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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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내에 있는 비석 대좌. 청주시내 중심가인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내 동쪽편 아래 화단에 ‘목사 이경여(李敬輿)[1585~1657] 선정비(牧使 李敬輿 善政碑)’가 있다. 그리고 이 선정비 오른쪽으로 15m 되는 지점에 머리를 서쪽으로 한 거북대좌가 1기(基) 남아 있다. 거북대좌 윗부분에 비석(碑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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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의 휴식이나 유락 등을 위한 시설이 되어 있는 공원이나 지역. 우리나라의 공원은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에 의거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연풍경지(自然風景地)를 보호하고 국민이나 주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경영 관리하는 자연지(自然地)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造景地)로 정의하는데, 전자를 자연공원, 후자를 도시공원이라고 한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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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은 인간이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속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통해 심신의 변화를 추구하고 다시 그 일상생활로 복귀할 것을 전제로 다른 지역의 제도, 풍습, 자연 등을 감상하며 배우고 견문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8세기 중국 고대 주나라때 편찬된 『역경(易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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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행원(行源)이다. 아버지는 양양부사(襄陽府使) 김수연(金秀淵)이며, 어머니는 좌승지 김희룡(金希龍)의 딸이다. 승지를 지낸 김세정(金世鼎)이 아들이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15년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정조(鄭造)·윤인(尹認)·이위경(李偉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고부천(高傅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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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청주읍성의 남문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옹성리(甕城里) 및 문외리(門外里)의 각 일부를 묶어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라 명명하였다. 1947년 일본식 동명을 폐지하고 남문로2가(南門路二街)로 바꾸었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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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동남단에서 흥덕구 모충동 북쪽사이에 있는 도로. 남주동(南洲洞)과 사직동을 연결하는 남사교에서 유래되었다. 동쪽은 상당로 남궁병원사거리에서 시작하여 서남쪽은 모충로 충효문 앞에서 끝난다. 폭은 15m로 중로 2류에 해당하며, 길이는 1,404m이다. 동쪽부터 서쪽까지 남북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철당간길, 성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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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의 북단에서 남단까지 연결되는 도로. 북쪽은 사직로 구고속버스터미널(지금은 대형 할인점인 까르푸가 자리잡고 있음) 옆에서 시작하여 남쪽은 남사로 중앙공원(中央公園) 남단 청주YMCA 앞에서 끝난다. 폭은 16~18m이며, 길이는 513m이다. 서쪽에는 서남로, 동쪽에는 중앙공원길이 평행하게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다. 남주로는 북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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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대한민국 독립기념비. 1949년에 1945년 광복과 1948년 정부수립을 경축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상당구 남문로2가의 청주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남쪽 출입구 앞 남향에 있다. 2단대석 위에 다시 거북대좌를 설치하고 그 위에 높이 206㎝, 폭 87㎝, 두께 42㎝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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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및 기록, 자료를 수집·정리·보존하여 독자들에게 이용하도록 운영하는 기관. 도서관은 설립주체에 따라 국립·공립·사립 도서관으로 나누고, 설치목적에 따라 특수도서관과 공공도서관으로 나누며, 특수도서관은 다시 학교·대학·전문도서관으로, 공공도서관은 공립과 사립도서관으로 세분한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우리나라 도서관은 고구려의 경당이며 근대적 기능을 갖춘 도서관은 990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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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붙이와 돌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며 선조들의 삶과 사건의 생생한 증거 금석문은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나누어진다. 금문은 금속류의 용기·악기·무기·화폐·인장·경감·조상·범종·도량형 등에 주출되었거나 새겨진 문자이며, 석문은 석재의 비·묘지·조상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금문의 대표적인 경우는 「칠지도명」·「환두대도명」·「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문」·「상원사종명」·「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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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는 김효성(金孝誠)[1585~1651]의 선정비. 1651년(효종 2)에 조선 인조(仁祖) 대에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지낸 김효성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남문로 2가 청주 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동편 화단에 서향으로 위치해 있다. 높이 128㎝, 폭 72㎝, 두께 19㎝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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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는 조선후기 청주목사 서유민의 선정비. 조선 후기에 청주목사를 지낸 서유민이 백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관청건물을 보수한 선정을 기려 1842년(헌종 8)에 세운 비석이다. 남문로2가(南門路二街)의 중앙공원(中央公園) 내 동쪽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높이 141㎝, 폭 43㎝, 두께 15㎝의 비갈(碑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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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조선중기 청주목사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선정비. 조선 인조(仁祖) 대에 청주 목사 이경여가 청렴결백하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1631년(인조 9)에 세운 비이다. 남문로2가(南門路二街)의 청주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동편 담장 아래 화단에 서향에 위치해 있다. 거북대좌 위에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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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義兵將).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호는 화천당(花遷堂)이다. 임란의병 박춘번(朴春蕃)의 형이다.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찰방(察訪)을 거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창의사(倡義使)가 되어 의병을 일으키고 조헌(趙憲)[1544~1592]과 함께 호서지방을 지키는 데 큰 활약을 하였다. 그 해 7월 4일 청주 복태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종사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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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성 탈환전에서 향토의병을 이끌었던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공적을 기리는 전적비. 195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월 4일 지금의 복대동에서 거병하였으며, 8월 1일에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과 더불어 청주성 전투에 참여하여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그 뒤 진천지역으로 진격하여 진천지역의 왜적을 격퇴하였다. 임진왜란 때 육지 전투에서 최초의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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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의 깨달음에 연원한다. 전통적으로 그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緣起)로 알려져 있다. 일체는 원인과 조건의 의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는 영원 불변한 독립적 실체로서의 궁극적 실재를 추구하는 기존의 종교·철학에 대한 혁명적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그의 사후에도 불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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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事蹟)을 기념하기위해 세우는 돌. 비(碑)는 보통 비석 혹은 석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석비가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석비는 묘비와 탑비·능묘비 외에도 비문의 내용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금석문의 가치나 서체가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 그리고 석비의 양식의 변천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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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모두 조산원이나 산부인과에서 출산이 이뤄지지만 예전에는 산파를 불러 집에서 낳았다.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 산파는 방의 자리를 걷고, 미리 추려놓은 짚을 깔고 그 위에 재문지를 깔았다. 아이를 낳으면 탯줄은 산모와 아이 쪽으로 모두 한 뼘씩 남기고 잘랐다. 자른 탯줄과 분비물은 왕겨 속에 넣고 마당에서 삼불을 놓아 태웠는데 이 삼불은 사흘 정도 탔다. 삼불이 다 타 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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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의 필름에 빛을 반응시켜 빛의 농도에 따라 사물의 이미지를 영상화한 것. 사진(寫眞, Photography)의 어원 Photography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의 “빛” 이라는 phos와 “그린다”는 grapose의 합성어로 “빛으로 그린다”는 뜻이며, 우리나라에서의 사진(寫眞)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들여와 사용하고 있는데 사물을 “베낀다”, “박아낸다”, “찍어낸다”는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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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지방도시로서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는 청주시에는 수많은 옛 건조물이 유적으로 현존하면서 역사문화도시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청주 정북동 토성과 청주 신봉동 고분군에서와 같이 옛 주거지 터가 현존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설축하였다고 하는 청주읍성터는 현재의 가로망 형태로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우암산성, 당산토성과 우암산성을 거쳐 저 멀리 산성동의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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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의 쉼터는 공원과 유원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공원은 어린이공원, 근린공원, 도시자연공원, 묘지공원, 체육공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민의 생활과 가장 관련이 깊은 공원은 근린공원과 도시자연공원과 체육공원이다. 그 이유는 어린이공원의 경우 아파트나 단독주택 지구의 어린이 놀이터이고, 묘지공원은 망자의 매장을 목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한편 청주시의 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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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북주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청주군 북주내면의 서리(西里) 및 원리(院里) 각 일부를 분할하여 성서정(城西町)이라 하고 청주군 북주내면의 서리를 분할하여 서정(西町)이라 하였다. 1947년 일본식 동명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 둘을 묶어 청주읍성의 ‘서문’을 따서 서문동이라 명명하였다.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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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청주 서문시장은 청주읍성의 서문(西門)밖에 있다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원래 청주읍성의 서문 이름은 ‘청추문(淸秋門)’인데 일본식 방위 명칭으로 그냥 ‘서문’이라 통칭되었다. 서문시장은 1964년 개설되었다. 당시 청주시외버스터미널(그 때에는 그냥 ‘주차장’이나 ‘차부’라 불렀다)이 맞은편에 있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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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글씨를 조형 예술의 관점에서 이르는 말. 청주는 지리적으로 내륙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유사 이래 존재한 각 왕조의 서풍과 서체를 다양하고 고르게 수용할 수 있는 지정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결과 서예문화의 산물을 보다 능동적으로 창출해내는 충족요건이 되었다. 특히, 용두사지(龍頭寺址)철당간의 명문(銘文)과 흥덕사에서 주자(鑄字)된 직지(直指)는 청주의 서예금석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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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년(선조 4)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가 청주목사로 부임하여 제정한 향약. 향규 또는 향약계라고도 한다. 사족들의 향촌자치와 이를 통해 하층민 통제를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숭유배불정책에 의하여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사회에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며 각종 재난(災難)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기 위한 규약이다. 중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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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후기 헌종(憲宗) 때 청주목사를 지낸 문신이다. 서유민은 1821년(순조 21) 천릉도감(遷陵都監)의 감조관(監造官)으로 임명되었고, 1836년(헌종 2) 안주목사(安州牧使)에 제수되었다. 1838년에는 안산군수(安山郡守)에 제수되었고, 이어 청주목사(淸州牧使)에 제수되었다. 청주목사로 재직중인 1840년 서유민은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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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는 주기전승의 의례적인 생활 풍속. 청주에서 과거에 행해졌거나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는 세시풍속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월의 세시풍속은 정월 보름과 관련된 행사가 많다. 정월 보름의 행사는 13일 낟가릿대 [화간(禾竿)]를 세웠다가 14일 아침에 철거하여 ‘벼가 몇 천 석’, ‘조가 몇 천석’ 하며 자기 마음대로 허칭하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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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장소. 재화,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로 여기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광의의 개념으로는 금융시장, 석유시장 등 세계 무역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여기서는 시장 개념의 원론적 서술이 아니라 청주지역의 재래시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장의 1차적 기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 거래를 하는 행위에 있다. 즉 팔사람(상인)과 살사람(고객)의 흥정으로 상행위가 이루어진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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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할 때 선장(禪杖: 승려의 지팡이)으로 무예를 익혔는데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출중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는 승려들의 창의(倡義)를 독려하였지만 따르지 않았다. 영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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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의 공적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육상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청주성 전투에서 승군(僧軍)을 이끌었던 영규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4년에 세운 전적비(戰蹟碑)이다. 청주시 내 중앙공원(中央公園) 동쪽 출입구 오른쪽 화단에 조헌(趙憲)[1544~1592] 전장기적비(戰場紀蹟碑)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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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서 서문동 사이에 있는 도로.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는 조선 선조 때 청주목사로 재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그가 청주목사를 떠날 때 직접 소나무를 심은 사실을 기념하여 1886년(고종 23)에 세운 ‘표석’이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171-3번지[상당로69번길 38]의 청원군청 정문의 왼쪽 화단에 ‘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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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 예술. 우리나라 3대 악성 하면 거문고를 창제한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과 가야금을 제작한 신라의 우륵(于勒)[500?~562?], 조선의 박연(朴堧)[1378~1458]을 든다. 그 중 우륵과 박연은 충북 출신 음악가이다. 청주 지역의 음악은 이 위대한 전통음악의 얼을 계승, 보존하는 반석위에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음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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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한봉수(韓鳳洙)[1883~1972]의 송공비. 근대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인 한봉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7년에 세운 사적비이다. 청주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북쪽 출입구의 오른쪽 화단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높이 191㎝ 폭 69㎝ 두께 39㎝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그 위에 두 마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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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직부(直夫)이며,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목사 이수록(李綏祿)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에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11년 검열, 1617년에는 충원현감을 지냈다. 광해군(光海君)의 실정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취임하고,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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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청주목사와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이며, 어머니는 목천상씨(木川尙氏)로 상붕남(尙鵬南)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1603년에 문과정시(文科庭試)에서 장원으로 급제,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으며, 160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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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이중(頤仲)으로 아버지는 이창수(李昌壽)이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66년에 문과 정시(庭試)에 병과 8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1731년에 청주목이 서원현으로 강등되고 서원현감으로 도임하여 근민헌(近民軒)을 창건하였는데, 이 근민헌은 후일 철종 말에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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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에 있는 남주동시장의 옛 이름. ‘새장터’는 남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같은 구역 안에 있던 ‘장터’에서 이전하여 새로운 ‘장터’가 조성되자 그 지역을 ‘새장터’라고 한 것이다. ‘새장터’가 생기자 이전하기 전의 ‘장터’는 자연스럽게 ‘구장터’가 되었다. 구장터는 석교정에 있었으나 1906년 대홍수로 없어졌다. ‘구장터’ 대신에 남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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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추구하는 인간상은 떳떳하고 씩씩하며, 창의적인 어린이이다. 교육목표로는 첫째, 민주시민의식을 함양하고 도덕규범과 근검절약 저축을 생활화하며 공동체의식을 갖게 한다. 둘째, 기초체력을 강화하고 강인한 의지력과 다양한 표현력을 길러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한다. 셋째, 다양한 학습방법을 익혀 기초학력과 문제해결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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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청주목 관아의 누각. 망선루는 객관(客館)의 동쪽에 있었는데, 옛 이름은 취경루(聚景樓)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1361년(공민왕 10)에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하였다가 이곳에 옮겨와 수개월 동안 머물렀었다. 도적이 평정되자 문과와 감시(監試)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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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인데, 압각수라는 이름은 잎의 모양이 오리류의 발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과 나무뿌리가 물오리의 발처럼 발가락 사이가 붙어 있어 생겼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오리발나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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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념에 입각하여 계몽운동과 사회봉사 운동을 전개하는 사회단체인 YMCA의 충청북도지역을 담당하는 산하조직. 기독교 이념에 입각하면서도 세속적 운동을 지향한 YMCA는 세계적으로 1885년에 창립되었으며, 처음부터 시민운동을 지향했다기보다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청년들의 결사체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구한말에 YMCA가 한국에 도입되면서부터 애국계몽운동과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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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의병장 조헌(趙憲)[1544~1592]의 비석.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헌의 청주성 탈환을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戰蹟碑)로 그가 죽은지 약 120년 뒤인 1710년(숙종 36)에 세워졌다. 상당구 서문동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옮겨, 현재는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의 동쪽 출입구의 오른쪽 화단에 서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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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비석. 조선 고종(高宗) 때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1866년(고종 3)에 있었던 병인양요와 1871년에 있었던 신미양요를 통해 서양세력을 격퇴한 후 그 전승을 기념하고 척화를 강조하기 위해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충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청주 척화비도 이때 세운 것이다. 상당구 남문로 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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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에 있는 청주관아(淸州官衙)의 중심 건물. 1868년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중수하면서 청녕각(淸寧閣)이라 편액을 고쳤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근민헌 목사정당 십간’이라 하여 이 건물의 명칭이 근민헌(近民軒)이고 규모는 10칸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서원현감 이병정(李秉鼎)이 동헌을 창건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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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충청도 병마절도사 본영의 정문.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으며,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본영을 드나들던 출입문의 문루(門樓) 이다. 병영의 출입문은 보통 원문(轅門)이라고 부르며 좌우로 담장이 이어져 병영을 에워싸고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95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공포형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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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청의 본관 건물. 1908년 6월 5일 충주의 관찰부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중앙공원(中央公園) 자리에 위치하였다. 1928년 말 운주헌 바로 앞쪽으로 목조 단층건물을 신축하여 충청북도청의 본관으로 사용하다가, 1937년 현재 도청이 있는 자리에 큰 연못을 메워 신축하였다. 1959년 2층 평스라브 청사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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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청주의 정치, 행정, 군사, 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조선시대의 석축읍성. 조선시대 축조된 청주읍성은 청주시의 최고 최대의 역사유적지이다. 청주의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 흔적을 시내 중심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청주읍성은 청주의 보금자리요 청주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이다. 청주읍성은 읍성의 나라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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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 왜군에게 빼앗긴 청주성을 되찾은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문화예술축제. 임진왜란 시, 1592년 음력 8월 1일에 있었던 청주성 전투는 기허당 영규대사(靈圭大師)[?~1592], 중봉 조헌(趙憲)[1544~1592]장군, 화천당 박춘무(朴春茂)[1544~1611] 장군 등에 의해 주도되었고 임진왜란 육전에서 거둔 최초의 승전이다. 이 전투는 정규군이 강력한 왜군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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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악단체. 청주시민의 정서함양과 국악발전을 위해 청주시에서 설립, 운영하고 있는 연주단체이다. 고전에서 현대의 퓨전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유롭게 소화해냄으로써 음악애호가들에게 다양한 국악관현악의 세계를 경험하는데 취지를 두고 있다. 1985년 8월 비상임 단원 25명으로만 국악단이 조직 되었고, 그 뒤 1995년 5월에 상임단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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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에서 대학생들의 복음 선교를 위해 개신교단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독교단체. 청주CCC는 1958년 한국CCC 창립 후 아홉번째로 만들어진 지구로 1966년 6월 16일에 서울CCC의 후원으로 발족했다. 1986년에는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에 훈련원을 개원하였으며, 음악 선교를 위해서 크로스라이프 찬양선교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91년에는 현재 운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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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청주예총이 주최하고 청주예술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식적 행사. 청주예술제는 크게 4가지의 개최목적을 가지고 추진·진행되었다. 첫째, 인구 62만의 문화예술의 도시 청주시에서 청주시민의 자긍심과 잠재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예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자생력 있고, 지속성 있는 청주의 대표예술제를 만든다. 둘째, 지역예술의 활성화, 전통문화의 발굴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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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의 서쪽 문이 있던 자리. 상당구 서문동 96번지에 있는 청주읍성 서문터는 서문동 오거리에서 성안길로 통하는 속칭 족발골목의 입구에 있다. 이곳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서문인 청추문(淸秋門)이 있었던 곳이나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에 이른바 시구 개정사업으로 헐리었다. 서문의 안에는 충청병영이 있었고 문밖에는 대교천 즉 지금의 무심천(無心川)이 흘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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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져 있는 명소 기행. 오늘의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 한다. 청주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노령산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은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 두 산자락 가운데 든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바로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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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 상당구(上堂區) 남문로2가(南門路2街)에 있는 면적 24,800평 규모의 공원. 예로부터 청주는 지세를 따졌을 때 무심천(無心川) 위에 떠있는 배의 형상이라고 해서 주성(舟城)이라고 했다. 청주의 한복판이라 할 남문로 2가에 서있는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鐵幢竿)은 배를 안정시키고자 세운 돛대라고 전해진다. 중앙공원(中央公園)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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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北門) 자리에서 남문(南門) 자리에 이르는 큰길로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성안길은 일본식 명칭 본정(本町)[본정통]을 대신하여 최근에 새로 만든 지명이다. 예전으로 치면 청주읍성의 안에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읍성은 예로부터 청주의 사회, 경제, 군사,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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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餘暇)의 순 한국어는 겨를이다. 겨를이란 어떤 틈을 말한다. 숨 쉴 겨를도 없다고 말하면 매우 바쁘다는 뜻으로 쉬거나 놀이를 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여가는 영어로 레저(leisure)라고 하는데, 그 개념은 약간 다르다. 생산으로서의 노동행위를 하지 않는 시간을 여가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일을 하지 않는 한가로운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서구에서의 여가인 레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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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경기단체. 정구를 도민에게 널리 보급하여 도민의 체력 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을 진작시킴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정구인을 양성하여 국위선양을 도모함으로써 국민 문화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1908년 무렵 충청북도 청주를 중심으로 도내 각지에 정구경기가 보급되었으며, 1922년에는 청주 중앙공원(中央公園)에 위치한 청주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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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전국 시·도와 더불어 충청북도에도 세워졌던 자치 성격의 기구. 미군의 충청북도 진주 당시 10개 군중 충주, 제천, 단양, 청원, 보은, 옥천, 영동 등 7개 군에 인민위원회가 있었다. 미군이 청주에 진주했을 때 충북도청은 진공상태였고, 일본인과 조선인 경찰관들이 여전히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충청북도의 다른 군(郡)에서는 전직 경찰관들이 무장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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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있는 교육을 관장하는 기관. 1954년 5월 24일 시·읍면의회 의원이 시·읍 교육위원회 위원을 간접 선거하였고, 이에 따라 충청북도에 청주시와 10개 군에서 교육위원 선거를 마쳤다. 1954년 6월 4일 시교육위원회와 군교육구가 발족하게 되었는데 시교육위원회가 바로 청주교육지원청의 출발이며 조직은 도지사 산하 문교사회국장의 관할 하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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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는 충청북도 자치행정기관. 충청북도를 대표하고 충청북도 자치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광역자치단체이다. 충청북도청은 충청북도 광역자치단체로서 지역의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며, 시군 발전의 조정자, 지원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충청북도의 균형적 발전을 추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충청북도청은 도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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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치는 맹인. 판수의 어원은 ‘운수(運數)를 판단(判斷)해 준다’는 ‘판수(判數)’에서 온 말이라고 하나, 알타이어(Altai語)에서 남자무당을 가리키는 ‘paksi’에서 분화된 순수한 우리말이다. 예로부터 맹인들이 생계 수단으로 점을 치는 것은 직업으로 하였는데, 우리나라 맹인의 점은 중국에서도 용하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맹승(盲僧)으로 불리는 삭발한 맹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