제영시(題詠詩)가 다수를 차지한다. 1362년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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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행정을 수행함에 있어 주민만족 행정서비스의 증진을 위해 행정계층과 지리적 범위를 조정하는 행위. 자치단체의 구역이란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권 또는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적 범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역은 지방자치단체가 존재하는 지리적 공간이며, 지방주민의 일상생활과 지방의 정치·경제·사회·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지방행정구역은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 지방행정을 둘러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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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도지역의 정치, 사상적 흐름을 주도했던 지성인 집단. 사림은 주로 15~16세기에 향촌사회를 중심으로 성리학적 교화와 학문적 심화를 주도했던 핵심세력이었다. 사림은 크게 기호사림과 영남사림으로 분류되어 학맥과 학문 성격이 비교되었고, 아직도 호서사림의 특성이 온전하게 정리되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호서사림은 특히 호란이후 산림인사들의 초치와 북벌론의 강조, 예학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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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목사.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역임했다. 재임당시 청주목의 산동 세 개의 면을 사재(私財)로 진휼하였다. 그 행적을 기려 비를 세웠으나 조정의 명령으로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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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죽들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수리시설. 화죽제언은 청원군 북이면 화상리와 화하리에 발달된 화죽들에 만들어진 제언으로 화죽들은 석화천과 미호천(美湖川) 사이에 발달된 들이기 때문에 홍수로 여러 번 유실되었다. 이에 제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1760년(영조 36) 편찬된『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청주목의 63개 제언 중 화죽제언이 중요한 제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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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에 속했던 속현(屬縣)의 하나. 본래 백제의 미곡현(未谷縣)으로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매곡(昧谷)으로 바꾸고 연산군(燕山郡)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초에 회인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에 포함된 2군(郡) 7현(縣) 중의 하나이다. 후에 회덕(懷德) 감무(監務)가 함께 관할하게 하였으나, 1383년(우왕 9) 따로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