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현 문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571
한자 宋象賢文籍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직지대로 713] 청주고인쇄박물관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 5월 9일연표보기 - 송상현 문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송상현 문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고문서
제작시기/일시 1592년(선조 25)~1832년(순조 32)
유물 수 5건 10점
소장처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처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직지대로 713]
소유자 여산송씨 충렬공파 종중
관리자 청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는 송상현 관련 조선시대 고문서들.

[개설]

1592년(선조 25년) 동래부사로 재임중 왜군에 맞서 목숨을 바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의 업적을 알려주는  여산송씨 충렬공파 종중 소유의 문서들로 현재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를 포함하여 5건 10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유물들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송상현의 일괄 유물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형태]

송상현 문적은 「동래부순절도」 1폭, 교지(敎旨) 3매, 치제문(致祭文) 4매, 혈선발(血扇跋) 1첩, 『천곡수필집(泉谷隨筆集)』 1책 등 5건 10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래부순절도」는 1658년(효종 9년) 동래부사였던 민정중(閔鼎重)[1628~1692]이 임진왜란 당시의 동래성 전투 상황을 잘 아는 노인의 말을 토대로 그린 그림이다. 동래성에서 왜군의 침략에 대응하다 순절한 송상현과 군민들의 항전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709년(숙종 35년) 이 순절도를 모사한 가로 96㎝, 세로 145㎝ 크기의 「동래부순절도」가 보물 제392로 지정되어 육군사관학교 내 육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교지는 3매로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추증교지로 가로 105.9㎝, 세로 77.8㎝ 크기이며 1741년(영조 17) 정이품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던 송상현에게 다시 종일품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으로 추증한 교지이다. 부인 이씨 정경부인(貞敬夫人) 추증교지는 가로 105.8㎝, 세로 77.8㎝ 크기로 1741년(영조 17)에 추증된 송상현의 품직(品職)에 따라 부인 이씨에게 정경부인의 품계를 추증한 교지이다.

충렬공(忠烈公) 시호 추증교지는 가로 111.5㎝, 세로 59㎝ 크기로 송상현의 시호를 충렬공이라 추증할 때의 교지이다. 교지의 말미 부분이 손상되어 시호와 교지를 내린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숭정대부에 추증된 것으로 미루어 의정부좌찬성으로 추증되었을 때의 교지와 함께 하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치제문은 4매로, 숙묘정유(肅廟丁酉) 사묘제문(賜墓祭文)은 가로 44.3㎝, 세로 56㎝ 크기이며 1717년(숙종 43년) 예조정랑(禮曹正郞) 김윤해(金潤海)를 송상현의 묘소로 보내 치제할 때에 하사한 제문이다. 영묘경오(英廟庚午) 사묘제문(賜廟祭文)은 가로 54.6㎝, 세로 57.2㎝ 크기로 1750년(영조 26년) 영조송상현의 묘소 인근을 지나다가 예조정랑 신일청(申一淸)을 보내 치제할 때에 하사한 제문이다.

영묘어제(英墓御製) 임진사묘제문(壬辰賜墓祭文)은 가로 80㎝, 세로 53㎝ 크기로 1772년(영조 48년) 예조정랑 변경진(邊景鎭)을 송상현의 묘소로 보내 치제할 때에 하사한 제문이다. 순묘임진(純墓壬辰) 사동래단제문(賜東萊壇祭文)은 가로 84.6㎝, 세로 57.8㎝ 크기로 1832년(순조 32년) 동래도호부사(東萊都護府使) 박제명(朴齊明)을 동래단(東萊壇)으로 보내 치제할 때에 하사한 제문이다.

혈선발은 송상현이 죽기를 결심하였을 때에 그의 대인(大人) 송화공(松禾公)을 영결(永訣)하면서 부채에 “孤城月暈 列陣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고성월훈 열진고침 군신의중 부자은경)이라 혈서한 16자가 전해지던 것을 1756년(영조 31년)에 윤봉구(尹鳳九)가 제술(製述)한 것이다. 가로 39.3㎝, 세로 67㎝의 크기이다.

『천곡수필집』은 종가에 전해오는 송상현의 유필로 추정되는 가로 21.3㎝, 세로 27㎝의 불분권(不分卷) 1책의 필사본(筆寫本)이다. 송상현이 개인적인 처신과 정치 및 학문에 관한 사항들을 당시 여러 선생들로부터 문답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표지를 포함하여 전체 52장 1책이며, 표지에 천곡수필집(泉谷隨筆集)이라 쓰여 있다.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천곡수필집』은 서(序)는 없고 내지에 후손인 송수일(宋秀一)이 쓴 발(跋)이 있다. 또한 송수일이 정리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문답에 대한 주제와 문답자가 정리되어 있다. 필사 시기와 그 경위가 분명치 않으며, 후손 송수일의 발문도 1812년에 쓴 것으로 송상현이 사거한 지 200여 년이 지난 후의 기록이다. 그러나 종가에 전해오던 것이므로 천곡 송상현이 직접 정리하고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송상현의 저술이 적지 않았음은 그의 유저작『천곡선생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후로 많은 저술이 일실되어 현재 『천곡선생집』 외에는 별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의의와 평가]

송상현 문적송상현의 유물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일괄 유물로 그의 업적과 학식,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로 평가되고 있다. 역사 자료 및 교육 자료로써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5월 9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3.30 본문 내용 수정 부채에 “孤城月暈 列鎭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고성월훈 열진고침 군신의중 부자은경)이라 혈서한 16자가 전해지던 것을 ->부채에 “孤城月暈 列陣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고성월훈 열진고침 군신의중 부자은경)이라 혈서한 16자가 전해지던 것을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