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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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選擧 |
영어음역 | Seongeo |
영어의미역 | Elec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승용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교회, 회사, 학교 등 여러 사회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널리 행하여진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한 선거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 국가 기관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선거는 국민의 대표자를 직접 선택하고, 간접적으로는 정부와 내각 또는 정치를 선택하며,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 제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선거 제도는 대의 민주주의 통치 구조에서 국민의 주권 행사 내지 참정권 행사의 과정으로서 국가 권력의 창출과 국가 내에서 행사되는 모든 권력의 정당성을 국민의 정치적 합의에 근거하게 하는 조직 원리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공직 선거로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이 되는 최고의 통치권자인 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원이 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 의회 의원 및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광역 자치단체와 기초 자치 단체]선거 등이 있다.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의 공직 선거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대통령 선거]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는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을 선출한 이래로 지금까지 17회 실시되었다. 이 중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무효화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16회의 선거를 치른 셈이다. 대통령 선출 방법은 국회에 의한 간접 선거가 2회[제1대·제4대], 직접 선거가 10회[제2~3대·제5~7대·제13~17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 선거가 4회[제8~11대],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가 1회[제12대]였다.
1. 초대 대통령 선거
1948년 7월 20일 실시된 초대 정·부통령 선거는 제헌헌법 제53조에 의하여 제헌 의회 의원 198명에 의해 간접 선거 방식으로 실시되어 초대 대통령에는 이승만, 그리고 초대 부통령에는 이시영이 각각 당선되었다. 1951년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이 사퇴를 한 후 1951년 5월 15일에 실시된 제2대 부통령 선거에서는 김성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2. 제2대 대통령 선거[1952년 8월 5일]
1952년 발췌 개헌안이 통과된 후 정·부통령 간선제가 직선제로 바뀌게 되었으며 제2대 대통령 선거는 같은 해 8월 5일 실시되었다. 제2대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는 자유당 이승만, 무소속 이시영, 무소속 조봉암, 무소속 신흥우 등 4명이었으며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523만 8769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또한 부통령 선거는 9명이 입후보하여 이승만의 지원을 받은 함태영이 유효 투표의 41.3%인 294만 3813표로 당선되었다.
3. 제3대 대통령 선거
제3대 대통령 선거와 제4대 부통령 선거는 1956년 5월 15일 실시되었으며, 선거는 216만 3805표를 얻은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날 같이 실시한 제4대 부통령은 6명이 입후보하여 차점자인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를 제압한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당선되었다.
4. 제4대 대통령 선거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는 3·15 부정 선거로 제4대 대통령에는 이승만이, 제5대 부통령에는 이기붕이 당선되었으나 1960년 4월 26일 국회의 의결에 의해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 자체가 무효화되었다.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정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 중심제의 권력 구조가 내각 책임제로 바뀌면서, 1960년 8월 12일 참의원과 민의원의 양동 합동 회의에서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 윤보선이 내각 책임제 하의 제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한 제5대 부통령 선거는 같은 해 6월 15일 내각제 개헌으로 이후 부통령제가 폐지됨에 따라 대통령 선거만 역대로 이어졌다.
5. 제5대 대통령 선거
1962년 12월 26일 개정 헌법에 따라 내각 책임제가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고, 개정 헌법[제5차 개헌]에 의하여 1963년 10월 15일에 제5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다. 총유권자 수는 1298만 5015명으로, 이 가운데 1103만 6175명[투표율 85%]이 투표에 참가해 박정희 후보가 470만 2640표[득표율 46.6%]를 얻어 454만 6614표[득표율 45.1%]를 얻은 윤보선 후보를 근소한 차로 이기고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6. 제6대 대통령 선거
제6대 대통령 선거는 1960년 12월 개정된 대통령선거법에 의거, 1967년 5월 3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였다. 투표 결과는 총유권자 1393만 5093명 가운데 1164만 5215명[투표율 83.6%]이 참가해 박정희 후보가 568만 8666표[득표율 51.4%]를 얻어 452만 6541표[득표율 40.9%]를 얻은 윤보선 후보를 물리치고 제6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7. 제7대 대통령 선거
1969년 10월 17일 대통령 삼선 허용을 골자로 한 제6차 헌법 개정안이 국민 투표에 의하여 개정됨에 따라 1971년 4월 27일에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다. 선거 결과 634만 2828표[득표율 53.2%]를 얻은 박정희 후보가 539만 5900표[득표율 45.2%]를 얻은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8. 제8대 대통령 선거
제8대 대통령 선거는 유신헌법에 따라 새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게 되었다. 1972년 12월 23일 장충체육관에서 실시된 제8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 후보가 대의원 등 515명의 추천으로 단독 입후보해 전체 대의원 2,359명이 참석한 가운데 2,357표[무효 2표]라는 절대적인 찬성으로 당선되었으며, 그 해 12월 27일 4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또 이때부터 이전까지의 역대 대통령 임기가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다.
9. 제9대 대통령 선거
1978년 5월 18일 정부는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2,583명의 대의원을 선출하고,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였다. 박정희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은 1978년 7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집회를 가져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재적 대의원 2,583명 중 2,578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9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 단독으로 출마한 박정희가 찬성 2,577표, 무효 1표로 당선되었다.
10. 제10대 대통령 선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제10대 대통령 선거는 당시의 유신헌법과 통일주체국민회의법에 의하여 과거와 동일한 선거 방식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실시하게 되었다. 대통령 후보자로는 최규하 대통령 권한 대행이 단일 후보로 등록되었으며, 1979년 12월 6일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재적 2,560명 중 2,549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464표로 최규하 후보를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11. 제11대 대통령 선거
정국의 혼란과 동시에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을 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는 1980년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7차 회의를 열고 제11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다. 선거 결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신군부 출신의 전두환이 단독 후보로 출마해 통일주체국민회의 재적 대의원 2,540명 중 2,525명[투표율 99.4%]이 출석한 가운데 2,524명의 찬성을 얻어 당선되어, 같은 해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2. 제12대 대통령 선거
1980년 10월 22일 국민 투표에 의한 헌법 개정과 1980년 11월 25일 개정된 대통령 선거법에 의하여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일을 1981년 2월 11일로 하여, 이 선거인단에 의하여 대통령 선거를 1981년 2월 25일 실시하였다. 1981년 2월 11일 전국 1,905개 대통령 선거인 선거구에서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5,272명의 대통령선거인이 선출되고, 1981년 2월 25일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별로 투개표가 실시되었다. 선거인단이 전국 77개 선거구에서 선거를 실시한 결과 선거인 5,278명 90.2%를 차지한 전두환 후보가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유치송 404표, 김종철 85표, 김의택이 26표를 각각 얻었다.
13. 제13대 대통령 선거
제6공화국 창설을 위한 대통령 직선제를 중요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 1987년 10월 27일 국민 투표로 확정되고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을 12월 16일로 정하여 공포하였다. 선거 결과는 총유권자 수 2512만 7158명 가운데 2306만 6419명[투표율 89.2%]이 투표에 참가하였고, 이 가운데 무효 46만 3008표를 제외한 유효투표 수는 2260만 3411표였다.
득표는 노태우 후보가 828만 2738표[득표율 36.6%]로 1위, 김영삼 후보가 633만 7581표[득표율 28%]로 2위, 김대중 후보가 611만 3375표[득표율 27%]로 3위, 김종필 후보가 182만 3067표[득표율 8%]로 4위, 신정일 후보가 4만 6650표[0.2%]로 5위를 차지하였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투표인수 6만 8238명에 투표자 수 6만 4611명으로 투표율은 94.7%였다.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 5,837표, 민주당의 김영삼 후보 700표,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 5만 5130표, 공화당의 김종필 후보 235표, 한국당의 신정일 후보 85표를 각각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14. 제14대 대통령 선거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역사적인 ‘문민정부’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면서 1992년 12월 18일에 치러졌다. 총 유권자 수는 2867만 6547명으로, 이 가운데 2409만 5170명[투표율 81.9%]이 투표에 참가하였고, 무효 31만 9761표를 제외한 유효 득표수는 2377만 5409표였다.
후보별 득표수는 김영삼 후보가 997만 7332표[득표율 42%]로 1위, 김대중 후보가 804만 1284표[득표율 33.8%]로 2위, 정주영 후보가 388만 67표[득표율 16%]로 3위, 박찬종 후보가 151만 6047표[6%]로 4위를 차지하였고, 백기완·김옥선·이병호 후보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투표인수 6만 2905명에 투표자 수 5만 2572명으로 투표율은 83.6%였다.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 2,323표,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 4만 6557표,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 1,704표, 신정당의 박찬종 후보 238표, 정의당의 이병호 후보 98표, 무소속의 김옥선 후보 751표, 무소속의 백기완 후보가 182표를 각각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15. 제15대 대통령 선거
1997년 12월 18일 실시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국민신당의 이인제, 국민승리21의 권영길, 공화당의 허경영, 바른나라정치연합의 김한식, 그리고 통일한국당의 신정일 후보 등 모두 7명이 출마를 했다.
총선거인 수는 3229만 416명으로, 이 가운데 2604만 2633명[투표율 80.7%]이 투표에 참가하였고, 무효 40만 195표를 제외한 유효 투표수는 2564만 2438표였다. 후보별 득표는 김대중 후보가 1032만 6275표[득표율 40.3%]로 1위, 이회창 후보가 993만 5718표[득표율 38.7%]로 2위, 이인제 후보가 492만 5591표[득표율 19.2%]로 3위, 권영길 후보가 30만 6026표[득표율 1.2%]로 4위를 차지하였고, 신정일·김한식·허경영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투표인수 5만 8032명에 투표자 수 4만 9032명으로 투표율은 84.5%였다.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이회장 후보가 1,659표, 김대중 후보가 4만 4659표, 이인제 후보 728표, 권영길 후보 445표, 허경영 후보 72표, 김한식 후보 513표, 신정일 후보가 122표를 각각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16. 제16대 대통령 선거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한나라당의 이회창,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하나로국민연합의 이한동, 국태민안호국당의 김길수, 사회당의 김영규 등 6명이 출마하였다. 선거 결과 총 3499만 1529명의 유권자 가운데 2476만 141명이 투표에 참가해 70.8%의 투표율을 보였다. 이 가운데 노무현 후보가 유효 투표 총수의 48.9%인 1201만 4277표를 얻어 1144만 3297표[46.6%]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57만 980표[2.3%]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투표인수 5만 4115명에 투표자 수 4만 466명으로 투표율은 74.8%였다.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노무현 후보가 3만 6477표, 이회창 후보 2,192표, 권영길 후보 372표, 이한동 후보 142표, 김길수 후보 594표, 김영규 후보 43표를 각각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17. 제17대 대통령 선거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2007년 12월 19일 실시되었으며,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한나라당의 이명박,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민주당의 이인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참주인연합의 정근모, 경제공화당의 허경영, 새시대참사람연합의 전관, 한국사회당의 금민, 무소속의 이회창 등 10명이었다.
총 선거인은 부재자 81만 755명을 포함하여 3765만 3518명이었으며, 총 투표자는 2373만 2854명으로 투표율이 63%에 그쳤다. 투표 결과는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1149만 2389표를 얻어 득표율 48.7%로 당선되었고, 정동영이 617만 4681표[득표율 26.1%]로 2위를, 이회창이 355만 9963표[득표율 15.1%]로 3위를 기록하였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투표인수 5만 39명에 투표자 수 3만 4236명으로 투표율은 68.4%였다.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정동영 후보가 2만 8901표, 이명박 후보 2,308표, 권영길 후보 533표, 이인제 후보 249표, 문국현 후보 559표, 정근모 후보 26표, 허경영 후보 51표, 금민 후보가 36표를 각각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
1. 제헌 국회의원 선거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은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선거는 49개의 정당과 사회단체가 난립한 가운데 948명이 입후보하여 평균 4.7:1의 경쟁률을 보였으나 입후보자의 44%가 무소속이었다. 선거 결과 무소속이 85명,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명, 한국민주당 29명, 대동청년단 12명, 조선민족청년단 6명, 대한독립촉성농민총동맹 2명, 기타 단체 소속의 11명 등 모두 198명[제주도 2개구는 제주 4·3사태로 선거 연기]이 당선되어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를 열었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제6선거구[고창갑]와 제7선거구[고창을] 등 2개 선거구에서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제6선거구에서는 무소속의 김영동 후보가 8,317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고, 제7선거구에서는 1만 9787표를 획득한 한국민주당의 백관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2.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제헌국회에서 1950년 4월 10일 의결하여 12일에 법률 제121호로 공포된 새로운 「국회의원선거법」에 의하여 1950년 5월 30일에 실시되었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2개의 선거구에서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중 제15선거구[고창갑]에서는 총 10명의 후보가 출마하였으며 유효 투표수 3만 4871표 중 1만 999표를 획득한 무소속의 김수학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6선거구[고창을]에서는 총 11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유효 투표수 3만 5284표 중 6,360표를 획득한 무소속의 신용욱 후보가 당선되었다.
3.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5월 20에 실시될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하여 여당인 자유당은 그 조직을 강화하여 우리 선거 사상 처음으로 의원 후보자 공천제를 채택하였으며 원내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도 이에 대항하여 의원 후보자 공천제를 실시하였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2개의 선거구에서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중 제15선거구[고창갑]에서는 총 7명의 후보가 출마하였으며 유효 투표수 3만 2200표 중 1만 713표를 획득한 무소속의 정세환 후보가 자유당의 진의종 후보를 255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16선거구[고창을]에서는 총 3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유효 투표수 2만 9030표 중 1만 6103표를 획득한 자유당의 신용욱 후보가 당선되었다.
4.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법이 통과되었으나 참의원 선거는 사정상 실시되지 못하였다.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이르러서는 정당 정치의 기틀이 점차 잡히기 시작하여 유명무실한 군소정당·단체는 다소 정비되었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경우 제17선거구[고창갑]와 제18선거구[고창을] 등 2개 선거구에서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중 제17선거구[고창갑]에서는 총 5명의 후보가 출마하였으며 유효 투표수 3만 3900표 중 1만 296표를 획득한 자유당의 진의종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8선거구[고창을]에서는 총 2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유효 투표수 2만 9864명 중 1만 5321표를 획득한 민주당의 홍순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5.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제5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0년 7월 29일 실시되었다. 전라북도 고창군에서는 제17선거구와 제18선거구 2개 선거구에서 실시되었으며 이중 제17선거구[고창갑]의 경우 총 6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유효 투표수 3만 3847표 중 8,800표를 획득한 민주당의 유진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8선거구[고창을]의 경우 총 6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유효 투표수 3만 1735표 중 7,648표를 획득한 무소속의 김상흠 후보가 당선되었다.
6.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제6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3년 11월 26일 실시되었다. 전라북도 고창군은 개정된 선거법에 의해 전라북도 제9선거구로 확정되었다. 입후보자는 모두 8명이었으며 선거 결과 고창군 전체 유권자 8만 9827명 중 6만 5987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73.5%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유효 투표수 5만 8257표 중 1만 6680표를 획득한 민정당의 김상흠 후보가 당선되었다.
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고창군은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전라북도 제9선거구로 확정되었다. 이 선거에서 모두 5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였는데 선거 결과 고창 지역 총 유권자 9만 6335명 중 약 82.6%에 해당하는 7만 9550명이 투표를 하였으며 3만 9955표를 얻은 민주공화당의 신용남 후보가 신민당의 김상흠 후보를 1만 2151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8. 제8대 국회의원 선거
1971년 5월 25일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창군은 경상북도 제10선거구였다. 민주공화당의 신용남 후보, 신민당의 진의종 후보, 민주당의 안종엽 후보가 출마했으며 전체 유권자 8만 7612명 중 79.8%인 6만 9966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40,765표를 얻은 진의종 후보가 당선되었다.
9. 제9대 국회의원 선거[1973년 2월 27일]
고창군은 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에 의해 부안군과 합하여 전라북도 제6선거구로 확정되었다. 총선거인 수 15만 4710명에 투표자 수 11만 9338명으로 77.1%의 투표율을 나타내었다. 민주공화당의 이병옥 후보, 신민당의 김상흠 후보, 무소속의 김정기 후보, 무소속의 진의종 후보가 출마하여 3만 9684표를 얻은 이병옥 후보가 1위, 2만 8545표를 얻은 진의종 후보가 2위로 당선되었다.
10.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도 부안군과 같이 전라북도 제6선거구로 지정되었다. 총선거인 수 14만 9514명에 투표자 수 13만 212명으로 87.1%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민주공화당의 이호종 후보, 신민당의 진의종 후보, 민주통일당의 김일범 후보, 무소속의 김종수 후보, 무소속의 박용기 후보, 무소속의 정균환 후보가 각각 출마하여 3만 6941표를 얻은 박용기 후보와 3만 6478표를 얻은 이호종 후보가 각각 1, 2위로 당선되었다.
1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1981년 3월 15일 실시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창군은 개정 선거법에 따라 정읍군과 합하여 전라북도 제6선거구가 되었다. 총 선거인수 19만 4309명에 투표자 수 15만 8228명으로 81.4%의 투표율을 나타내었다. 민사당의 조병후 후보, 민주정의당의 진의종 후보, 신정당의 신정재 후보, 국민당의 이호종 후보, 원일민립당의 이경태 후보, 민한당의 김원기 후보, 무소속의 노동채 후보 등 7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인 결과 6만 1443표를 얻은 민주정의당의 진의종 후보와 4만 1789표를 얻은 민한당의 김원기 후보가 각각 1, 2위로 당선되었다.
12.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1985년 2월 12일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창군은 정주시와 정읍군을 합친 선거구로 선거가 이루어졌으며 총 선거인 수 19만 3832명에 투표자 수 16만 3984명으로 84.6%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국민당의 유종기 후보, 신민주당의 유갑종 후보, 민정당의 전종천 후보, 신민당의 이원배 후보, 민한당의 김원기 후보 등 5명의 후보자가 등록을 했으며 선거 결과 민정당의 전종천 후보가 6만 8248표, 신민주당의 유갑종 후보가 3만 7688표를 획득하여 1, 2위로 당선되었다.
13.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창군은 하나의 소선거구였다. 총 선거인 수 6만 8533명에 투표자 수 5만 8281명으로 85%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민정당의 이호종 후보, 민주당의 정재길 후보, 평민당의 정균환 후보, 무소속의 노동채 후보가 경합을 벌였으며 선거 결과는 평민당의 정균환 후보가 3만 1188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4.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1992년 3월 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창군은 하나의 선거구였으며, 총 선거인 수 6만 4004명에 투표자 수 4만 9669명으로 77.6%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민자당 이호종 후보, 민주당 정균환 후보, 국민당 노동채 후보가 출마하여 민주당 정균환 후보가 2만 6061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15.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1996년 4월 11일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창군은 단독 선거구로, 총 선거인 수 5만 9723명에 투표자 수 4만 3236명으로 72.4%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신한국당의 김주섭 후보, 국민회의의 정균환 후보가 출마하여 27,575표를 획득한 정균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16.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2000년 4월 13일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창군은 부안군과 합친 하나의 선거구로 되었으며, 총 선거인 수 11만 4266명에 투표자 수 73,491명으로 64.3%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한나라당의 이백용 후보, 민주당의 정균환 후보, 자민련의 김손 후보, 무소속의 김경민 후보, 무소속의 김종엽 후보, 무소속의 오인석 후보가 출마하여 5만 873표를 득표한 정균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17.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고창군은 부안군과 합친 하나의 선거구로 되었다. 총 선거인 수 10만 6145명에 투표자 수 6만 5607명으로 61.8%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한나라당의 김준 후보, 민주당의 정균환 후보, 우리당의 김춘진 후보, 자민련의 김영두 후보, 무소속의 김경민 후보, 무소속의 김옥현 후보, 무소속의 김주섭 후보, 무소속의 조민구 후보 등 9명이 출마하여 2만 3328표를 획득한 김춘진 후보가 당선되었다.
1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창군은 부안군과 합친 하나의 선거구로 되었다. 총 선거인 수 10만 245명에 투표자 수 4만 7292명으로 47.2%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통합민주당의 김춘진 후보, 한나라당의 김종훈 후보, 평화통일가정당의 서동주 후보가 출마하여 3만 5662표를 얻은 김춘진 후보가 당선되었다.
[지방 선거]
지방 선거로는 광역 의회 의원 선거, 광역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 기초 의회 의원 선거, 기초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 등이 실시되었다.
1. 광역 의회 의원 선거[도의원]
먼저 광역 의회 의원 선거는 1947년 7월 4일에 지방자치법이 제정·공포된 이래 제1대 도의회가 1952년 구성된 후 5·16군사정변과 함께 30여 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1991년 제4대 도의회가 구성된 이래 2010년 7월 현재 제9대 도의회가 구성되었다.
역대 도의원을 보면, 1952년 초대 도의원은 안기남, 박동차, 배상기, 박성렬, 1956년 제2대 도의원은 배상기, 국훈엽, 박성렬, 1960년 제3대 도의원은 정기수, 박용석, 이인규, 이승연, 1991년 제4대 도의원은 최백규[평민당], 최강선[평민당], 김용원[평민당], 1995년 제5대 도의원은 최백규[민주당], 최강선[민주당], 김용원[민주당], 1998년 제6대 도의원은 이상복[새정치국민회의], 정길진[새정치국민회의], 2002년 제7대 도의원은 정길진[무소속], 고석원[민주당], 2006년 제8대 도의원은 임동규[민주당], 고석원[민주당], 2010년 제9대 도의원은 김호서[민주당], 문면호[민주당], 유창희[민주당] 이다.
2. 기초 지방 의회 의원 선거[군의원]
기초 지방 의회 의원 선거[고창군 의회 의원 선거]는 1991년 3월 26일에 실시되어 현재 민선 6기를 경과하고 있다. 제1대 고창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고창읍 진남표, 김동훈, 고수면 이종운, 아산면 최형식[보궐 성호익], 무장면 이돈우, 공음면 최석기, 상하면 김양진, 해리면 오균호, 성송면 반기진, 대산면 김기채, 심원면 전종열, 흥덕면 신세재[보궐 김백수], 성내면 고병윤, 신림면 류길규, 부안면 전재준이었다.
제2대 고창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고창읍 진남표·김상필, 고수면 유길승, 아산면 성호익, 무장면 이돈우, 공음면 최석기, 상하면 노병열, 해리면 이만우, 성송면 이종위, 대산면 김기채, 심원면 전종열, 흥덕면 원병희, 성내면 고병윤, 신림면 유종윤, 부안면 김준형이었다.
제3대 고창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고창읍 진남표, 고수면 유길승, 아산면 성호익, 무장면 종기표, 공음면 최석기, 상하면 전춘식, 해리면 이만우, 성송면 심재규, 대산면 전기채, 심원면 한동수, 흥덕면 최인규, 성내면 이맹근, 신림면 류길규, 부안면 전재준[보궐 장세영]이었다.
제4대 고창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고창읍 김상필, 고수면 정종구, 아산면 성호익, 무장면 김남규, 공음면 최석기, 상하면 전춘식, 해리면 박현규, 성송면 심재규, 대산면 정원환, 심원면 박병옥, 흥덕면 최인규, 성내면 이재정, 신림면 이귀섭, 부안면 박영구였다.
제5대 고창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가선거구[고창읍·아산면·신림면] 3명[김종호·박래환·조민규], 나선거구[심원면·부안면·흥덕면·성내면] 2명[이재정·장세영], 다선거구[공음면·대산면·성송면·고수면] 2명[김갑성·김범진], 라선거구[해리면·무장면·상하면] 2명[박현규·이만우], 비례대표 1명[이옥순]으로 군의회가 구성되었다.
제6대 고창군 의회 의원 선거는 2010년 6월 2일 진행되었다. 선거를 통해 민주당 비례대표 1명을 포함하여 총 10명이 선출되었다.
3.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인 전라북도지사 선거는 1995년 6월 27일 처음 실시되었으며, 민자당의 강현욱 후보와 민주당의 유종근 후보가 출마하여 민선 초대 전라북도지사로 민주당 유종근 후보가 당선되었다. 고창군의 경우 유효 투표 수 4만 5792표 중 강현욱 후보는 1만 3796표, 유종근 후보는 3만 1996표를 각각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기 전라북도지사 선거에서도 국민회의 유종근이 단독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제3기 전라북도지사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라경균 후보, 민주당의 강현욱 후보, 무소속의 손주항 후보가 출마하여 민주당의 강현욱 후보가 당선되었다. 고창군의 경우 유효 투표 수 4만 631표 중 강현욱 후보 3만 656표, 손주항 후보 6,819표, 라경균 후보 3,156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4기 전라북도지사 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의 김완주 후보, 한나라당의 문용주 후보, 민주당의 정균환 후보, 민주노동당의 염경석 후보가 출마하여 열린우리당 김완주가 당선되었다. 고창군의 경우 유효 투표 수 3만 8856표 중 정균환 후보가 1만 6966표로 가장 많았으며 김완주 후보 1만 5802표, 염경석 후보 2,156표, 문용주 후보 1,932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4.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인 고창군수 선거는 1995년 6월 27일 처음 실시되었다. 민주당 정길진 후보, 무소속 안행연 후보, 무소속 이호종 후보가 출마했으며 유효 투표 수 4만 5941표 중 2만 3445표를 획득한 무소속 이호종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고창군수 선거에서 국민회의 이호종 후보, 무소속의 최백규 후보가 출마하여 국민회의 이호종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이강수 후보, 무소속 이호종 후보, 무소속 주재기 후보, 무소속 진남표 후보가 고창군수 후보로 출마했다. 유표 투표 수 4만 801표 중 1만 6164표를 획득한 민주당의 이강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4기 고창군수 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정길진 후보, 민주당 이강수 후보, 무소속 정원환 후보가 출마했으며 유효 투표 수 3만 6859표 중 2만 1586표를 획득한 민주당 이강수 후보가 재선되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2010년 6월 2일 실시되었다. 고창군수의 경우 민주당 이강수 후보가 당선됐다. 고창군 이강수 후보는 총 3만 6936표 중 2만 660표를 얻어 55.9%의 지지율을 보이며 삼선에 당선됐다. 무소속 정원환 후보는 9,598표를 얻어 25% 득표율을 얻었으며,평화민주당 박세근 후보는 5,547표를 얻어 15%의 득표율을 얻었다.
[기타 선거]
기타 선거로 민선 교육 위원 선거와 민선 교육감 선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등이 실시되었다.
1. 제1대 면의원 선거
제1대 고창면[현 고창읍] 의회 의원으로 조필승, 박동영, 서동현, 홍종승, 김일병, 신길동, 임주성, 조택승, 임홍조, 김재국, 서용현, 김재철, 유홍석, 유한석 등 14명이 당선되었다. 고수면 의회 의원으로 안병호, 유용태, 서치용, 김재길, 이규열, 박창휴, 김봉희, 김사춘, 조병학, 안석원, 김옥식, 유봉석 등 12명이 당선되었다.
성송면 의회 의원으로 정기환, 강수원, 정휴섭, 정휴성, 강태문, 박금년, 김사석, 정석균, 이기천, 김정원, 권혁진, 유봉, 정기만 등 13명이 당선되었다. 아산면 의회 의원으로 유제환, 박병원, 신동구, 강종원, 이관재, 정사득, 김재열, 오복환, 오석근, 조철진, 이기호, 김판근 등 12명이 당선되었다. 상하면 의회 의원으로 김재엽, 김강용, 김봉채, 전백용, 이영규, 김근호, 박영무, 김재곤, 황치업, 오태성, 서규현, 표상천 등 12명이 당선되었다.
해리면 의회 의원으로 김요철, 박병욱, 김영태, 김대진, 성하석, 이현택, 김철수, 김채형, 김용태, 김일원, 이성윤, 이권영 등 12명이 당선되었다. 부안면 의회 의원으로 정인명, 조경환, 윤형중, 신재성, 강길수, 김일래, 이은우, 정동학, 이전우, 조동환, 안창헌, 전성엽, 조규성 등 13명이 당선되었다.
흥덕면 의회 의원으로 김상회, 신용선, 박주찬, 심갑식, 진수성, 이봉길, 최임환, 변우섭, 이채환, 김일남, 박봉기, 김종숙, 김윤병 등 13명이 당선되었다. 신림면 의회 의원으로 김인수, 박녹구, 이춘식, 조성채, 김장수, 고광태, 기봉석, 이의권, 김정수, 고광남, 오제금, 유희석, 유종태 등 13명이 당선되었다.
성내면 의회 의원으로 이철수, 정휴선, 이병노, 황정구, 백남섭, 이병연, 백남이, 고판길, 황봉익, 노학종, 이재범, 장희동 등 12명이 당선되었다. 대산면 의회 의원으로 김재복, 김재경, 강지규, 김동흡, 강영수, 이형석, 안규연, 정주묵, 오응종, 신두석, 오회근, 유동식, 기우섭 등 13명이 당선되었다.
무장면 의회 의원으로 김원용, 김방수, 김정빈, 김경수, 이응철, 김맹규, 정기주, 노동입, 이강수, 정휴춘, 정기식, 김윤성 등 12명이 당선되었다. 공음면 의회 의원으로 박윤구, 채홍업, 최판길, 김송회, 김용섭, 배형섭, 전근호, 김영기, 정균택, 문창환, 정경일, 김양규, 이태진 등 13명이 당선되었다. 심원면 의회 의원으로 정재후, 김요성, 진세언, 박연철, 김병우, 이관헌, 김성열, 양진섭, 김재정, 이창수, 김창기, 손양협 등 12명이 당선되었다.
2. 제2대 읍·면의원 선거
1952년에 실시한 지방 자치 단체 의회 의원 선거에 따라 구성된 지방 의회 의원의 임기 4년이 만료되는 총선거에 대비하여 1956년 2월 13일 「지방자치법」이 개정, 공포되고 그 해 7월 8일 다시 그 일부가 개정되어 그 해 8월 8일 시·읍·면장과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읍·면장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토록 했다. 그리고 지방 자치 단체장에 대한 의회의 불신임권을 폐지시켰다. 시·읍·면장 선거는 1,491개의 시·읍·면 중 임기 만료된 580개 지역에서,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는 1,458개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두 선거 결과 자유당은 제1대 지방 의회 때보다 더 많은 당선자를 내어 안정세를 확보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자유당의 득세가 확연히 드러났다.
3. 제3대 읍·면의원 선거
1960년에 시행할 예정이던 지방 자치 단체의 선거에 대비하기 위하여 1958년 12월 24일 각급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을 임명제로 하는 「지방자치법」 중 개정 법률안이 자유당에 의하여 국회를 통과하게 되고, 그 해 12월 26일 공포되어 임기 만료에 의한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은 임명제로 되었으나, 각급 지방 의회 의원은 대체로 1960년 8월에야 그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법에 의한 선거는 4·19혁명 이후 헌법이 개정되어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지방자치법」의 개정을 보게 되었다. 1960년 11월 1일 새로 공포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그 해 12월 12일 서울특별시·도의회 의원 선거를, 12월 19일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를, 12월 26일 시·읍·면장 선거를, 12월 29일 서울특별시장·도지사 선거를 각각 실시하였다.
전라북도의 읍의원 선거는 정수 92명에 200명이 출마하여 평균 2.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투표율은 80.1%로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투표 결과 무소속 79명, 민주당 12명, 신민당이 1명으로 무소속이 강세를 보였다. 면의원 선거에서는 정수 1,763석을 놓고 3,465명이 참여하여 약 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선거 결과 무소속이 1,350명, 민주당이 372명, 신민당이 37명, 기타 3명이 선출되어 면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의 강세를 읽을 수 있겠다.
읍장 선거에서는 총 8석을 놓고 40명이 입후보하여 5대 1의 경쟁을 보였다. 투표 결과 무소속이 7석, 민주당이 1석을 차지해 읍장 선거 역시 무소속이 싹쓸이를 했다. 그리고 164석의 면장 선거에서는 783명이 출마하여 4.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투표 결과 무소속이 121명, 민주당이 40명, 신민당이 3명을 당선시켜 면장 선거에서도 단연 무소속이 강세를 보였다. 읍·면장 선거나 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사실상 패배하고 무소속이 약진했다는 것은 그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정부에 대해 국민들의 불신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다.
4. 교육위원 선거
지방 교육 자치 제도는 교육 행정이 일반 행정으로부터 분리 독립됨과 동시에 지방교육이 중앙 교육으로부터 분리 독립되는 것이다. 지방 교육 자치 제도는 교육 행정 제도상의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므로 지방 분권의 원리와 주민 자치제의 원리, 그리고 일반 행정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의 원리, 전문적 관리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9년 12월에 「교육법」과 1952년 4월에 교육시행령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1952년 5월 24일 시·군교육위원회 위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이후 1962년 1월 6일에 공포된 교육법 개정법률 제955호와 각령 제233호에 의해 시·군 교육위원회가 폐지되었다. 그러다 1964년 1월 1일부터 교육법 개정 법률 제1435호에 의해 합의제 집행 기관인 도 교육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교육 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은 지방 자치제 실시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합의제 집행 기관이었던 교육위원회는 1991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부터 의결 기관인 교육위원회와 집행 기관인 교육감으로 분리되고, 종전의 임명제 방식을 선거제 방식으로 바꾸었다.
의결 기관인 교육위원은 각 시·군·구의회에서 2인씩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1인을 시·도의회에서 선출하고, 교육감은 당해 교육위원회에서 선출하였다. 그 후 1997년 12월 17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초·중등교육법」 제31조의 규정에 의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선출한 선거인과 「교육기본법」 제15조의 규정에 따라 시·도에 조직된 교원단체에서 추천한 교원인 선거인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서 교육위원과 교육감을 선출하도록 하였다.
다시 2000년 1월 28일 위 법률이 전면 개정되어, 교육 위원 또는 교육감의 선거인단은 선거일 공고일 현재 「초·중등교육법」 제31조의 규정에 의한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전원으로 구성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006년 12월 20일 이 법률이 다시 개정되어 교육위원과 교육감을 주민이 직접 선출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이 교육위원을 직접 선출했던 적은 1952년 5월 24일에 실시된 시·군교육위원회 위원 선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1991년 교육자치제가 부활되면서 교육위원이 선출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제1대와 2대 때에는 교육위원이 각 시군 단위에서 2명씩 추천되어 도의회에서 그 중 1명씩을 선출하였다. 고창군에서는 유병천이 제1대와 2대의 교육위원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제2기 때 고창 출신 염규윤이 제11대 교육감에 피선되었으나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비리 때문에 중도 하차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때에는 15명의 교육위원들이 교육감을 선출하였다. 3대 때부터는 전라북도를 4개의 선거구로 나누어 2~3명씩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였는데 고창군은 정읍시, 남원시, 임실군, 순창군과 한 선거구가 되었다. 이때부터 고창에 연고를 둔 교육위원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다.
그러나 고창 출신이면서 타 지역에서 교육위원에 출마하여 당선된 동향인들로서는 제4대 때 전주에서 교육위원에 출마하여 대기 후보로 있다 교육위원인 된 진동규와 제5대 때 전주에서 출마해 당선된 박규선과 신국중을 들 수 있다. 신국중은 당선 후 의장에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