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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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完州安心寺金剛戒壇 |
영어공식명칭 | Ordination Platform of Ansimsa Temple, Wanju |
이칭/별칭 | 안심사 부도 및 부도전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26[안심길 372 안심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미란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시굴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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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6월 13일 -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보물 제143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보물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26[안심길 372 안심사] |
성격 | 부도 |
양식 | 금강계단|석종형 탑 |
크기(높이,길이,둘레) | 높이 200㎝ |
소유자 | 안심사 |
관리자 | 안심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종형 사리탑과 금강계단.
[개설]
금강계단(金剛戒壇)은 불사리(佛舍利)를 안치한 곳으로 수계(受戒) 의식을 집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건립 경위]
안심사 사적비(事蹟碑)에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조성과 관련된 기록이 잘 나타나 있다. 안심사 사적비에 ‘안심사에 전해 오던 부처님의 치아 1개와 10과의 사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1759년(영조 35) 부도 및 부도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안심사 사적비에서 말하는 부도 및 부도전이 오늘날의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이다.
[위치]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에 있는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은 주법당인 대웅보전 오른쪽, 즉 북동쪽에 위치한다.
[형태]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은 대둔산의 산줄기 한 자락이 서쪽으로 흘러내린 말단부에 자리하는데 완만한 구릉의 허리를 평탄하게 조성한 후 마련되었다. 이처럼 계단의 대지는 경사져서 흐르는 구릉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바닥 면이 완만한 경사를 갖는 ㄴ자형으로 조성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산 쪽에 가까운 대지는 깊게 팠으며, 말단부 쪽인 아래쪽은 얕게 팠다. 따라서 계단이 자리한 대지는 전면부와 양쪽 측면 일부에만 축대가 조성되었다.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의 대지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한 축대는 단을 이루면서 2층으로 쌓았는데 1층 축대는 막돌로 쌓았고 2층 축대는 장대석과 판석을 사용해서 쌓아서 계단(戒壇) 형태의 방형고대(方形高臺)가 만들어졌다. 1층 축대는 2단으로 막돌을 이용해 전면에만 쌓았다. 2층 축대는 2단으로 쌓았는데 아랫단에 직사각형의 긴 장대석을 놓고 그 윗단에 넓은 판석을 올렸다. 윗단에 올려진 판석에는 아랫부분에 앙련[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의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윗부분에 회자형태(回字形態)의 문양이 연이어 조각되어 있는데 조각의 장식성과 섬세함이 매우 뛰어나 우수한 조형미를 지닌다. 축대[방형고대(方形高臺)]의 규모는 1층 축대가 길이 980㎝, 폭 84㎝, 높이 40㎝이고, 2층 축대가 전면부 길이 980㎝, 측면부 길이 770㎝, 높이 46㎝이다. 1층 축대 좌측 모서리에는 판독이 어려운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2층 축대의 판석은 모두 12매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11매에는 연화문과 회자(回字) 형태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으나 좌측 모서리에 놓인 판석에는 문양이 조각되어 있지 않다. 판석의 규모는 대체로 길이 102㎝, 폭 80㎝, 두께 32㎝ 정도이다.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은 위와 같은 계단 형태의 방형고대 위에 세워진 종형 사리탑이다. 종형사리탑은 주변 사방이 넓은 판석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사리탑의 전면에는 배례석으로 추정되는 판석을 1매 더 놓았다. 그런데 후면에도 판석이 1매 더 놓여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사리탑은 이렇게 정사각형을 이루는 경계석의 중앙에 8각의 기단 받침돌을 놓고 종형의 탑신부를 안치했는데 탑신부와 갓 모양의 옥개석과 그 위에 놓인 보주까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일체형이다. 8각의 기단석은 4매의 지대석[지하에 묻혀 있는데 시굴조사 때 확인] 위에 놓여 있는데 면석에는 8면에 각각 2개씩 총 16개의 안상문(眼象紋)[코끼리 눈과 같이 생겼다는 뜻에서 생긴 명칭의 문양]이 조각되었고 우동[옥개석의 귀마루]에는 16개의 복련[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을 조각했는데 연잎의 형태는 길쭉한 모양이다. 종형사리탑의 규모는 기단석 높이가 27㎝이고 종형의 탑신부는 높이가 120㎝, 동체부 최대경이 100㎝이며, 삿갓 모양의 개석과 보주로 이루어진 상륜부 높이는 55㎝로 종형 사리탑의 총 높이는 202㎝이다. 또한 사리탑 주변으로 4구의 신장상(神將像)을 배치했는데 크기는 110~130㎝로 대동소이하다. 신장상의 형상은 모두 갑옷 차림에 투구를 쓰고 칼집을 허리에 찬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칼을 잡고 있는 무장한 장군 형상이다. 그런데 종형 사리탑 북쪽에는 크기가 매우 작은 부도가 1기 자리하는데 부도 북동쪽에 1매의 커다란 판석이 놓여 있다. 즉 종형 사리탑과 방향을 달리해서 작은 크기의 부도를 1기 안치하고 있는데, 이 부도는 복련의 연꽃 문양이 새겨진 기단 받침돌 위에 종형의 탑신부와 옥개석을 갖추고 있으며 전체 높이는 80㎝ 정도이다. 부도의 북동쪽에 놓인 1매의 커다란 판석은 이 부도의 배례석으로 추정되는데 계단의 북동쪽 모서리에 자리한 신장상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현황]
2002년 정비공사를 진행하던 중 종형사리탑 밑에서 유구[옛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가 발견되어 공사를 중단하고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시굴조사는 동년 12월에 실시되었는데 조사 결과 진단구가 확인되었으며, 금강계단이 한 번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고, 건물지와 관련된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백자 조각과 기와 조각, 옹기 조각 등이었다. 그런데 시굴조사 때 진단구[제사용 매납유물]는 비어 있었다.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은 시굴조사 이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 복원되었다. 참고로 안심사는 6.25전쟁 때 폐허가 된 후 인법당 1채와 요사 1채로 간신히 불맥을 이어오다가 1990년 법당지에 대한 발굴조사 후 본격적인 복원불사가 이루어져 2018년 현재 2층으로 된 대웅보전과 단층의 적광전, 산신각, 요사채 등의 전각을 갖추었다. 지금은 금강계단 앞에 임시건물 기도처를 지어놓고 적멸보궁을 조성하고자 하는 기도가 한창이다.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북쪽의 한적한 곳에는 여러 석재가 질서정연하게 쌓여 있는데 석재 중에는 금강계단의 축대[계단]에 사용한 석재와 유사한 석재도 눈에 띈다.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은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보물 제1434호로 승격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그리고 2010년 본래 명칭인 ‘안심사 부도 및 부도전’이 현재의 명칭인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안심사 사적비에 그 조성 연대와 조성 경위가 분명히 언급되어 있어 학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안심사에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조선 후기 대둔산에 자리했던 수많은 사찰의 수사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안심사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안심사 부도 및 부도전’ 정비공사 중에 급박하게 이루어진 시굴조사이긴 하지만, 계단이나 부도가 정식발굴조사가 시행된 몇 안 되는 사례라는 점과 발굴조사 후 정비공사가 이루어진 매우 드문 경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