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인민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342
한자 忠淸北道人民委員會
영어공식명칭 People's Committee of Chungcheongbuk-do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양수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자치 단체.

[개설]

미군의 충청북도 진주 당시 10개 군중 충주, 제천, 단양, 청원, 보은, 옥천, 영동 등 7개 군에 인민위원회가 있었다.

[현황]

미군이 청주에 진주했을 때 충북도청은 진공상태였고, 일본인과 조선인 경찰관들이 여전히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충청북도의 다른 군(郡)에서는 전직 경찰관들이 무장해제를 당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인민위원회만이 정부의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충청북도인민위원회는 청주관에 있었다.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의 도서관을 개칭한 동지사, 민전회관 등이 인민위원회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미군진주가 완료된 1946년경 좌·우익 세력 간의 대립이 심했지만 충북의 미군점령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정부기능을 한 곳은 제천, 옥천, 영동 3개군의 인민위원회였다. 다른 도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군에 인민위원회가 존재했었다.

인민위원회 활동이 가장 강력했던 지역은 남부지역인 영동이었다. 그 이유는 일제시대 혁명적 농민조합의 역사가 있었고 소작률은 중간 정도이며, 해방 후 만주나 일본에서 많이 귀국하여 높아진 인구증가율 때문이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