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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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廣寺 |
영어공식명칭 | Songgwangsa Temple |
이칭/별칭 | 대한불교조계종송광사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대흥리 569-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경석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소속 사찰.
[개설]
송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송광사는 867년(경문왕 7)에 체징(體澄)이 창건하고 고려 중기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중창했다는 설이 있다. 1622년(광해군 14)에 응호(應浩)·승명(勝明)·운정(雲淨)·덕림(德林)·득순(得淳)·홍신(弘信) 등이 이극룡(李克龍)의 시주를 얻어서 중창했다. 중창 후 승려 벽암(碧巖) 각성을 초빙해 50일 동안 화엄법회를 열었다. 1636년(인조 14)에 각성(覺性)이 약사전과 칠성각을 중창하기까지 계속 큰 불사를 벌여 대가람[큰 규모 사찰]을 이뤘다. 당시 대웅전은 2층 건물이었고 일주문은 절 남쪽 3㎞ 지점에 있는 만수교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1641년(인조 19)에는 당시 왕[인조]과 왕비[장렬왕후]의 만수무강 기원과 병자호란 때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긴 소조삼존불상을 봉안하고 승려 벽암 각성은 첨성각을 중창했다. 1649년(효종 1)에 사천왕상을 조성했으며, 1656년(효종 7)에 나한전이 건립했다. 석조(石槽)[큰 돌을 넓게 파고 물을 받아 사용하도록 만든 일종의 돌그릇]는 1660년(현종 1), 범종은 1716년(숙종 42)에 조성되었다. 승려 무경자수(無竟子秀)[1664~1737]의 문집 『무경집(無竟集)』에 실린 “전주 종남산 송광사 사적사”의 서문과 『범우고(梵宇攷)』를 보면, 17세기 송광사는 이미 거대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13년(순조 13) 정준이 관음전을 중수하고 대웅전을 단층으로 개축했다. 또한 1814년 약사전을 중수했다.
1934년 극인(克仁)이 나한전을 중수했다. 1989년 삼성각을 건립했으며, 1993년에는 대웅전 삼존불상을 개금[불상에 금칠]했는데, 이때 다수 복장(腹藏) 유물이 나왔다. 1996년 포교당을 지었고, 1998년 지장전과 오층석탑을 세웠다. 1999년에는 석조 미륵대불입상을 봉안하고 첨성각과 옛 명부전을 옮겨 세웠다. 2000년에 송광사 중창비를 건립했으며, 2002년 세심정, 2005년 종무소, 2014년에는 약사전을 건립했다.
[활동 사항]
송광사는 불교 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선지식을 초청하는 일요 법회를 비롯해 사천왕기도, 인등기도, 산신각기도, 지장기도, 대웅전 천일기도, 나한전 천일기도 등 다양한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템플스테이와 백산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송광정심원[사회복지법인 송광]을 운영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송광사의 현재 가람배치는 대웅전을 비롯해 지장전·오백나한전·약사전·관음전·삼성각·십자각·천왕문·금강문·일주문·보현당·향로전·적묵당·종무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파일 연등행사에는 많은 신도들이 방문한다. 신자는 약 1,000여 명 정도이다. 송광사의 조직은 회주, 주지, 기도법사, 종무소, 신도회 등이 있다.
[관련 문화재]
송광사에는 완주 송광사 대웅전[보물 제1243호], 완주 송광사 종루[보물 제1244호], 완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보물 제1255호], 송광사일주문[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 송광사명부전소조지장보살삼존상및권속상일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8호], 송광사오백나한전목조석가여래삼존상및권속상일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9호], 송광사동종[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송광사목조삼전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 송광사나한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송광사금강문(松廣寺金剛門)[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3호], 송광사사적비(松廣寺史蹟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호], 송광사벽암당부도(松廣寺碧庵堂浮屠)[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4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