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동 이정골 - 문화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528
한자 龍亭洞-
이칭/별칭 유정골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가구수 100여 가구

[문화유적]

(1) 신항서원(莘巷書院)

이정골마을 뒷산 산자락에 서향(西向)으로 위치한 신항서원(莘巷書院)은 조선 선조 3년(1570) 창건되었다. 아산현감 경연(慶延)·문도공 동부승지 강수 박훈(朴薰)[1484~1540]·문간공 형조판서 충암(冲菴) 김정(金淨)[1486~1521]·문충공 대사헌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1487~1547] 등 이 지방 출신 선현 4인을 모시다가, 임진왜란 때 불에 소실되었다. 인조 20년(1642)에 재건하면서 문정공 좌승지 송재(松齋) 한충(韓忠)[1486~1521]을 추향하고, 효종 원년(1650)에 충렬(忠烈)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과 괴산군수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을 추향하고, 효종 7년(1656)에 문성공 좌찬성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와 문정공 시중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을 추향하였다. 이 때까지의 명칭은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으며, 1660년(현종 1)에 사액되면서 신항서원으로 개칭하였다.

신항서원에서는 원생 30인과 자모생 30인을 뽑았으며,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하고 있다.

고종 8년(1871)에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고종 29년(1892)에 복구하도록 허가되어 광무 9년(1904)에 복구되고, 1957년 지방 유지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현재의 서원은 1987년에 보수한 건물이다. 서원마당에는 숙종 11년(1685)에 송시열이 글을 짓고 조형기(趙亨期)가 글씨를 쓰고 김수환(金壽桓)이 제전(題篆)을 쓴 신항서원묘정비가 있다. 1978년 12월 6일 도지정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신항서원은 이 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마을 주변의 임야가 거의 서원의 소유로 마을 사람들이 소작을 지어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기 전에는 마을 아이들이 이곳에서 많이 놀았다고 한다.

(2) 용정동석불입상(龍亭洞石佛立像)

용정동 이정골마을 입구 하천 옆 들에 서 있다. 이 돌 아랫부분에 순치(順治) 9년(효종 3년, 1652) 11월 16일에 세웠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그래서 “순치명석불입상”이라고도 한다. 높이 316㎝의 기둥형태의 석주에 불상의 얼굴만을 조각하여 마치 장승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마에 있는 큰 백호가 인상적이다.

이정골 주민들은 이 석불을 장승이라고 하며, 매년 정월 동제를 지낼 때 이 석불에도 제를 올린다. 따라서 이 석불은 절의 예배불상이라기보다는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겸하는 민간의 불상 혹은 장승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이 석불은 원래 두 개였다고 한다. 예전에 큰 홍수가 나서 멀리 떠내려갔던 것을 주민들이 옮겨다가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이 석불과 관련하여 몇 개의 이야기가 전한다(설화·민요 항목 참조).

1985년 12월 28일 도지정문화제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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