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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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飮光 |
영어공식명칭 | Jeon Eumkwang |
이칭/별칭 | 전세권(全世權),혜산(惠山)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덕민 |
출생 시기/일시 | 1909년 6월 17일 - 전음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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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서품 시기/일시 | 1923년 - 전음광 원불교 출가 |
수학 시기/일시 | 1923년 - 전음광 전주제일보통학교 중퇴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전음광 원불교 중앙총부 서무부서기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5월 - 전음광 원불교 기관지 『월말통신』 발행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전음광 원불교 중앙총부 연구부장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960년 7월 1일 - 전음광 사망 |
출생지 | 마령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
활동지 |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
성격 | 종교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원불교 중앙총부 교무부장 |
[정의]
전라북도 익산의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활동한 종교인.
[개설]
전음광(全飮光)[1909~1960]의 본명은 전세권(全世權)이며, 법호는 혜산(惠山)이다. 아버지는 전영규(全永奎)이고, 어머니는 전삼삼(田參參)이다. 원불교 최초의 잡지 『월말통신』 등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원불교 교리 전파와 교세 확장에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전음광은 1909년 6월 17일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전삼삼의 인도로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1923년 전주제일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원불교에 귀의하였다. 1926년 원불교 중앙총부 서무부서기에 임명되었으며, 1932년부터는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을 역임하였다. 교무부장 임기 중 중앙총부 내에 야학원을 설립하여 청년 교육에 전념하였다.
전음광은 원불교 교단의 언론·출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사진사를 집으로 불러 사진 촬영과 인화 기술을 습득하기도 하였으며, 1928년 교단 기관지 발간을 소태산 대종사에게 제안하고 승인을 받아 5월에 『월말통신』을 발간하였다. 이후 『월말통신』을 계승한 잡지 『월보』, 『회보』 등의 발행과 편집을 담당하였다.
전음광은 원불교 교단의 공식 대변인 역할을 하며 일제 강점기 말 교단에 대한 일본의 탄압에 능란하게 대응한 것으로 원불교사는 전하고 있다. 특히 원불교 교단 발간물의 집필 및 발행과 관련한 모든 책임을 떠안아 일본 경찰의 검열 과정에서 소태산 대종사를 보호하였다고 한다. 평소 건강이 좋지 못하였던 전음광은 광복 이후 교직에서 물러나 휴양하다가 1960년 7월 1일 사망하였다.
[사상과 저술]
원불교 기관지 『월말통신』·『월보』·『회보』 등에 실린 전음광의 수필과 논설 등을 엮어 1986년 유고집 『빛은 동방에서』가 출간되었다.
[묘소]
전음광의 묘소는 익산시 왕궁면 동봉리 654 원불교 영모묘원 법훈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5년 원불교 수위단회에서 전음광에게 대봉도 법훈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