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동 동양촌 - 개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492
한자 -東陽村-
이칭/별칭 산양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의]

행정명은 흥덕구 강서 1동 24통이고, 법정명은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飛下洞) 동양촌(東陽村)이다.

[개관]

비하동은 시의 서부에 있으며, 동쪽은 복대동, 서쪽은 지동동, 남쪽은 강서동, 북쪽은 향정동과 접해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 지역으로 피아골, 피하골 또는 비하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동(道洞) 동양리(東陽里)와 주봉리(周峰里), 반송리(盤松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비하리라 하여 청원군 강내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83년 2월 대통령령에 의하여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청원군 강내면 비하1구(피앗골), 비하2구(산양재), 비하3구(한갓골)가 현재 강서1동 24통(윗말, 산양재)이다. 예전에는 산양재라는 이름을 더 많이 불렀는데 구한말에 산양재마을이 동양촌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동양촌은 순천박씨(順天朴氏) 집성촌이다. 조선시대 사육신인 박팽년의 후손들로, 역적으로 몰려 진도로 피난 갔다가 세상이 잠잠해진 후 짐대마루(현재의 청주시 복대동)에 세거하게 되었는데, 그중 일부가 비하동 동양촌으로 분가하면서 이들을 ‘짐대마루 박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이 도시화 되면서 점차 각성받이 마을로 변화되었으며, 현재 토박이는 50호 정도 남아 있고, 그중 십여 호만 순천박씨 가구이다. 원주민보다는 1990년 후반에 이주해 오거나 2000년 무렵 생긴 원룸에 거주하는 인구수가 더 많다.

[정보제공]

  • •  김재택(남, 1937년생,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230, 토박이)
  • •  박영순(남, 1928년생,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141, 토박이)
  • •  박종술(朴鍾述)(남, 1923년생,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132, 토박이)
  • •  박종호(남, 1924년생,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398-1, 노인회장, 토박이)
  • •  오진국(남, 1939년생,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138-1, 청원군 오창면에서 30년전 이주)
  • •  윤철용(여, 1912년생,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731, 청원군 북이면 가래울에서 스물 두 살에 시집옴.)
  • •  임태숙(여, 1928년생,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155-3,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용호리에서 스무 살에 시집 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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