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바위 설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084
한자 -說話-
영어음역 Aegi Bawi Seolhwa
영어의미역 The Tale of Aegi Roc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운식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상봉고개(상봉재) 근처의 애기바위라고 불리는 부녀상(婦女像) 바위에 얽힌 전설.

[개설]

명암약수터를 우측으로 내려다보면서 방죽거리(중봉)를 지나 시유림을 따라 상봉 쪽으로 올라가면, 우측으로 용정동저수지를 바라보며 선도산의 낙엽송 계곡을 마주한 곳에 애기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얽힌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내용]

조선 광해군 때 한양에서 벼슬을 하던 최참판 내외가 청주로 내려와 살았다. 그들은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슬하에 자녀가 없어 늘 마음이 허전하였다. 최참판의 아내 정씨부인은 아이를 갖기 위해 온갖 치성을 드렸으나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부인은 허기진 도사 한 사람을 구해 주었는데, 기운을 차린 도사는 부인에게 소원을 물었다. 부인이 아들 갖기를 원한다고 하자, 도사는 호암리 뒷산 봉화대로 향하는 중간의 바위를 정으로 쪼아 부녀상(婦女像)을 만들면 소원을 이룰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일은 ‘혼자서 해야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잆어야 한다.’고 하였다.

정씨부인이 목욕재계(沐浴齋戒)한 뒤에 정과 망치를 들고 도사가 말한 곳으로 향하였다. 그녀가 대문을 나서자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 치는 소리가 나고,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정씨부인은 있는 힘을 다해 중간바위에 도착하여 정을 대고 망치질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산이 우는 소리를 내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부인은 이를 악물고 돌을 다듬는 데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병이 나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이튿날 최참판은 부인의 건강을 생각하여 만류하였으나, 정씨부인은 듣지 않고 아픈 몸을 이끌고 산에 올라 바위를 다듬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정씨부인의 정을 다루는 솜씨도 익숙해졌고, 그에 따라 부녀상도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처음처럼 비바람이 불거나 산이 우는 일도 없어졌다. 일을 시작한 지 99일이 되던 날 밤에 정씨부인은 두 가지 꿈을 꾸었다. 한 꿈에서는 전에 부녀상을 만들라던 도사가 나타나서 말하였다.

“내일 마지막 정을 부녀상 이마에 박아놓고 내려오시오. 그런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든 돌아보지 말고 집으로 와야 합니다.” 또 한 꿈에서는 낯모르는 백발 선인(仙人)이 나타나 말했다. “잡신(雜神)에게 속아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데, 100일을 채우지 말고 그만 두시오. 그렇지 않으면 패가망신(敗家亡身)할 것이오.”

잠을 깬 정씨부인은 어느 꿈을 따를 것인가를 망설이다가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하기로 하였다. 이튿날, 정씨부인이 다시 산으로 향하자 짙은 안개가 깔리면서 산이 흔들리듯 울기 시작하였다. 정씨부인은 정신을 가다듬고 부녀상을 매만지다가 이마에 정을 박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부인이 계곡을 내려오는데, ‘세상에 무서운 것은 부녀자의 굳은 마음’이라고 탄식하는 소리와 함께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정씨부인은 무섭기도 하고, 뒷일이 궁금하기도 하여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도사가 한 말이 생각나서 귀를 막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 부인의 꿈에 도사가 나타나 말했다.

“나는 원래 선도산의 산신인데, 언제부터인가 어디서 신벌(神罰)을 받고 쫓겨나 떠돌던 악신(惡神)이 중간바위의 틈에 자리를 잡고, 나의 영역을 침범하였소. 내가 그를 쫓아내려고 그와 겨루었으나, 바위가 견고한데다가 교묘하게 은신하고 있어서 내쫓을 수가 없었소. 결국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므로, 그 일을 해낼 의지와 집념을 가진 사람을 찾다가 부인을 만나서 말한 것이오. 이제 악신을 쫓아냈으니, 더 이상 기쁠 수가 없소. 당초에 약속한 대로 아들을 점지해 줄 것이니, 그리 아시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정씨부인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후 사람들은 정씨부인이 만들어 놓은 부녀상을 ‘애기바위’라 불렀다. 그 바위의 젖가슴에 해당하는 부위에 돌을 던져 맞게 하고, 아들 낳기를 빌면 반드시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악신이 마지막으로 바위에서 쫓겨날 때 요동을 쳤던 관계로 정을 박아 놓았던 부녀상의 머리 부분은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지금은 목 부분 아래만 남아 있는데, 젖가슴 부분의 움푹 들어간 곳에는 아들 낳기를 바라는 여인들이 던진 돌이 가득 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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