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412
한자 淸州-姓氏-
영어의미역 Questing for Cheongju's native family names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양식

[정의]

청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성씨.

[유래]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라는 것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이는 씨족의 근거지가 되는 지명에서 취하여 진 것으로 그 씨족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이 같고 관이 같으면 같은 씨족에 속하는 혈연관계에 있으므로 혼인도 금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우리나라의 성은 250~280개 정도이다. 그렇지만 같은 성도 본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실제 성의 종류는 본관의 숫자에 따라 좌우된다. 1985년 인구센서스조사에 의해 파악된 성씨는 모두 274개에 본관이 무려 3,349본(本)이나 된다.

그러면 청주에 살던 성씨는 얼마나 될까? 1530년에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청주가 본관으로 기록된 성씨는 한(韓)·이(李)·김(金)·곽(郭)·손(孫)·경(慶)·송(宋)·고(高)·준(俊)·양(楊)·동방(東方)·정(鄭) 등으로, 이들 성씨는 적어도 고려시대부터 청주를 기반으로 세력을 떨쳤던 토박이 성씨들로 보인다.

청주의 토박이 성씨는 조선후기에 들어와 점점 늘어났다. 1760년에 편찬된『여지도서(輿地圖書)』, 『청주지(淸州誌)』 등에는 청주의 세거성씨가 모두 29성 54본이나 기록되어 있다. 이들 성씨는 다음과 같다.

이씨(李氏) : 완산(完山), 한산(韓山), 청주(淸州), 전의(全義), 경주(慶州), 고성(固城)

김씨(金氏) : 경주(慶州), 청풍(淸風), 안동(安東), 광주(光州), 연안(延安)

손씨(孫氏) : 구례(求禮), 밀양(密陽)

권씨(權氏) : 안동(安東)

정씨(鄭氏) : 동래(東萊), 진주(晉州), 초계(草溪)

고씨(高氏) : 제주(濟州)

양씨(楊氏) : 금작양중화(今作楊中和)

곽씨(郭氏) : 청주(淸州), 현풍(玄風)

노씨(盧氏) : 교하(交河)

유씨(柳氏) : 문화(文化), 진주(晉州)

홍씨(洪氏) : 남양(南陽), 풍산(豊山)

박씨(朴氏) : 상주(尙州), 순천(順天), 반남(潘南), 밀양(密陽)

신씨(申氏) : 고령(高靈), 평산(平山), 아주(鵝州)

하씨(河氏) : 진주(晉州)

오씨(吳氏) : 보성(寶城)

조씨(趙氏) : 백천(白川), 양주(楊洲), 한양(漢陽), 평양(平壤)

장씨(張氏) : 인동(仁同)

민씨(閔氏) : 여흥(驪興)

변씨(卞氏) : 초계(草溪)

최씨(崔氏) : 화순(和順), 삭녕(朔寧), 경주(慶州)

지씨(池氏) : 충주(忠州)

채씨(蔡氏) : 인천(仁川)

남씨(南氏) : 의령(宜寧)

강씨(姜氏) : 진주(晉州)

서씨(徐氏) : 대구(大邱)

임씨(任氏) : 풍천(豊川)

임씨(林氏) : 부안(扶安)

연씨(延氏) : 곡산(谷山)

마씨(馬氏) : 속(續)

이들 성씨 중에서 청주지역에서 번성하고 세력을 떨쳤던 대성(大姓)은 ‘청주 8대성(大姓)’으로 일컬어지던 8개의 성씨들이다. 이들 8대성은 다음과 같다.

한산이씨(韓山李氏), 밀양박씨(密陽朴氏), 초계변씨(草溪卞氏), 남양홍씨(南陽洪氏), 청주한씨(淸州韓氏), 여흥민씨(驪興閔氏), 교하노씨(交河盧氏),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이들 8대성은 조선후기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토박이들인데, 그 중에서 청주를 본관으로 한 성씨는 청주한씨(淸州韓氏)가 유일하다. 이들 8대성은 조선후기에 청주 관아를 중심으로 동(평산신씨·남양홍씨), 서(밀양박씨(密陽朴氏)), 남(청주 한씨·교하노씨(交河盧氏)), 북(한산 이씨·초계변씨(草溪卞氏)·여흥 민씨) 사방에 자리를 잡고 세거하였는데, 이들 세거지중 2004년 현재 청주시에 속해 있는 성씨는 주성동의 한산이씨와 방서동청주한씨이다. 이들 성씨가 역사적으로 현 청주시의 최고 토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은 청주에 어떤 성씨가 살고 어떤 성씨가 토박이일까? 통계청에서 2000년도에 조사·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청주시 인구는 모두 179,294 가구에 모두 585,622명이다. 이들의 성씨는 모두 230개이고 본관별 성씨수는 2,915본이나 되었다(미상 58본 제외). 사실상 3천개에 이르는 서로 다른 성씨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1천 가구가 넘는 본관별 성씨는 다음과 같다. 물론 1천 가구 이하인 성씨 중에도 토박이 성씨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1천 가구 이상만 언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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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현재 1천 가구 이상 거주하는 청주지역 성씨 분포 현황

위 표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청주시에 1천 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는 모두 33본이다. 이들 성씨를 청주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성씨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 중에 경주김씨는 청주시 전체 가구수의 6.7%로 가장 많고, 다음은 전주이씨(全州李氏) 5.9%, 김해김씨 5.5%, 밀양박씨 5.4%, 경주이씨(慶州李氏) 4.1%, 경주최씨 2.1%, (구)안동김씨와 파평윤씨 1.9% 등이다.

『한국성씨대관(韓國姓氏大觀)』에 의하면, 청주지역에 본관을 둔 성씨는 85성으로 108본을 이룬다. 그 중에서 2000년 현재 청주시에 거주하는 성씨는 58성 66본관에 5,020가구 16,783명이다. 이는 청주시 전체 가구수의 2.8%, 전체 인구수의 1.15%에 불과하다. 특히 1천 가구 이상 거주하는 청주를 본관으로 한 성씨는 청주한씨가 유일하다. 청주를 본관으로 한 성씨가 실제 청주에서 크게 번창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위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1530년에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청주지방을 본관으로 한 성씨로, 본관이 청주인 성씨: 한(韓)·이(李)·김(金)·곽(郭)·손(孫)·경(慶)·송(宋)·고(高)·준(俊)·양(楊)·동방·정(鄭). 본관이 추자(楸子)[청주지방]인 성씨 : 김(金)·한(韓)·필(畢), 본관이 배음(拜音)[청주지방]인 성씨 : 박(朴)·이(李)·필(畢), 본관이 청천(靑川)[청주에 속한 현〈縣〉)인 성씨 : 손(孫)·전(田)·문(文), 본관이 간신(間身)[청주지방]인 성씨 : 이(李)·전(全)·유(兪), 주안(周岸)[청주지방] 하씨(河氏), 덕평(德平)[청주지방] 이씨(李氏), 포천노씨(抱川盧氏), 목천유씨(木川楡氏), 회인홍씨(懷仁洪氏), 왕(王)·황보(皇甫)·서문(西門)·박(朴)·조(曺)·이(李)·강씨 등 36개의 본관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청주’를 본관으로 한 성씨 12본 중 준씨·동방씨·정씨는 현재 살고 있지 않다. 나머지 9본의 가구수도 고려시대에 세력을 떨쳤던 청주 곽씨가 가장 많은 343가구이고 그 외에는 청주이씨 311가구, 청주양씨 194가구, 청주 경씨 173가구, 청주 사씨와 고씨 각각 73가구, 청주김씨(淸州金氏) 60가구 등이다. 이들이야말로 청주의 토박이 세거성씨라 할 수 있으나, 가구수는 모두 미약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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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현재 청주지방을 본관으로 한 성씨 분포 현황

더욱이 오랜 전통을 가진 토박이 성씨들 역시 오늘날 큰 세력을 이루고 있지는 못하다.『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된 조선후기 대표적인 청주의 토박이 성씨는 29성 54본이었는데, 그 중에서 현재까지 1천 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는 그 절반인 26본일 뿐이다. 다만, 조선시대 청주지역을 대표하던 8대 성씨 중에서 초계변씨(621가구)와 교하노씨(668가구)만 현재 1천 가구 이상 거주하지 않을 뿐 나머지, 한산이씨, 밀양박씨, 남양홍씨, 청주 한씨, 여흥 민씨, 고령신씨(高靈申氏)는 의연히 1천 가구 이상 토박이 성씨로서 청주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의연히 살아가고 있다.

[세거지 및 묘역]

청주토박이 세거성씨의 세거지와 묘역은 대부분 도시화과정에서 자취를 감추었거나 그 흔적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성촌 대신 아파트가 들어서고 옹기종기 모여살던 씨족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다. 그리고 집성촌을 이루면서 세거한 성씨들은 대부분 현재의 청원군에 속해 있다.

그렇지만 1998년에 조사된 청주시의 『문화유적 분포지도 -청주시-』에는 청주 토박이 세거성씨와 그들이 남긴 자취가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조선후기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는 청주의 세거성씨였고 현재 1천 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 중에서 『문화유적 분포지도 -청주시-』에 관련 유적이 남아 있는 성씨만을 대상으로 그들의 세거지와 묘역을 알아보겠다.

현재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뚜렷한 유적이 남아 있는 토박이 성씨는 청주 한씨이다. 청주 한씨는 현재는 비록 많은 사람이 청주에 살고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8대성의 하나였고 청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씨이다.

대머리한씨로도 불리는 청주 한씨의 시조는 한란(韓蘭)[?~?]인데, 상당구 방서동 큰대머리마을에는 한란의 출생지를 기념하여 1967년에 세운 한란유기비(韓蘭遺基碑)가 세워져 있다. 또 큰대머리마을에는 청주한씨 문중에서 배출한 4명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각이 있어, 이곳이 청주한씨의 발상지이자 세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큰대머리마을 옆 대머리공원 안에는 한란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무농정(務農亭)이 있다. 이 무농정은 1988년에 중건한 것으로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기념물 제85호로 지정되었다. 무농정에서 남쪽으로 약 200m쯤 가면 네모진 우물, 즉 방정(方井)이 있다. 이 우물 역시 청주한씨 시조인 한란이 만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데,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다. 상당구 운동동 다릿골마을 뒷산 끝자락의 밭 가운데에는 청주 한씨의 시조인 한란을 제사하기 위하여 1605년에 제단을 마련하고 함께 세운 사적비가 있다. 이 사적비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1990년 12월 14일에 지정되었다.

청주 한씨가 청주를 본관으로 한 대표적인 토박이 성씨라면, 다른 곳에서 이주하여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토박이 성씨는 한산 이씨를 들 수 있다. 한산 이씨가 청주에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이도(李濤)가 서울에서 청주로 이주한 선조 9년(1576)부터로, 특히 그의 아들인 이덕수(李德洙)에 의하여 청주지역의 명문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산이씨의 세거지는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수름재마을과 그 주변으로, 지금도 집성촌을 이루고 집단 거주하고 있다. 그 역사가 족히 400년이 넘는다. 수름재는 전국의 대표적인 한산 이씨 세거지 8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한산이씨가 번성한 집성촌이다. 수름재 동쪽 강당말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을 봉안한 목은영당(牧隱影堂)주성강당(酒城講堂)이 있어 한산 이씨의 정신적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묘역은 청원군 내수읍 묵방리에 있다.

한산 이씨처럼 다른 곳에서 옮겨와 청주에 뿌리를 내린 성씨 중 2000년 현재 경주 김씨, 전주이씨, 김해 김씨 다음으로 많이 사는 성씨는 밀양박씨이다. 밀양박씨는 적어도 조선후기부터 청원군 강외면 모가을을 세거지로 하여 번성하였는데,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동막골 역시 밀양박씨의 세거지이다. 동막골마을 입구에는 밀양박씨 집안에서 배출한 5명의 효자 및 효부를 기려 1962년에 세운 비석과 세거지 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밀양박씨 중시조를 모셨던 사당인 월오사(月午祠) 옛 터가 남아 있다. 흥덕구 수의동 도장골마을 역시 밀양박씨 양반골로 불리던 마을인데, 조선 선조 대의 문신 박승원의 신도비와 임진왜란 때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운 박우현(朴友賢)의 묘가 있다.

흥덕구 지동 1동 큰못골은 제주고씨의 집성촌이다. 제주고씨는 이미 조선후기부터 청주의 토박이 성씨로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2000년 현재 1,235가구나 될 정도로 번성하고 있다. 큰못골마을입구에는 제주고씨 문중에서 배출한 지방유지인 고철원(高澈遠)·고종은(高鐘殷)의 사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청주시내에서 청주역으로 가는 국도변 왼쪽의 중부고속도로 청주화물터미널 건너편 야산에는 1974년에 세운 제주고씨 추모단(追慕壇)이 있다.

흥덕구 신봉동운천동 일대는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세거지였다. 문화유씨 역시 조선후기 청주의 토박이 성씨로서 2000년 현재 2,021가구가 청주에 거주하고 있다. 지금도 신봉동 94번지에는 문화유씨의 선조를 모신 사당이 농수산물시장 북쪽 도로 건너편 건축자재사 안에 있다. 또 신봉동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지방유지로 활동한 유근석(柳根奭)의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운천동에도 문화유씨가 많이 살았으나 특이한 문화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흥덕구 비하동 일대는 순천박씨(順天朴氏)의 세거지였다. 순천박씨도 조선후기 청주의 세거성씨로서 2000년 현재 1,705가구 5,503명이 청주를 터전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그 자취도 비하동 곳곳에 남아 있다. 비하동에는 순천박씨 문중에서 배출한 8명의 관료를 제향하는 원모단(遠慕壇),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박춘무(朴春茂)[1544~1611] 3대창의사적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박홍원(朴弘遠)[1606~?] 충효비 등이 있다.

그밖에 청주를 본관으로 한 대표적인 성씨로서 고려시대 때 큰 인물을 많이 배출한 청주 곽씨는 2000년 현재 343가구 밖에 살고 있지 않지만, 그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상당구 명암동 명암약수터 뒷산 중턱에 있는 상당사(上黨祠)는 고려시대에 청주 곽씨 문중에서 배출한 곽원(郭元)[?~1029], 곽여(郭輿)[1058~1130], 곽예(郭預)[1232~1286] 3현(賢)을 제향하기 위하여 1974년에 세운 사당이다. 이곳에는 곽예 묘소와 묘비 및 신도비도 있다. 곽예의 묘소는 원래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 있었는데, 1975년에 명암동 뒷산으로 옮기었다. 묘비는 1852년에 세운 것으로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또 묘비 옆에는 1884년에 세운 곽예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청주 곽씨 문중의 사당인 상당사국립청주박물관 건립부지를 희사한 곽응종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1986년에 세운 곽응종공적비(郭應鍾功績碑)도 있다.

여산송씨(礪山宋氏) 역시 오랫 동안 청주에 세거한 성씨인데, 특히 임진왜란 때 순국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후손들이다. 수의동 강촌마을송상현을 1595년 선조(宣祖)의 명으로 국장하면서 후손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여산송씨 집성촌이다. 이곳에는 1977년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된 송상현충렬사, 송상현 신도비(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 송의섭 묘비, 밀양박씨 효열각, 영일 정씨 효부각 등이 남아 있다.

그밖에 상당구 지북동은 청주 경씨의 세거지로, 청주 경씨의 내력 및 주요 인물들에 대한 사적을 기록하여 1957년에 세운 청주 경씨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또 흥덕구 서촌동 안그미마을에는 그곳에 세거했던 안동김씨 9대의 사당인 영모단(永慕壇)과 전주이씨 사우(祠宇)가 있고, 흥덕구 휴암동에는 1634년에 세운 전주이씨 문중의 사당인 영모당(永慕堂)이 있다.

흥덕구 화계동 새터마을에 있는 진주 강씨 충열각, 흥덕구 정봉동에 있는 달성서씨(達城徐氏) 송덕비, 흥덕구 외북동 북리마을에 있는 경주 김씨 충열각, 흥덕구 송절동 송절마을에 있는 보성오씨(寶城吳氏) 오세환의 부인 열녀각, 흥덕구 서촌동 동촌마을에 있는 완산이씨 송덕비, 흥덕구 모충동에 있는 곡산연씨 충효문,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광산김씨 효자각, 상당구 탑동에 있는 3개의 현풍곽씨(玄風郭氏) 효자각, 상당구 지북동에 있는 경주 김씨 효자비,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경주이씨 사우인 운곡사 등도 청주에 오랫동안 살았거나 살고 있는 토박이 성씨의 자취를 말해주고 있다. 그 외에 흥덕구 봉명동에서 세거한 의령 남씨처럼 뚜렷한 문화유적이 없는 토박이 성씨가 많을 것이나, 이곳에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의의와 평가]

청주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세거하면서 청주를 지켜온 토박이 세거성씨가 많다. 조선후기에는 29성 54본이나 되었고, 청주를 본관으로 한 성씨만도 12개나 있었다. 특히 청주 8대성은 청주의 얼과 혼을 가꾸어 온 대표적인 토박이 성씨들이다.

오늘날 청주에는 본관이 다른 3천개에 이르는 성씨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중에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부터, 혹은 최근부터, 혹은 몇 년 전부터 청주에 산 성씨들이 있다. 토박이 성씨는 토박이로서 존중될 필요성이 있으며, 새로 이주한 성씨는 미래의 청주를 함께 열어갈 주체로서 환영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어우러지는 상생의 청주지역사회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6.10 [유래] 수정 <시청각 ID='GC002T0341'>조선후기 청주의 8대성 삽도 지정 삭제
2011.05.19 생몰년대 오류 853년 출생 ~916년 사망으로 기록된 생몰년을 연대 미상으로 수정함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하고 도표 삭제 후 내용 보완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6.10
강** 위 <조선후기 청주의 8대성> 표 중에서 맨 아래 신씨는 한글로는 평산신씨, 한자로는 (高靈申氏)라 되어 있는 바 정정 바랍니다. 2013.06.05
한** (세거지 묘역)기술중 한란의 생년년대를(853-916)으로 기술된 생년년대는 잘못된것이다
그이유는 한란 항목에 등재 하였음
201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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