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동 동양촌 - 생활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494
한자 -東陽村-
이칭/별칭 산양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생활상]

동양촌은 벼농사를 위주로 생계를 유지하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일제시대에는 부업으로 동네 주민 전체가 인조진주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유리를 달구어 만든 인조진주를 마을의 중간 상인을 통해 조치원 장에 내다 팔아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전형적인 농촌 생활상을 보이던 동양촌은 청주의 도시화와 함께 급격히 변하였다. 그 주요인은 도로의 개설과 대단위 아파트단지의 유입이다. 이전에는 현재 흥덕고등학교, 복대초등학교 자리까지 한 마을생활권이었으나 도로가 개설된 이후 분리되었고, 1990년대 이후 마을 앞 농토가 택지로 개발되면서 이전의 전통적인 생활상이 급격하게 바뀌게 되었다. 동양촌에는 정안들, 선반들, 인경들(또는 연경들) 등의 큰 들이 있었는데, 생활터전인 이 들판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주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다른 생계수단을 찾거나,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서 마을을 떠나갔다. 그 자리에 많은 외부 인구가 유입되었고, 이러한 결과 촌락의 구조가 이원화되어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서로 다른 생활상이 공존하게 되었다.

대규모 상권이 형성되면서 대동계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마을의 생활상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마을 촌락의 구조도 마을 앞 들판이 개발되면서, 마을의 풍경도 바뀌게 되어 마을 서쪽은 많은 원룸형 주거지가 들어선 상태이고, 마을 뒤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 마을 동쪽인 윗산양재만이 이전 생활상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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