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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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鷄山里 |
영어음역 | Gye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상휘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계산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계산(鷄山)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임진왜란 때 광산김씨가 피난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고창군 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지산(芝山)·부정(釜鼎)·비석·사신·병암·내독 일부를 병합하여 계산리라 하고 아산면에 편입하였다.
[자연환경]
계산 뒤쪽에 계산이 솟아 있고, 병암에는 병풍바우[屛岩]가 병풍처럼 둘러 있다.
[현황]
계산리는 아산면의 중부에 있다.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6.09㎢로 밭 0.15㎢, 논 0.86㎢이며, 201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총 96세대에 175명[남 86명, 여 8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계산리·부정리 2개의 행정리와 계산·사신원(四信院)·비석·지산[일명 기산]·부정·명암·샛터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사신원은 계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 사신원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비석촌은 계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사신들이 주진천[인천강]을 건너다니던 곳 양쪽에 비석을 세워서 붙인 이름이다. 지산은 부정 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키처럼 생겨 사투리로 치산이라 하던 것이 변한 이름이다. 부정은 계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명암은 계산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계산저수지가 있고, 저수지를 축조하면서 수몰된 곳에 있던 120톤 규모의 고인돌을 댐 어귀로 옮기었다. 2010년 4월 28일에는 계산저수지 앞에 있던 90톤 규모의 고인돌을 고창읍 죽림리 고창고인돌박물관으로 옮겨와 야외마당에 전시했기도 했다. 사신원에는 조선 시대의 원(院) 터인 사신원 터가 있다. 계산리 오른쪽으로 군도 19호선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