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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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師任堂 |
영어음역 | Sin Saimdang |
이칭/별칭 | 시임당(媤任堂),임사재(妊思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대길 |
[정의]
조선 중기 강릉 출신의 여류 예술가.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사임당(師任堂)은 당호(堂號)이다. 증조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신자승(申自繩)이고, 조부는 영월군수를 지낸 신숙권(申叔權)이다. 아버지는 신명화(申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 이사온(李思溫)의 딸이다. 남편은 증좌찬성 이원수(李元秀)이고, 조선 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생애]
신사임당[1504~1551]은 중종대 여류 예술가로 시·그림·글씨에 능했으며, 한국 여성의 표상이 되고 있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北坪村)에서 태어나 자랐다. 19세에 덕수이씨(德水李氏)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하였으며, 그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였으므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다. 결혼 몇 달 뒤 아버지 신명화가 세상을 떠나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으며, 선조 때부터 시집의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다. 1541년 38세에 시집 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왔으며,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과 청진동에 해당되는 수진방(壽進坊)에서 살다가 1551년 봄에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이 해 여름 남편 이원수가 수운판관(水運判官)이 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신사임당이 13세 때인 1516년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아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었으며 1519년에 발생한 기묘사화의 참화를 면하였다. 외할아버지 이사온(思溫)이 어머니를 아들잡이로 여겨 출가 후에도 계속 친정에 머물러 살도록 하였기 때문에 신사임당도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범(女範)과 더불어 학문을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라났다. 최고의 여성상인 태임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신사임당이란 당호를 지었다.
신사임당이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사임당의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좋은 환경이 있었다. 7세에 안견(安堅)의 그림을 스스로 사숙(私淑)한 것에서 그 재능을 찾아볼 수 있으며,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예술가로서 대성할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감회가 일어나 눈물을 지었다든지 또는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것 등은 신사임당의 섬세한 감정이 남다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신사임당은 시·서·화(詩·書·畵)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림으로는 풀벌레·포도·화조·어죽(魚竹)·매화·난초·산수 등을 주로 그렸는데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산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뚫어질 뻔 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림으로 채색화·묵화 등 약 40폭 정도가 전해지고 있다. 글씨로는 초서 여섯 폭과 해서 한 폭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몇 조각의 글씨에서도 신사임당의 고상한 정신과 성품을 볼 수 있다. 1868년 강릉부사로 간 윤종의(尹宗儀)는 신사임당의 글씨를 영원히 후세에 남기고자 그 글씨를 판각하여 오죽헌에 보관하면서 발문을 적었다.
신사임당이 절묘한 경지의 예술 세계에 머문 중요한 동기는 환경이었다. 무엇보다 현철한 어머니의 훈조를 마음껏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가졌다는 점과 그녀의 예술성을 북돋아 준 남편 이원수가 있었다. 신사임당이 친정에서 많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원수와 시어머니의 도량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원수는 신사임당의 그림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신사임당을 이해하고 또 재능을 인정하였다.
신사임당의 자녀들 중 그의 훈도와 감화를 제일 많이 받은 것은 셋째 아들 이이(李珥)이다. 이이는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행장기를 저술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 우아한 천품과 순효(純孝)한 성품 등을 밝히고 있다. 신사임당은 현모로서 아들 이이는 대학자로, 아들 이우(李瑀)와 큰딸 이매창(梅窓)은 자신의 재주를 계승한 예술가로 키웠다.
[작품]
신사임당은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났다. 그림으로는 「자리도(紫鯉圖)」·「산수도(山水圖)」·「초충도(草蟲圖)」·「노안도(蘆雁圖)」·「연로도(蓮鷺圖)」·「요안조압도(蓼岸鳥鴨圖)」와 글씨로 6폭초서병풍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