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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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信院 |
영어음역 | Sasin-won |
영어의미역 | Sasin-won Lodging Facili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고려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역원제도라고 일컫는다.
수령이 부근의 승려, 향리, 관리 가운데에서 원주(院主)를 임명하고 잡역을 면제해 주는 대신 원의 운영을 책임지게 하였으나, 수령이 원주를 제대로 파견하지 못하게 되면서 원우(院宇)가 낡거나 파괴되자 관리들의 이용이 줄어들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주막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제정경위 및 목적]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에게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고자 사신원(四信院)을 설치하였다.
[내용]
사신원은 무장현에 있던 원의 하나로 현의 북쪽 18리에 있었다. 사신원에 관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만 있는 점으로 미루어 비교적 후기에 잠시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신원이 있던 마을은 지금의 아산면 계산리 사신원마을이다. 계산리는 본래 고창현 산내면에 속했던 지역인데 어떤 이유에서 무장현에 속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황]
사신원마을에 사신원 터가 있고, 계산리의 동남쪽 지역인 비석마을에는 예전 사신들이 이곳에 있는 주진천[인천강]을 건너다니는 데 편리하도록 목표물로 양쪽에 비석을 세웠던 곳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곳이 무장현에 속했던 사신원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