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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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金氏 |
영어음역 | Gwangsan Gimssi |
영어의미역 | Gwangsan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집필자 | 이기화 |
[정의]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인우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연원]
신라 신무왕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이 장차 있을 국난을 예감하고 전라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서일동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12대손 김인우(金仁雨)는 양간공 김연(金璉)의 현손으로 1329년(충숙왕 16) 송도에서 태어나 공민왕 대에 홍건적을 물리쳐 호종공신으로 녹훈되었다.
김인우의 아우 김갑우(金甲雨)[1300~1369]는 좌우위대장군(左右衛大將軍)으로 탐라(耽羅)의 공마(貢馬) 50필을 몰고 명나라 황제에게 공납하러 가는 도중 2필을 잃었다가 발각되어 공민왕에게 주살되었다. 이 일로 김인우는 45세에 정3품의 전리판서밀직부사(典理判書密直副使)에서 종7품의 장사감무(長沙監務)로 강등되었고, 고려가 망하자 임지에서 은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송경실기(松京實記)』에 따르면, 아들인 사은(沙隱) 김승길(金承吉)은 정몽주(鄭夢周)의 선죽교 사건을 보고 고려를 구하지 못함은 대를 잇는 불충임을 개탄하여 아버지 뜻을 쫓아 장사에 은거하였다.
김승길의 아들 김오행(金五行)은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梅山里)에 숨어 살며 호를 매은(梅隱)으로 짓고 출사하지 않았다. 김오행의 큰아들 김석원(金錫元)도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를 지낸 뒤 은퇴하여 호를 매산으로 짓고 매산에서 대를 이었고, 둘째 아들 김양원(金暘元)과 셋째 아들 김명원(金命元)도 매산에 뿌리를 내렸다.
[입향경위]
1374년(공민왕 23) 이후 김인우의 아우 김갑우가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로 죄자입자 김인우도 장사감무로 좌천되어 낙향하였다. 그 후 조선 개국 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교동마을에 은신하여 후손들이 대대로 살게 되었다.
[현황]
2009년 현재 양간공파 후손들이 대산면, 성송면, 고수면, 무장면, 상하면, 고창읍에 세거하고 있다. 양간공파 외에도 화평부원군(化平府院君) 김석견(金石堅)의 13대손 삼회당(三悔堂) 김대(金對)가 1721년(경종 1) 출생지인 대산면 갈마리를 떠나 농사지을 곳을 찾아 신림면 법지리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인근 흥덕면에, 파조를 달리하는 후손들이 부안면 수남리·상암리·봉암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문숙공(文肅公) 김주승(金周昇)의 후손들은 고수면 두평리, 무장면 월림리, 흥덕면 하남리, 신림면 자포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군내(郡內)에 1,634가구에 4,212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