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164
한자 完昌里
영어공식명칭 Wanch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주군 운선면 완창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 전주군 운선면 완창리에서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0.96㎢
가구수 168세대[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남/여] 324명[남 159/여 165]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완창리는 조선시대 환곡을 저장하던 사창이 있어서 ‘완창’이라고 했다고 한다. 고창말[군창말]에도 사창이 있었다.

[형성 및 변천]

완창리는 본래 고산군 운동상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엄목리, 현동과 운동하면의 안하리를 병합하고 ‘완창리’라 해서 운선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완주군 운주면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완창리대둔산 아래 서각봉, 새리봉, 짜개봉 등이 동북쪽의 경계를 이룬다. 남북으로 협곡이 동서로 쭉 이어져 한줄기 계곡물이 장선천과 만난다.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며 남북으로 이어진 군도 제697호선과 장선천 사이의 평지에 대부분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와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는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가 이웃하고, 북쪽으로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신기리와 접한다.

[현황]

완창리의 면적은 10.96㎢이며, 인구수는 2018년 6월 30일 기준 총 168세대, 324명[남 159명, 여 165명]이다.

완창리의 문화재로는 안심사가 있는데, 본래 안하리 동쪽에 있는 절로, 신라 말 고려 초에 승려 조구(祖求)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연산군 때 점필재 김종직이 찬한 비문이 있었으나 닳아서 내용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예전에는 대웅전, 약사전, 사리각, 시왕전, 범종각 등이 있었으나,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지고 약사전만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보물 제1434호인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인 안심사 사적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인 안심사소장동종, 전라북도 문화재자료인 제186호 안심사 부도군이 있다.

완창리의 행정리로는 안심, 원완창, 엄목이 있다. 안심(安心)마을안심사 밑의 마을이라 해 ‘안심’ 또는 ‘안하리’라 불렸다. 『호구총수』에 운동면 안심하리(安心下里)라 나오는 것을 보면, 안심사 아래쪽의 마을인 것은 분명하다. 원완창마을은 현재 완창마을과 함께 고창말[군창말], 봉황동[황새말], 새터 등을 포함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완창마을에 있는 골짜기인 가장골 북쪽에 효성골[큰골]이라는 큰 골짜기가 있는데 효성골[큰골] 남쪽에 조선시대 환곡을 저장하던 사창이 있어서 ‘군창말’, 또는 ‘고창말’이란 마을 지명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또 봉황동은 완창마을 북쪽에 있는데 뒷산이 황새 또는 봉황의 형국이라 하며, 새터는 완창마을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한다. ‘완창’이란 지명은 『고산현지도』에 운동상면 완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마을의 유래가 유구함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군창말’, ‘황새말’ 등은 보이지 않는다. 엄목(嚴木)마을은 본래 엄목과 현동의 두 개 자연마을이 합쳐진 것으로, 엄목은 현동[가마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엄나무가 많아서 ‘엄나무실’, 완창마을에서 내려오는 내 가운데에 여울이 있어서 ‘여울목’이라 불렸다. 또 현동은 황새말 북쪽에 있는데 터가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호구총수』와 『고산현지도』에는 마을 명칭이 보이지 않다가,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운동상면 엄목리(嚴木里)와 현동(玄洞)으로 나타나고, 『전주군면계변경예정도』에는 엄목(嚴木)과 가마동(加馬洞)이라 나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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