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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안정(安定)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아버지는 나인(羅紉)이고, 어머니는 조찬(趙璨)의 딸 임천(林川)조씨이다. 할아버지는 나윤충(羅允忠)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나빈(羅濱)이며, 문과에 합격하여 세자시강원 설서를 지낸 나만기(羅萬紀)와 나만원(羅萬元)의 동생이다. 부인은 민건(閔楗)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1653년(효종 4) 계사년 문과(文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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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에 과일 나무에 돌을 끼워두는 풍속. 정월 보름날에 대추나무나 감나무 등 과일나무가 있는 집에서는 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운다. 이렇게 하면 그 해 과일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이것을 보통 ‘나무 시집보내기’라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과일 나무의 가지 친 곳에 돌을 끼워두면 과일이 많이 열리는데 이를 가수(嫁樹), 즉 ‘나무 시집보내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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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에 과일 나무에 돌을 끼워두는 풍속. 정월 보름날에 대추나무나 감나무 등 과일나무가 있는 집에서는 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운다. 이렇게 하면 그 해 과일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이것을 보통 ‘나무 시집보내기’라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과일 나무의 가지 친 곳에 돌을 끼워두면 과일이 많이 열리는데 이를 가수(嫁樹), 즉 ‘나무 시집보내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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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조선 성종 때 여진족의 침입을 막다 전사하여 충신으로 추앙된 인물이다.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광원(光遠), 호는 퇴수헌(退修軒)이다. 시조(始祖) 안천부원군(安川府院君) 나천서(羅天瑞)의 6세손이며 나유선(羅裕善)의 셋째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학행과 무술이 뛰어났으며, 특히 궁마에 능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그릇된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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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회재(繪哉)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나한고(羅漢皐)이고, 어머니는 이세현(李世賢)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나일진(羅一鎭)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나치학(羅致學)이다. 부인은 신필록(申必祿)의 딸이다. 1852년(철종 3)에 실시된 문과 식년시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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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과 용암동에 걸쳐 있는 산.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 되었다. 이곳은 청주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류가 아니고 변성퇴적암류의 기반암을 갖는 지역으로, 이 지역은 양 암석의 경계지역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상은 고도가 475m이며 남서쪽으로 400m의 봉우리가 이어진다. 상당산성의 상당산(上黨山)[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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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향정동에 위치한 장학재단. 품행이 바르고 장래가 촉망되는 모범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에게 안정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유능한 인재로서 성장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며, 소수 정예의 향토 우수 인재를 지속적으로 지원 육성하여 지역 사회 및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합명회사인 신흥기업사의 김호수 회장이 (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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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서경(恕卿), 호는 송재(松齋)이다. 1486년(성종 17) 주부(主簿) 한창유(韓昌愈)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510년(중종 5) 생원이 되고, 1513년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장원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크며 독서를 즐겼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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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이다. 할아버지는 남식(南烒), 증조할아버지는 남타(南柁)이다. 아버지는 남일성(南一星)이고, 어머니는 권박(權瞨)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을 거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659년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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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있는 유도훈련장. 유도인들의 수련장 및 훈련장 마련을 통한 충청북도내 유도선수 발굴과 육성을 위해 건립되었다. 1979년 충청북도에서 개최되는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위해 건립이 추진되어 1979년 5월 완공되었으며 유도선수들의 발굴과 육성 등 충청북도 유도의 산실 역할을 했다. 1978년 9월 1일 제6회 전국중고유도연맹전을 충북실내체육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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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군망(君望)이다. 아버지는 남응호(南應浩)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등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다. 관직이 군수(郡守)에 이르렀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이 포위되었을 때 공을 세워 영국원종공신 1등(寧國原從功臣一等)에 녹훈되었다. 봉명리의 후손 남태희(南台熙) 댁에 병자호란 당시 사용하던 보검이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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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과 장성동에 있는 들. ‘남들’은 청주의 남(南)쪽에 펼쳐져 있는 들판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들 서쪽에 있는 낮은 산지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저장하는 방죽을 조성하고 관개용수를 공급하여 비옥한 농경지로 이용하였다. 청주시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관통하는 무심천(無心川)의 서안에 형성된 범람원 충적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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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청주읍성의 남문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옹성리(甕城里) 및 문외리(門外里)의 각 일부를 묶어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라 명명하였다. 1947년 일본식 동명을 폐지하고 남문로2가(南門路二街)로 바꾸었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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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1947년 일본식 이름을 폐지하고, 새로운 동명을 정할 때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남문인 청남문(淸南門)의 이름을 따서 남문로1가(南門路一街)로 바꾸었다. 이 지역은 옛 청주읍성의 남문 밖에 해당된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석교리(石橋里)와 동주내면(東州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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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상당산성의 남쪽 문 앞. 상당산성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경계에 위치한 상당산(上黨山)[419m]에 있는 산성이며 동문, 남문, 서문의 3개 문이 있다. 남문앞은 상당산성(上黨山城)의 남쪽 문 앞을 가리키는 말로, 남문은 구체적으로 공남문(拱南門)을 가리킨다. 상당산성에 있는 삼대문(三大門) 중 가장 규모가 큰 문이며, 상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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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부모에 지극한 효성을 보여 여러 번 천거되고 벼슬이 증직되었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字)는 은여(隱汝)로 개국공신 강무공(講武公) 남은(南誾)의 14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학령(南鶴翎), 할아버지는 남의관(南義寬), 아버지는 가선대부내무협판(嘉善大夫內務協辦)에 증직된 남기묵(南紀黙)이고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빈궁하였으나 효성이 뛰어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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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과 흥덕구 사직동을 연결하는 다리. 1985년 11월 개통된 다리로서 총연장 136m, 폭 15m이며, 상행과 하행 각각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축조 공법은 상부는 RC슬라브방식, 하부는 V형방식이다. 남사교(南社橋)의 명칭은 다리를 통해 연결되는 남주동(南洲洞)과 사직동(社稷洞)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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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동남단에서 흥덕구 모충동 북쪽사이에 있는 도로. 남주동(南洲洞)과 사직동을 연결하는 남사교에서 유래되었다. 동쪽은 상당로 남궁병원사거리에서 시작하여 서남쪽은 모충로 충효문 앞에서 끝난다. 폭은 15m로 중로 2류에 해당하며, 길이는 1,404m이다. 동쪽부터 서쪽까지 남북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철당간길, 성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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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이다. 누에머리를 줄어서 ‘눼머리’라고도 한다. 누에머리의 한자지명이 잠두(蠶頭)이고 잠두에 봉을 붙어 ‘잠두봉(蠶頭峰)[101m]’이라고 한다. 누에와 관련된 청주지역의 지명은 청원군의 가덕면 병암리 잠두골, 강내면 탑현리 잠두, 오창면 성산리 누에봉 등이 있다. 풍수상으로 잠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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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는 산. ‘누에머리’는 ‘누에’와 ‘머리’로 분석된다. ‘머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목 위의 부분[頭]’을 가리키는 말이나 다른 사물에도 전용되어 ‘앞’·‘위’·‘시작’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명에 ‘머리’가 사용될 경우, 대체로 산기슭이나 봉우리가 들판으로 불쑥 튀어 나온 지역이나 특정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붙는 경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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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일원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일찍이 고향인 충청북도 청원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6년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신민부(新民府)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이다가 1928년 2월 21일 중동선(中東線)이 통과하는 해림시(海林市)에서 남한송(南韓松)·서광수(徐光洙) 등의 동지들과 함께 모종의 중대 사명을 수행하던 중 일본과 중국 혼성 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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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에 있었던 돌다리.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가설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57년이라는 설이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청주읍성의 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량이라고 볼 때 대략 고려시대에 가설되었으며, 무심천(無心川)의 범람 때마다 유실되는 피해가 발생함으로써 수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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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에 있었던 돌다리.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가설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57년이라는 설이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청주읍성의 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량이라고 볼 때 대략 고려시대에 가설되었으며, 무심천(無心川)의 범람 때마다 유실되는 피해가 발생함으로써 수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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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청주대학교내 용암사와 흥덕구 개신동 충북대학교박물관내에 있는 석조물. 돌로 만든 개 형상(犬像)을 말하는 것으로 남석교 교안(橋岸) 양쪽에 두 개 씩 모두 4개가 있었다고 한다. 석조 견상을 만든 시기를 추정하기는 어려우나 남석교의 가구식 기법, 백자 조각(白磁片), 철종 연간의 개건(改建)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남석교는 조선시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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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참되고 부지런하며 슬기로운 사람’을 그리는 인간상으로 삼아, ‘토론 학습과 학생 자치 활동을 활성화하여 민주시민의 자질을 가진 사람, 학생중심의 다양한 학습활동으로 자기 주도적 학습 태도를 가진 사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체험 학습과 건전한 만남을 통해 또래 문화를 형성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 창의적 교육과정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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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인성을 지닌 건강하고 창의적인 어린이를 기르기 위하여, 나라를 사랑하고 고장을 가꾸며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어린이, 질서를 존중하고 자율적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사고하며 창조하는 어린이, 몸이 건강하며 안전생활에 힘쓰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어린이, 소질을 발견하여 열심히 갈고 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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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일대에 있었던 숲. ‘남숲’은 남석교 너머 수곡동 일대에 있던 숲으로, 청주의 남쪽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청주의 남쪽과 북쪽에 인공 숲을 조성하였는데, 북쪽에 조성한 숲이 ‘남숲’이고, 남쪽에 조성한 숲이 ‘남숲’이다. 남숲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이유는 탁 트인 남북방향으로 빠져나가는 청주의 지기(地氣)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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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산성 내에 있었던 보국사와 관련된 기록. 청주 상당산성에 위치한 보국사의 연원을 적은 기록이다.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에 대대적인 수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1721년(경종 1) 산성의 관리를 위해 구룡사(九龍寺)와 남악사(南岳寺)를 건립하였다. 이 후 구룡사(九龍寺)는 완전히 파괴가 되었고 남악사만 홀로 남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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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었던 남악사의 절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구룡사(九龍寺), 청심사(淸心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44년(영조 20년)에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지은 필사본인『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의하면 1725년에 절도사 이태망(李台望)과 우후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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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武臣)으로 무신란(戊申亂) 때 순절한 충신. 1728년 무신란 당시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군(叛軍)의 회유를 물리치고 순절하여 충절로 이름났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수백(壽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남홍달(南弘達), 할아버지는 증사복시첨정(贈司僕寺僉正) 남유경(南有慶),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된 남두명(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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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이양호(李亮浩)[1805~1823]의 부인 남원윤씨(南原尹氏)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각. 경주이씨(慶州李氏) 문중의 효자 이양호의 부인인 남원윤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1년(철종 2)에 세운 정려각이다. 청주시내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보은 방향으로 가다 지북교차로에서 좌측의 목련공원길로 약 2㎞ 가량 가면 오른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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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강무공(剛武公) 남은(南誾)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1606년(선조 39)에 무과에 등제하여 관직에 나가 여러 무관직을 역임했고, 최고 관직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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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군 청주 읍내 남쪽에 있었던 면. 청주 읍내의 남쪽에 해당한다고 하여 남주내면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부군면(府郡面) 폐합으로 일부는 청주면에 편입되고, 일부는 사주면(四州面) 관할이 되었다. 당시에 석교리(石橋里)와 동주내면(東州內面) 문외리(門外里) 일부를 병합하여 본정1정목(本町一丁目)이라 하였으며, 옹성리(甕城里)는 동주내면 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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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이곳이 남주내면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본래 청주군 남주내면(南州內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보십리(甫十里)·천변리(川邊里)·장대(場垈)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정(南町), 보십리의 일부를 갈라서 대흑정(大黑町), 서림리(西林里)와 장대의 각 일부와 북주내면(北州內面)의 서리(西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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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에 있는 남주동시장의 옛 이름. ‘새장터’는 남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같은 구역 안에 있던 ‘장터’에서 이전하여 새로운 ‘장터’가 조성되자 그 지역을 ‘새장터’라고 한 것이다. ‘새장터’가 생기자 이전하기 전의 ‘장터’는 자연스럽게 ‘구장터’가 되었다. 구장터는 석교정에 있었으나 1906년 대홍수로 없어졌다. ‘구장터’ 대신에 남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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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과 석교동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남주동시장은 청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재래시장이다. 1906년에 개설된 것으로 보이나 1829년에 간행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청주읍내장이 2일, 7일에 열렸다’라고 기록된 점을 보면 이보다 훨씬 오랜 맥락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약전골목은 대구 약령시 다음으로 큰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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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의 북단에서 남단까지 연결되는 도로. 북쪽은 사직로 구고속버스터미널(지금은 대형 할인점인 까르푸가 자리잡고 있음) 옆에서 시작하여 남쪽은 남사로 중앙공원(中央公園) 남단 청주YMCA 앞에서 끝난다. 폭은 16~18m이며, 길이는 513m이다. 서쪽에는 서남로, 동쪽에는 중앙공원길이 평행하게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다. 남주로는 북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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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군 청주 읍내 서쪽에 있었던 면. 본래 남이면, 남주내면 등과 병합되어 남이면이 되었다가, 면 일부 지역(현 석곡동과 죽림동)이 강서면에 편입된 후 다시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청주 읍내에서 남이면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지역이므로 남차이면이라고 하였다. 죽림, 월천, 석판, 검북, 중석, 하석, 공례, 북리, 사창, 석남, 석서, 석동, 덕현, 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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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소래울 남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남촌이라고 불려왔다.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신설된 청주군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이 청주부로 승격됨에 따라 개칭된 청원군(淸原郡) 관할이 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청원군 강서면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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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예절과 질서를 지키고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지·덕·체·예의 능력 있는 어린이, 과학적 사고와 탐구활동을 통한 창의적 능력을 가진 어린이, 기초 운동 기능과 위생·안전생활 태도를 익혀 건강한 어린이, 쾌적한 환경에서 소질과 특기를 기르며 즐겁게 생활하는 어린이를 길러 바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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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었던 향토기업.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시(郡是)제사㈜의 조선 분공장(分工場)으로서 대전공장(1926년)에 이어 1929년 청주공장이 설립되었다. 당시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군시제사㈜ 청주공장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장으로서 생사를 생산하였다. 조선에 진출한 일본자본의 제사공장은 품질이 우수한 고격사(高格絲)의 생산에 의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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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29년(신라 진평왕 51, 고구려 영류왕 12) 가을 8월에 신라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여 크게 깨뜨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7 잡지 제6 지리4)에는 백제에 속했던 웅천주(熊川州)의 서원(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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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551년(신라 진흥왕 12) 3월 진흥왕(眞興王)은 순행(巡行) 중에 낭성(娘城)에 이르러 우륵(于勒)[500?~562?]과 그의 제자 이문(尼文)이 음악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특별히 불렀다. 왕이 하림궁(河臨宮)에 머무르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니, 두 사람이 각각 새로운 노래를 지어 연주하였다’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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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이후 영조(英祖) 시기에 저술한 것으로 보이는 『청주읍지(淸州邑誌)』. 조선 후기 영조(英祖)[재위1724~1776] 때 청주의 역사·인문(人文)·지리적 내용을 총괄하여 기술한 『청주읍지(淸州邑誌)』로 필사본(筆寫本)이다. 표지 제목을『낭성지(琅城誌)』라 했으며, 제1장 첫째 줄에 읍지(邑誌)라 기록했다. ‘낭성(琅城)’은 청주를 일컫는 이름중의 하나이다. 내용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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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29년(신라 진평왕 51, 고구려 영류왕 12) 가을 8월에 신라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여 크게 깨뜨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7 잡지 제6 지리4)에는 백제에 속했던 웅천주(熊川州)의 서원(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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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있는 마을. ‘안그미’는 1차적으로 ‘안’과 ‘그미’로 분석된다. ‘안’은 물론 ‘내(內)’의 뜻이다. ‘그미’는 다시 ‘그’와 ‘미’로 나뉜다. ‘그’는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지명에서 ‘감’·‘검’·‘금’·‘가마’·‘가매’·‘고마’·‘가미’·‘가무’·‘개마’·‘개매’ 등으로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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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마을. ‘소래울’은 내곡동을 가르키고 있는 말 인데 ‘안골’ 또는 ‘내곡’이라고도 한다. ‘소래울’은 ‘소래’와 ‘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소래’라는 지명은 들, 마을, 산 등의 이름으로 널리 쓰이는 지명이다. ‘소래’에 대해서는 ‘소라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지형이 좁아서 붙여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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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골짜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안골’, ‘소래울’ 또는 내곡(內谷)이라 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상신리(上新里) 일부를 병합하여 내곡리(內谷里)라 명명하고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청원군 강서면 일원이 청주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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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절터. 1986년 중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머리 부분을 잃은 석조여래입상이 남아 있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석조여래입상의 주변지역은 조선 말기에 세운 작은 절터로 밝혀졌고, 석불을 봉안하였던 원래의 절터는 38-1번지의 건물지로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연꽃무늬와 해무리무늬가 베풀어진 수막새와 당초무늬, 해무리무늬 등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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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의 절터에서 출토되었던 불상 및 대좌. 1986년 중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흥덕구 내곡동에서 발굴 조사되어 현재는 음성휴게소 유물전시관의 앞마당에 전시되고 있다. 흥덕구 내곡동 속칭 부처당골에 있었던 이 불상은 머리 부분은 없어졌으나 당당한 체구로 비교적 큰 불상이다. 두터운 법의(法衣)에 감싸여 불신(佛身)의 굴곡은 여실히 느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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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의 구릉 정상부(해발 74m)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전기의 움집. 흥덕구 내곡동의 서쪽 끝을 이룬 구릉 정상부에서 중부고속도로의 건설로 유적이 파괴될 상황에서 조사된 것이다. 해발 74m의 구릉 정상부 평탄면에서 남쪽으로 경사면이 시작되는 지점에 동서 길이 6.3m, 남북 너비 4.6m 크기의 긴네모꼴 움집터로, 부식 암반의 풍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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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슬기롭고 성실하며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예절 바르고 질서를 잘 지키며 서로 돕는 어린이, 보건과 안전에 대한 기초지식과 바른 습관을 갖는 건강한 어린이, 수월성을 추구하는 힘을 길러 실생활에 능률적으로 활용하는 어린이, 과학적으로 탐구 해결할 수 있는 기본 능력과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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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1동·내덕2동에 속하는 법정동. 덧벌 안쪽이 되므로 안덧벌, 안터벌, 안덕벌 또는 내덕평이라고 하였다. 본래 청주군 북주내면(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율현리(栗峴里)를 병합하고 내덕리라 하여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37년 4월 1일 청주읍에 편입되었고, 1946년 6월 1일 청주부 관할이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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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으로 청주시 상당구 내덕 2동 8통이고, 법정명은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안덧벌이다. 내덕동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주내면(北州內面) 지역으로, 덧벌 안쪽이 되므로 안덧벌 또는 내덕평(內德坪)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율현리를 병합하여 내덕리라 하고 서주면(西州面)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청주읍(淸州邑)에 편입되었다. 예전에는 우암산(牛岩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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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안덧벌에 있는 교육기관으로는 내덕초등학교와 청주대학교 예술대학이 있다. 대다수의 초등학생들은 내덕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청주 시내 여러 곳으로 다니고 있다. 예전에는 안덧벌에 초등학교가 없어서 주로 주성초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주성초등학교로 통학을 하기 위해서는 바깥덧벌(우암동의 옛 명칭)을 통해서 가는 길이 지름길이었다. 중학교는 주성중학교로 많이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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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덧벌은 산간 마을이라 물이 귀했다. 우물은 양지말에 한 개, 음지말에 한 개가 있었다. 주민들이 물을 보호하기 위해 양철로 지붕을 해서 얹어 우물각을 세웠다. 이 우물에 동네 아낙들이 음력 정월과 시월에 개인적으로 고사를 지냈다. 제일을 정할 때 정월 고사 때는 보름 안에 택일하였다고 한다. 샘고사를 성대하게 지낼 때는 만신할머니를 모셔다 제를 올리기도 했다.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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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애기 잘두 잔다 먹구 자구 먹구 놀구 을부떠시 달부떠시 우리 애기 잘두잔다 뒷집 개야 짖지 마라 앞집 개야 짖지 마라 우리애기- 무럭무럭 잘 커라이 … 여기 있으니 이 술 한잔을 해 보세요 이 소주는 술이 아니라 먹고 노자는 경배주라 인생은 일장춘몽이요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 좋아 아니- 놀구선 못 살겄네 아니나 허구서는 못 살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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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덧벌은 고지대에 있으면서도 산지가 적고 평지가 많았다. 우암산(牛岩山)[338m] 자락을 따라서 밭농사와 과수농사를 지었으며, 마을 앞 들판과 사천(斜川) 냇가를 중심으로 발달한 평지에서는 벼농사를 지었다. 이 지역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주로 농업이 주산업이었으나 자기 농토를 가진 사람이 적어, 생계유지가 곤란하여 대부분의 주민들은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길러 육거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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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제조창이 들어서기 전에는 주로 농사를 지으며 남자는 나무를 팔고, 여자는 두부와 콩나물 등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연초제조창이 들어서면서 그 곳에서 일하거나, 노동자들에게 방을 세놓아 수입을 올렸다. 이후 청주대학교가 들어서고 특히 예술대학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주로 학생들을 상대로 방을 세놓거나, 하숙을 치고, 또 장사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청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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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덕동은 시의 북부에 있으며, 동쪽은 율량동, 서쪽은 운천동, 남쪽은 우암동, 북쪽은 사천동과 접한다. 안덧벌마을 뒤쪽에는 우암산(牛岩山)[338m]이 있고, 마을 아래로 내려오면서 골짜기를 따라 들판이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 가운데로는 하천이 흐르는데, 현재 복개되었고, 급격한 도시화로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단독 주택과 상가가 들어서면서 들판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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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몽 안덧벌에서 조사된 태몽은 아들의 경우 잘 익은 사과·밤을 치마 가득 담아 오는 꿈, 우암산(牛岩山)[338m] 밑에 서리서리 감긴 황구렁이를 본 꿈, 둑방 밑에 잉어가 펄덕이는 꿈 등이다. 딸의 경우는 복숭아나무가 달려드는 꿈, 외밤톨 주은 꿈, 요강에 뱀이 하나 들어오는 꿈 등이다. 제보자들은 한결같이 잘 익고, 색깔이 좋고, 모양이 좋은 것은 아들 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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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안덕벌에 있는 선돌(立石). 고인돌과 함께 큰돌 문화(巨石文化, Megalithic culture)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선돌은 선사시대부터 축조된 것이 발굴결과 밝혀지고 있으나 모든 선돌이 선사시대부터 새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사에 따르면 금강권에 있는 선돌은 다른 어느곳보다 많이 있다. 금강권의 선돌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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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교좌 성당의 성당건물. 내덕동 성당은 천주교 청주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주교좌 성당이란 교구장(주교)관할구역의 중심교회로서 주교가 직위에 있고 미사를 주관하는 성당을 말한다. 천주교의 주교는 주교가 상주하는 특정한 교회를 지정하여 영구적으로 관할하게 하고 있으며 이를 ‘교구성당’(diocesan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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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의 청주문화방송사거리에서 내덕칠거리 사이에 있는 도로. 청주문화방송국이 있었던 곳은 원래 충북선 철로의 청주역 자리였는데, 청주중앙중학교와 청주문화방송국이 나누어 위치하였다. 청주문화방송국 앞을 지나는 동서방향의 도로는 향군로라 한다. 청주문화방송국 앞은 향군로와 내덕로가 교차하는 삼거리이며, 청주농업고등학교 앞은 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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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인근에 있는 재래시장. 이곳은 밤 고개[율현(栗峴)] 너머 주택단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밤 고개와 직접적인 명칭 연관은 없다. 내덕자연시장이라는 명칭 그대로 주택단지조성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소규모 시장이다. 1985년에 개설된 시장으로 규모는 영세하다. 율량동, 진천 방면, 신흥고등학교 또는 내수 방면의 버스를 타고 밤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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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어는 한국어의 중부방언에 속한다. 그래서 청주지역어의 음운체계(자음체계, 모음체계, 운소체계)와 문법체계가 대체로 서울방언과 일치한다. 다만 운소체계 가운데 억양과 말의 속도에서, 그리고 일부 어미와 조사를 포함한 문법형태소 및 어휘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청주시 관내에 속하는 지명은 부여계와 한계가 공존하여 어원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청주지역어의 자음체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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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산업단지육거리에서 사창동 시계탑오거리까지 연결되는 도로. 예전에 이곳 인근에 있었던 내수동마을에서 따온 것이다. 동쪽은 사직로 시계탑오거리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사직로 산업단지육거리에서 끝난다. 폭은 10~15m이며, 길이는 약 2,700m이다. 북쪽에는 주간선도로인 사직로가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뻗어 있다. 사창사거리 남쪽에서 제1순환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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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토지의 종류. 「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4개의 촌락 중에서 사해점촌(沙害漸村)에만 내시령답이라는 이름의 토지가 보인다. 사해점촌의 논[畓]은 모두 10만2024결(結)인데, 이 중 내시령답(內視令畓)은 4결이다. 그 명칭으로 보아 내시령답은 내시령이라는 관원에게 그 직무의 대가로 주어진 토지로 보이는데, 내시령이라는 직명은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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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촌동에 있었던 물구덩이. ‘엉망구레’라고도 하는 데 이것은 ‘냉망구레’의 변형에 불과하다. ‘냉망구레’에서 ‘냉망’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냉’은 ‘차다’는 의미로 추정되고, 따라서 ‘찬물’이 많아서 붙어진 이름으라고 해석된다. ‘구레’는 본래 물이 늘 괴어 있는 ‘구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냉망구레‘는 찬물이 많이 나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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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들. ‘너더리’는 1차적으로 ‘너덜’과 접미사 ‘-이’로 분석된다. ‘너덜’은 다시 ‘너-’와 ‘덜’로 나뉘는데, ‘너-’는 ‘널-’에서, ‘널-’은 다시 ‘넓-’에서 변한 것이다. ‘덜’은 ‘들’의 변화형으로, 지명에서 ‘달’·‘돌’·‘뜰’·‘틀’ 등으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너더리’는 ‘넓들이’에서 받침 ‘ㅂ’이 탈락하여 ‘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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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방형의 무덤구덩이 안에 시신을 안치한 나무널을 묻은 철기시대의 무덤. 널무덤(木棺墓)이란 장방형 혹은 말각장방형의 무덤구덩이를 파고 따로 통나무나 판재로 만든 나무널(木棺)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다음 그 널을 무덤구덩이 안에 묻은 철기시대의 무덤이다. 기존에는 움무덤(土壙墓)로 지칭되어 왔다. 청주지역에서의 널무덤은 청주시 송절동 유적·봉명동 유적·신봉동 유적·가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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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샘. ‘네모배기샘’은 1차적으로 ‘네모배기’와 ‘샘’으로 분석된다. ‘네모배기’는 다시 ‘네모’와 ‘배기’로 나뉜다. ‘네모’는 ‘네 개의 모로 되어 있는 평면’을 가리킨다. ‘배기’는 동사 어간 ‘박-’에 접미사 ‘-이’가 붙은 어형으로, ‘박아 놓은 것, 박혀 있는 곳’의 뜻이다. 지명에서 이 ‘배기’는 이형태 없이 ‘배기’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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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샘. ‘네모배기샘’은 1차적으로 ‘네모배기’와 ‘샘’으로 분석된다. ‘네모배기’는 다시 ‘네모’와 ‘배기’로 나뉜다. ‘네모’는 ‘네 개의 모로 되어 있는 평면’을 가리킨다. ‘배기’는 동사 어간 ‘박-’에 접미사 ‘-이’가 붙은 어형으로, ‘박아 놓은 것, 박혀 있는 곳’의 뜻이다. 지명에서 이 ‘배기’는 이형태 없이 ‘배기’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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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산봉우리. ‘노고봉(老姑峰)’이나 ‘노고산(老姑山)’은 전국적으로 흔한 이름인데, 각각 ‘할미봉’이나 ‘할미산’과 함께 쓰인다. ‘할미봉’이나 ‘할미산’은 대부분 꼬부랑할미처럼 구부정하게 생겼다는 유래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할미’는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할미’는 ‘할’과 ‘미’로 나뉘는데, ‘할-’은 ‘한-’의 변화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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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며, 호는 농곡(聾谷)이다. 아버지는 노종원(盧從元)이고, 아들은 목사를 지낸 노문한(盧文漢)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駕山)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문장과 학행이 뛰어났으나, 과거에 등제하지 못하고 처사(處士)로 지내면서 경적(經籍)에 심취하였다. 사림에서 문묘종향을 건의할 정도로 문명(文名)이 높았다. 처사로서 세인(世人)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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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 본관(本貫)은 교하(交河)이며, 자는 여화(汝和)로 청주 출신이다. 병자호란 때 아우 노극시(盧克時)와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감사(監司) 정세규(鄭世䂓)의 진에 이르러 싸웠으나 관군이 크게 무너지므로 단삼(單衫)에 혈서하여 말에 붙이고 형제가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말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혈서에 ‘군신의 죄가 중하여 처자와 인연을 끊는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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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며, 초자는 신중(愼仲), 자는 여림(如林), 호는 한원(漢源)이다. 아버지는 진사 노명흠(盧命欽)이다. 영조(英祖) 때 영의정이었던 홍봉한이 청주목사로 재직할 당시인 1742년(영조 18)에 실시된 청주 백일장에서 6살의 나이로 장원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홍씨 일문의 자손들과 교유하게 되었다. 1765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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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조직을 개선하기 위하여 전개하는 일체의 조직적인 활동. 광복 이후 이승만(李承晩) 정권과 유신독재를 거치면서 노동조합은 정권과 국가권력에 대한 예속 상태가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1970년대부터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적극적 개념과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실천적 개념의 민주노동운동이 태동되기 시작하였다.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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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사장(士章)이며, 호는 죽정(竹汀)이다. 교하노씨(交河盧氏) 경원군파(慶原君派)의 인물로 거주지는 청주 남일면 가산리 일대였다. 아버지는 노극리(盧克履)이고, 할아버지는 체화당사에서 제향하는 노종원(盧從元)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노경기(盧景麒)이다. 장인은 조식(趙湜)과 송희원(宋希遠)이며, 아들은 노서(盧序), 형은 노영한(盧英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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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유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명보(明甫)이며, 호는 금사(錦史)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신송리 출생으로 체화당(棣華堂)의 사촌동생인 서암(西庵) 노덕원(盧德元)의 12대 손이다. 어려서부터 어질고 총명하여 소년기에는 매은(梅隱) 오영호(吳榮鎬)와 소강(小康) 이인상(李寅尙), 남계(楠溪) 신창모(申昌模)의 문하에서 경학을 공부하고 스승의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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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노계원(盧繼元)의 증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 병환에 한겨울임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공양(供養)하였으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아버지를 소생시켜 생명을 2년이나 연명시켜 드렸다.이에 사람들이 그 효성을 칭송하였고, 조정에 알려져 1729년(영조 5) 복호(復戶 : 조선시대 충신·효자·절부(節婦) 등에게 요역과 전세 이외의 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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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대해(大海)이며, 호는 사지당(四知堂)이다. 경원군파(慶原君派) 인물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체화당사(棣華堂祠)의 배향인물인 노일원(盧一元)이며, 형으로 노준(盧浚)과 노척(盧滌)이 있었다. 1606년(선조 39)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 때에 벼슬을 버리고 청주에서 은거하였다. 인조 대에 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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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사진동호회. 녹영회는 1957년 청주지역의 아마추어 순수 사진동호회로 이영일 회장 외 8명의 회원으로 사진인의 저변확대와 사진예술 보급을 위해 설립되었다. 1957년 가을 청주의 일해다방에서 창립 사진 전시회를 가졌으며, 1958년 제2회 회원사진전시회는 돌체다방에서 가져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녹영회는 직업사진작가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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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이 논에서 김을 맬 때 부르던 노동요. 「논매는 노래」는 다른 지방의 민요와 마찬가지로 초벌매기 소리, 두벌매기 소리, 세벌매기 소리가 있다. 이 소리는 공동 노작(勞作)을 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었으므로, 앞소리를 뒷소리가 받쳐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청주지역 「논매는 소리」를 곡조와 뒷소리 형태를 중심으로 나눠 보면, 방아소리, ‘잘하네’ 소리, ‘상사데’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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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존과 관련 있는 활동과 ‘일’에 해당되는 활동을 제외한 신체적·정신적인 모든 활동. 놀이는 생활상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무목적적 활동으로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 활동이다. 일정한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전제로 하며, 정서적 공감력과 정신적 만족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즐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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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및 공업의 개량과 발전을 지원하고 일반금융과의 조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은행. 1906년 대한제국의 재정과 금융의 전권을 장악한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다(目賀田種太郞)의 주도하에 설립되었다. 명목적으로는 대한제국 농공업의 개량 발달에 목적이 있었으나 일본상품의 반입과 식량 및 원료의 반출을 금융적인 측면에서 지원하기 위한 것이 실질적인 목적이었다. 1906년 6월 한성농공은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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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 사이에서 농기를 빼앗는 민속놀이. 농촌의 각 마을에는 두레가 있고, 두레에 딸린 농기가 있게 마련이다. 이 농기에 인격을 부여하여 오래된 농기일수록 선배가 되어 “형”이나 “선생”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여름철에 들로 일하러 나갈 때 으레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을 울리는데, 이 때 먼발치라도 이웃의 선배 농기와 마주치면 먼저 절을 해야 한다. 만일 절을 하지 않으면 선배 쪽 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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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 사이에서 농기를 빼앗는 민속놀이. 농촌의 각 마을에는 두레가 있고, 두레에 딸린 농기가 있게 마련이다. 이 농기에 인격을 부여하여 오래된 농기일수록 선배가 되어 “형”이나 “선생”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여름철에 들로 일하러 나갈 때 으레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을 울리는데, 이 때 먼발치라도 이웃의 선배 농기와 마주치면 먼저 절을 해야 한다. 만일 절을 하지 않으면 선배 쪽 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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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이용하여 동식물을 길러 인간에게 유용한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활동. 청주지역의 연평균기온은 섭씨 12.7℃로 월평균 기온을 보면 8월이 24.1℃로 가장 높고, 연중최저는 1월로 2.9℃이다. 또한 연평균 강우량은 1,290㎜로 그 중 60%가 벼의 생육기간인 6~8월 장마기에 많은 비가 내린다. 경지면적의 추이를 [표 1]에서 보면 청주시는 충북 도청소재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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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미군정에서 1948년 3월부터 시작하여 8월까지 이승만정부가 수립된 후 약 5년간에 걸쳐 진행된 토지개혁. 충청북도는 전체적으로 보아 산간지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한강과 금강이 관통하고 있어 관개사정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전체 경지면적의 반을 점하고 있는 논농사도 다른 도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개발되어 있어서 임업과 마찬가지로 농업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산업적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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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개신·죽림동에 속하는 법정동. 저산성 산지에 위치하고 있어 농사가 주산업이 되어 농촌동이 되었다. 본래 청주군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가서리(駕西里) 및 서강내 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농촌리(農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농촌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농촌동으로 변경되어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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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개신·죽림동에 속하는 법정동. 저산성 산지에 위치하고 있어 농사가 주산업이 되어 농촌동이 되었다. 본래 청주군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가서리(駕西里) 및 서강내 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농촌리(農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농촌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농촌동으로 변경되어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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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는 산. ‘누에머리’는 ‘누에’와 ‘머리’로 분석된다. ‘머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목 위의 부분[頭]’을 가리키는 말이나 다른 사물에도 전용되어 ‘앞’·‘위’·‘시작’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명에 ‘머리’가 사용될 경우, 대체로 산기슭이나 봉우리가 들판으로 불쑥 튀어 나온 지역이나 특정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붙는 경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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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이다. 누에머리를 줄어서 ‘눼머리’라고도 한다. 누에머리의 한자지명이 잠두(蠶頭)이고 잠두에 봉을 붙어 ‘잠두봉(蠶頭峰)[101m]’이라고 한다. 누에와 관련된 청주지역의 지명은 청원군의 가덕면 병암리 잠두골, 강내면 탑현리 잠두, 오창면 성산리 누에봉 등이 있다. 풍수상으로 잠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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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재(訥齋) 박증영(朴增榮)과 강수(江叟)·박훈(朴薰)[1484~1540] 부자의 시문집(詩文集)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판목(板木). 박훈의 현손인 박정용(朴廷龍)[1599~1673], 박정린(朴廷麟)[1607~1655], 박정표(朴廷彪)[1618~1662] 3형제와 사촌인 박정해(朴廷獬)[1607~1687]가 눌재와 강수의 유고를 모아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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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희인(希仁)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8세손으로, 눌재공파의 파조(派祖)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박미(朴楣), 할아버지는 박중손(朴仲孫), 증조할아버지는 박절문(朴切門), 외할아버지는 강석덕(姜碩德), 처부는 박영달(朴英達)이다. 아들 박훈(朴薰)[1484~1540]은 기묘명현(己卯名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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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는 산. ‘누에머리’는 ‘누에’와 ‘머리’로 분석된다. ‘머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목 위의 부분[頭]’을 가리키는 말이나 다른 사물에도 전용되어 ‘앞’·‘위’·‘시작’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명에 ‘머리’가 사용될 경우, 대체로 산기슭이나 봉우리가 들판으로 불쑥 튀어 나온 지역이나 특정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붙는 경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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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이다. 누에머리를 줄어서 ‘눼머리’라고도 한다. 누에머리의 한자지명이 잠두(蠶頭)이고 잠두에 봉을 붙어 ‘잠두봉(蠶頭峰)[101m]’이라고 한다. 누에와 관련된 청주지역의 지명은 청원군의 가덕면 병암리 잠두골, 강내면 탑현리 잠두, 오창면 성산리 누에봉 등이 있다. 풍수상으로 잠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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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에 있는 들. ‘느더리’는 ‘너더리’의 변화형인 바, ‘너더리’는 1차적으로 ‘너덜’과 접미사 ‘-이’로 분석된다. ‘너덜’은 다시 ‘너-’와 ‘덜’로 나뉘는데, ‘너-’는 ‘널-’에서, ‘널-’은 다시 ‘넓-’에서 변한 것이다. ‘덜’은 ‘들’의 변화형으로, 지명에서 ‘달’·‘돌’·‘뜰’·‘틀’ 등으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너더리’는 ‘넓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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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죽림동에 있는 골짜기. ‘능골’은 ‘능’과 ‘골’로 분석된다. 지명에서 ‘능’은 매우 흔한 선행 요소로, 대부분 ‘능(陵)’과 관련된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능’은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이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물론 여기에서는 ‘골짜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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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무신. 청주를 기반으로 했던 호족으로서 왕경에 초치된 인물로 보인다. 궁예(弓裔)가 청주 주민을 철원에 이전시킨 이래 이미 청주를 떠나 상경하여 종사하는 세력과 아직 토착해 있는 현지세력이 상호 시기·반목하였으며, 지방 세력 내부에서도 대립하였다. 태조(太祖) 왕건(王建)과의 관계에서 청주세력은 충역(忠逆)이 무상하였다. 태조는 즉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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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에 있는 산. ‘능말양’은 ‘능’과 ‘말양’으로 분석된다. ‘능’은 본래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을 뜻한다. 그러나 지명에 쓰일 때에는 ‘규모가 큰 묘’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산에는 순천박씨(順天朴氏) 산소가 있는데, 그 규모가 크다. ‘말양’은 ‘마루’의 변화형으로, 지명에서 ‘말’·‘말랑’·‘말랑이’·‘날망’·‘마리’·‘머리’ 등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