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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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心寺浮屠群 |
영어공식명칭 | Stupas of Ansimsa Temple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안심길 372[완창리 2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미란 |
건립 시기/일시 | 1759년(영조 35) - 안심사부도군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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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12월 16일 - 안심사부도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6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심사부도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안심사부도군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안심길 372[완창리 22] |
성격 | 부도 |
양식 | 석종형 승탑 |
관련 인물 | 서환당 등 |
재질 | 돌 |
크기(높이) | 부도1: 높이 120㎝, 폭 54㎝|부도2: 탑신 높이 116㎝, 최대경 66㎝|부도3: 기단석 장변 113㎝, 단변 95㎝|부도4: 탑신 높이 80㎝, 최대경 51㎝|부도5: 지대석 높이 25㎝, 직경 70㎝, 좌대 높이 32㎝, 직경 50㎝, 탑신 길이 55㎝, 직경 40㎝|부도6: 전체 길이 195㎝, 지대석 장축 120㎝, 단축 60㎝, 높이 36㎝, 탑신 높이 48㎝, 직경 56㎝, 옥개석 높이 50㎝, 폭 80㎝|부도7: 기단 길이 82㎝, 높이 20㎝ |
소유자 | 안심사 |
관리자 | 안심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승탑.
[개설]
부도(浮屠)라고 불러온 승탑(僧塔)은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를 이룬다. 고려시대 이후에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과 같이 평면이 사각형인 것이나, 범종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석종형(石鐘形) 승탑이 등장해서 팔각원당형 승탑과 함께 변화 발전한다.
[건립 경위]
안심사부도군은 석가의 치아 한 개와 사리 열 개를 봉안하기 위해 1759년(영조 35)에 세운 것이다. 안심사부도군에 조성된 부도는 탑신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6기이고, 기단과 석부재만 남아 있는 것이 3기이다.
[위치]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에서 안심길을 따라 안심사로 가다 보면 완창리 마을 끝 지점에 다다를 때쯤 안심사 일주문이 나온다. 안심길은 일주문 북쪽으로 우회하는데 안심사부도군은 일주문 바로 뒤편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부도군의 서쪽 경계와 남쪽 경계 지점은 마을의 민가 담장과 맞닿아 있는데 안심사부도군 주변으로 돌담을 돌려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형태]
안심사부도군에 자리한 부도는 모두 6기인데 5기가 석종형 승탑이고 1기만 구형(球形) 승탑이다. 6기의 온전한 부도 외에도 기단만 남은 1기와 파괴된 부도 2기가 자리한다. 안심사부도군 안쪽에 자리한 부도부터 번호를 부여해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부도1은 부도군의 서쪽 구역에 남북 방향으로 열을 지어 있는 3기의 부도 중 가장 안쪽에 자리한 부도이다. 부도1은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가 1매의 석재로 이루어진 일체형의 승탑으로 높이가 120㎝, 폭 54㎝인데, 동 최대경이 상부에 있다. 탑신은 자연 암반석 위에 얹었는데 탑신 정면 중앙 상부에 ‘가선대부서환당대사태원(嘉善大夫瑞煥堂大師太元)’이라는 명문을 2행으로 새겼다. 탑신은 4면을 이루도록 다듬었으며, 탑신의 상부에는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의 단판연화문을 5엽 조각했는데, 마치 탑신을 덮고 있는 듯한 모양이다. 탑신 상단에 놓인 보주형 상륜은 훼손되어 반절만 남아 있다. 탑신 기단부에는 위쪽에 복련을, 아래쪽에 앙련을 거칠게 조각했다.
부도2는 부도1의 북쪽에 부정형의 자연석을 기단으로 종형 탑신을 안치했는데, 탑신의 규모는 높이 116㎝, 하단부 동 최대경 66㎝이며, 상단에 16잎의 복련이 조각되었는데 매우 조악하다. 탑신 상단 중앙에 반구형의 상륜이 마련되었고 탑신과의 경계점에 1줄의 원권문이 돌려져 있다.
부도3은 부도2의 북쪽에 자리하는데 방형의 기단석 위에 종형 탑신을 안치했다. 기단석의 규모는 장변이 113㎝, 단변이 95㎝이다. 탑신은 형태가 종형이지만 둥글게 처리하지 않고 4개의 면이 형성되도록 다듬었다. 상단에는 복판의 연꽃잎 15엽을 복련으로 조각했고, 탑신부와 보주형의 상륜부 사이에 1조의 원권문이 돌려져 있다. 탑신의 동 최대경은 상부에 있다.
부도4는 자연석을 대충 방형으로 다듬은 기단석 위에 종형 탑신을 안치했다. 탑신의 규모는 높이 80㎝, 동 최대경 51㎝로 소형으로 탑신 맨 꼭대기에는 소형의 보주가 형식적으로 모각되어 있다.
부도5는 부도4의 동쪽에 자리하는데 원형의 지대석 위에 복발형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의 대좌를 놓고 탑신을 안치했는데 탑신석 위에 옥개석을 놓았다. 옥개석 상면 중앙에는 보주를 모각했다. 지대석에는 12개의 중판 연꽃을 복련으로 둘렀으며 규모는 높이 25㎝, 직경 70㎝이다. 대좌는 8송이의 중판 연꽃으로 둘렀는데 연꽃은 복련으로 세장한 모습이며, 대좌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규모는 높이 32㎝, 직경 50㎝이다. 탑신은 하단과 상단에 연꽃을 둘렀는데 하단에는 앙련[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으로 16잎을, 상단에는 복련으로 16잎을 둘렀다. 규모는 길이 55㎝, 직경 40㎝이다. 옥개석은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옥개받침은 거의 수평에 가까운 평면인데 3줄의 골을 파서 처리했다.
부도6은 부도군 중 제일 동쪽에 자리하는데 이형(異形)의 부도이다. 자연석 1매를 지대석으로 사용해 그 위에 하대석과 상대석을 놓고 구형의 탑신을 안치했으며 탑신 위에는 옥개석을 얹어 마무리했다. 규모는 전체 길이가 195㎝이다. 지대석은 자연석을 장방형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했는데, 규모는 장축 120㎝, 단축 60㎝, 높이 36㎝이다. 하대석 표면에는 구름무늬를 거칠게 조식했으며, 상대석은 상부에는 8각을 모각한 후 각 면에 回자형의 무늬를 새겼으며, 중하부 전체에는 7잎의 복련을 조각했다. 탑신은 구형(球形)으로 만들었는데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규모는 높이 48㎝, 직경 56㎝이다. 옥개석은 옥개받침을 3단으로 처리했으며, 규모는 높이 50㎝, 폭 80㎝이다.
부도7은 기단만 남아 있다. 기단의 형태는 방형이며 길이 82㎝, 높이 20㎝로 기단에 연꽃이 복련으로 조각되었다. 부도8은 부도군 초입에 있는데 탑신은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자연석 기단부 위에 2개의 옥개석이 포개져서 놓여 있는데 옥개석 본래의 자리인지는 알 수 없다. 부도9는 부도8의 동쪽에 자리하는데 부도8처럼 자연석을 방형으로 거칠게 다듬어 사용한 기단석 위에 탑신이 망실된 채 옥개석을 포함한 석재 2기가 포개져 있는데 본래 자리를 알 수 없다.
[금석문]
안심사부도군 6기 중 금석문이 새겨진 부도는 1기이다. 금석문은 부도1에 새겨졌는데 탑신에 ‘가선대부 서환당 대사 태원(嘉善大夫瑞煥堂大師太元)’이라는 명문이 2행으로 새겨져 있다.
[현황]
안심사부도군은 2005년 12월 16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안심사부도군은 일주문 바로 뒤편의 동남쪽에 위치하는데 울타리를 돌담으로 만들었으며 돌담 넘어 남서쪽으로는 민가가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은 안심사 경내 주차장을 제외하고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안심사부도군 참배객이 부도군 근처 길가에 주차할 경우 위험이 따른다. ‘안심사부도군’ 안내판이 안심사 금강계단 관련 내용으로 되어 있어 시정이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안심사부도군에는 조선시대 승탑의 대표적 형태인 석종형 승탑뿐만 아니라 구형(球形) 형태의 승탑도 안치되어 있어 안심사부도군의 승탑을 통해 조선시대 다양한 형태의 승탑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