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고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390
한자 淸州高氏
영어음역 Cheongju Gossi
영어의미역 Cheongju G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오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집성촌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성씨시조 고말로(高末老)
입향시조 12세 고덕수(高德秀)

[정의]

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연원]

고씨(高氏)의 시조로는 탐라국을 개국한 고을나(高乙那)를 연원으로 한다. 제주도의 「삼성혈(三姓穴) 신화」는 일찍이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고을나·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신인이 솟아 낫는데 고을나가 탐라국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938년(고려 태조 21) 탐라국의 마지막 왕 자견(自堅)이 태자 고말로(高末老)를 고려에 입조시켜 성주왕자로 봉했으며 그가 곧 고씨의 중시조로서 1세가 된다. 중시조인 고말로는 세 아들로 고유(高維)·고강(高綱)·고소(高紹)를 두었으며 이후 고씨는 고려조에서 9상서(尙書), 12한림(翰林)을 배출하면서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고씨대동보상당군파편』에 의하면, 2세인 고강은 문종 때 병부상서·문하시중·좌복사에 이르렀으며 그의 아들 3세 고대기(高大基)도 판병부상서·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서원군(西原君)에 봉해졌다. 또한 고강의 손자인 4세 고공익(高恭益)이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중에 이르고 상당군(上黨君)[상당은 청주의 옛 지명]에 봉해짐으로서 본관을 청주고씨로 분적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고말로의 후손은 제주고씨로 환적하여 1983년 대동보를 발간하였다.

[세거지]

제주고씨로 통합된 고말로의 후손은 9개파로 분파하였고 청주고씨에 해당하는 『고씨대동보상당군파편』에 의하면 청주고씨의 세거지는 12세 퇴암(退庵) 고덕수(高德秀)가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를 도모한 사건을 연유로 충북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로 낙향하면서 원남면 일원이 세거지가 되었고 마송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2000년 인구조사표에 의하면 청주고씨는 492가구에 1,578명이다

[인물]

고송견(高松堅)은 고려 명종 때에 감찰어사를 지내고 이부상서에 이르렀으며 낭성군(琅城君)에 봉해졌다. 고응(高凝)은 977년(고려 경종 2)에 문과에 급제하여 목종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냈으며, 고유렴(高有廉)은 조선의 문신으로,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군기시(軍器寺)주부를 지냈다.

고덕수고유렴의 아들로, 1432년(세종 14) 사간원헌납, 연풍현감을 지내다 단종복위 사건으로 인척인 박팽년과 동생인 고덕칭(高德稱)[문과에 합격하고 고양군수를 지냄]이 희생되자 벼슬을 버리고 음성으로 낙향하였다.

[묘역]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숭덕사(崇德祠)에 중시조인 고말로를 비롯하여 청주고씨의 직조를 배향하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행정원(杏亭原)의 선영에는 고준·고응잠·고덕수·고응연 등의 묘소가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3.29 본문 내용 수정 고송견(高松堅)은 고려 명종 때에 감찰어사를 지내고 이부상서에 이르렀으며 랑성군(琅城君)에 봉해졌다. ->고송견(高松堅)은 고려 명종 때에 감찰어사를 지내고 이부상서에 이르렀으며 낭성군(琅城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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