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062
한자 選擧
영어음역 seongeo
영어의미역 elec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성호

[정의]

국민 중에서 주권자를 대신해서 국가의 일, 국회의 일, 자치단체의 일을 수행할 공직자를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된 원칙 하에서 선출하는 민주적 방법.

[개설]

문단이력선거권을 가진 사람이 공직에 임할 사람을 투표에 의하여 선정하는 정치적 행위로 여기에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광역단체장선거, 기초단체장선거, 광역의회의원선거, 기초의회의원 선거가 있다. 대통령선거는 5년마다 실시되고 나머지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문단이력대통령선거는 5년마다 실시되고 나머지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제정배경]

헌법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국회의원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되고 국회를 구성한다. 민주주의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주권자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되어야하고 주권자를 대신하여 국정을 이끌어갈 대표자가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적 방법이 선거인 것이다.

청주시의 시민들도 주권자로서 다른 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자치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권, 참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제2대 대통령 및 제3대 부통령선거는 전국적으로 총선거인수 825만9428명 중 88%에 해당하는 727만5883명이 투표한 결과 유효투표 총수의 74.6%를 얻은 자유당의 이승만(李承晩)이 523만8769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청주시의 경우는 31,222명의 선거인수중 78%인 24,605명이 투표를 했으며 763표가 무효였다. 득표수는 조봉암 2,176표, 이승만 19,039표, 이시영(李始榮) 1,936표, 신흥우 691표 등이었다.

부통령선거에서는 청주시의 경우 31,222명의 선거인수중 78%인 24,607명이 투표를 하여 그중 유효표는 98.7%에 해당하는 24,291표였다. 청주시 입후보자별 득표상황은 자유당의 이범석 후보 10,376표, 자유당의 이갑성 후보 1,397표, 민주국민당의 조병옥 후보 2,177표, 조선민주당의 이윤영 후보 1,731표, 여자국민당의 임영신 후보 1,079표, 대한노총의 전진한 후보 926표, 무소속 함태영 후보 4,845표, 백성욱 후보 1,129표, 정기원 후보 631표였다. 청주지역은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3대 대통령선거 및 제4대 부통령선거는 전국에 181개 개표구와 6,342개소의 투표구로 나뉘었으며 충북에는 11개의 개표구와 421개의 투표구가 있었던 바 청주시에는 31개 투표구로 나뉘어 투표를 하였다. 1955년 9월 1일을 현재로하여 조사한 인구를 기준으로 볼 때청주시에는 33,877명이 선거인으로 등록되어 그 중 91%인 38,42명이 투표하여 71.55%인 22,050명이 유효투표였다. 청주의 유효투표가 이렇게 저조했던 이유는 신익희(申翼熙)에게 추모투표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청주시의 후보자별 득표수는 조봉암 5,641표, 이승만 16,409표였다.

부통령선거에서 청주시는 31개 투표구에서 선거인수 33,877인 중 91%인 30,826명이 투표하여 96.2%인 29,655표가 유효였다. 후보자별 득표상황은 장면 16,864표, 이기붕 8,361표, 윤치영 820표, 이시영 124표, 백성욱 1,066표, 이범석 2,420표였다. 청주시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승만 독재에 대한 혐오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제4대 대통령선거 및 제5대 부통령선거는 청주시에서 36개 투표구에서 선거인수 37,989명중 95.9%인 36,456명이 투표하여 84.6%인 38,078표가 유효로 이승만이 3만8백78표를 득표했다. 동일 실시된 부통령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이기붕, 민주당의 장면, 통일당의 김준연, 여자국민당의 임영신 등 4인이 입후보하였다. 이들 입후보자들은 민주당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자유당 대통령후보인 이승만의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기붕이 유효투표수 1천52만7천4백45표의 79%에 해당하는 8백33만7천2백72표를 얻어 당선 되었다.

부통령선거에 있어서 청주는 대통령선거와 같이 3만6천4백56명이 투표에 참가, 그 중 99.4%인 3만6천2백51표가 유효투표로 입후보자별 득표수는 이기붕 2만7천3백42표, 김준영 182표, 임영신 93표, 장면 8,634표 였다. 이 선거는 대한민국 선거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라하여 이를 규탄하는 4·19혁명이 일어났고 4월 29일 국회의 결의에 의하여 동 선거는 무효가 되고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에 따라 국회는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하고 해산하였다. 결국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선거와 제5대 부통령선거는 무효화된 것이다.

제5대 대통령선거는 청주시의 경우 1개의 개표구에 42개 투표구로 1962년 11월 10일 당시 조사된 11만2천24명의 인구중 45.5%인 5만9백72인이 선거인으로 등록되었으나 그중 87.4%인 4만1천8백13인이 투표 85.8%인 3만5천8백75표가 유효표였다.

청주시에서는 신흥당의 장이석 466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1만4천6백87표, 추풍회의 오재영 994표, 민정당의 윤보선 2만4천8백82표, 정민회의 변영태 784표를 얻어 반군사정권의 정서가 크게 작용했다. 결국 총유권자 1천2백98만5천15명중 1천1백3만6천1백75명이 투표한 결과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유효투표총수의 46.6%인 4백70만2천6백49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6대 대통령선거는 청주에서 42개 투표구에서 1966년 10월 1일 현재 인구센서스에 의한 인구수에 의하면 12만3천7백36명 중 45.45%인 5만6천1백2인이 선거인 수로 등록되었으나 그중 85.4%인 4만7천9백24인이 투표하여 96.35%인 4만6천1백9표가 유효표였다.

청주시의 입후보자별 득표상황은 정의당의 이세진 277표, 한국독립당의 전진한 803표, 신민당의 윤보선 1만7천1백58표, 민중당의 김준연 753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2만6천1백83표, 통한당의 오재영 935표였다.

제7대 대통령선거는 청주시에서 45개 투표구에서 1970년 12월 31일 조사된 인구수에 의하면 13만8천21명의 인구 중 선거인수는 6만6천4백22명 이었는데 그중 82.6%인 5만4천8백95인이 투표하여 97%인 5만3천2백64표가 유효표였다.

청주시의 입후보자별 득표상황은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2만7천5백90표, 신민당의 김대중(金大中) 2만5천1백33표, 국민당의 박기출 166표, 자민당의 이종윤 61표, 정의당의 진복기 314표이다. 청주시에서의 선거결과는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간의 팽팽한 대결양상을 보여 영남지역이나 호남지역보다는 지역색이 크지 않았다.

유신체제하의 제8대 대통령간접선거는 1972년 11월 21일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유신헌법이 투표율 91.9%, 찬성율 91.5%라는 국민절대다수의 지지와 소정의 법절차에 따라 확정되고 유신헌법 제3장에 근거를 둔 정상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초대 대의원선거가 1972년 11월 21일에 실시되었다.

유신체제하의 제9대 대통령간접선거는 청주지역도 예외 없이 통일주체국민회의후보들을 선출하였고 박정희를 지지하는 대열에 합류하였다.

10·26사태 후 제10대 대통령간접선거는 민주화투쟁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정치상황하에서 청주지역도 예외없이 과도기적 정치상황하에서 그대로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12·12~5·17쿠데타 후 제11대 대통령간접선거는 강력한 군부의 공포정치하에서 새로 등장한 전두환에 대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지지로 인해 청주시민으로서도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과정을 겪기까지 선거정치는 제도적 차원에서도 집권세력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의제적 장치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집권세력에 대한 시민의 주체적 비판의식이 결정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1980년 광주항쟁이었다. 이를 기폭제로 한국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이 된 1987년의 6월항쟁이 발생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사회가 일정 정도 민주화과정을 겪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선거정치가 점차 정치과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대통령직접선거는 당시 민주화투쟁의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였다. 지속적으로 청주시내 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직선제 쟁취와 군정종식을 외치면서 전국적 시위에 가담하였다.

1987년 12월 16일에 치뤄진 제13대 대통령선거는16년만에 직접선거로 실시되었다.

청주시 투표상황은 투표구수 72, 선거인수(부재자) 21만6천1백48표(7,793), 투표수(부재자) 19만5천9백45표(7,629), 투표율 90.7%이고 각 후보자 득표상황은 노태우(민주정의당) 7만4천3백42표, 김영삼(金泳三)(통일민주당) 5만9천4백53표, 김대중(평화민주당) 2만4천3백2표, 김종필(신민주공화당) 3만3천9백93표, 신정일(한주의통일한국당) 372표로 합계 19만2천4백62표이다. 무효표수 3,483표, 기권자수 2만2백3명이다.

청주시도 그동안 군사정권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지지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후보보다 많아서 민주화결실을 보는데 일조하지 못했다. 다만 김영삼, 김대중에 대한 지지표의 합산이 노태우 후보보다 많아 민주화지지에 대한 청주시민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지역연고와 관련하여 김종필의 지지도가 다른 지역보다는 많이 높았다. 이는 이후의 김종필의 정치적 변신과 관련된 복잡한 청주지역의 정치적 변신을 예상케 했다.

제14대 대통령선거는 1992년 12월 16일 실시된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청주갑은 55개 투표구에서 선거인수 12만5천7백83명 중 10만1천8백24명이 투표하여 투표율 81%를 보였고, 청주을은 70개 투표구에서 선거인수 17만2천6백87명 중 13만7천7백56명이 투표하여 79.8%의 투표율을 보였다.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청주는 여당에 보다 더 지지를 보이는 결과를 보였으나 실제로는 여러 야당의 지지표가 분산되어 전통적인 여당우세라고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문단이력2007년 12월19일 치러진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당선자는 1149만2389표(48.67%)를 얻어 제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선거]

그동안 청주시에서는 17번의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17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였다.

이민우 의원이 4회 당선, 정종택 의원이 3회 당선하였고 17대부터는 선거구가 3개로 증가되었다.

청주시 출신 국회의원들은 지연, 학연, 혈연을 동원하여 중앙부처와의 로비를 통하여 청주시나 지역을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충청북도는 도세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 서울에 직장을 갖고 있는 재경인사들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중앙과 청주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유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예산지원과 정책자료에 대한 정보협력을 최대한 도와주고 있다. 이러한 일들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국회의원이라 할 것이다.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은 지역을 위해 중앙정부와의 접촉을 통해 부지런하게 활동하고 있다. 예컨대 충청북도지역 출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2004년 7월 19일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과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잇따라 방문, 신행정수도 건설과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 등을 논의했다.

홍재형 충북도당 위원장(정책위의장) 등 충청북도 출신 국회의원 9명은 이날 신행정수도 후보지로 충남 연기, 공주가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설치에 따른 파급 효과 등을 설명하고, 청주공항 활성화 방안과 공공기관 이전 대상지에 충청북도가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요구하고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현재까지 청주지역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제헌의회는 무소속의 박기운, 제2대는 무소속의 민영복, 제3대는 제헌국회의원동지회의 박기운이 당선되었다.

제4대, 5대는 민주당의 이민우, 제6대, 7대는 민주공화당의 정태성, 제8대는 신민당의 최병길, 제9대는 민주공화당의 민기식과 신민당의 이민우 그리고 제10대는 신민당의 이민우와 민주통일당 김현수가 당선되었다.

제11대 청주·청원지역의 선거구를 통합하여 한국국민당의 윤석민과 민주정의당의 정종택, 제12대 청주시·청원군에서는 신민주당의 김현수와 민정당의 정종택이 당선되었다.

제13대는 청주와 청원지역이 불리되었으며 청주는 갑, 을 선거구로 분리되어 청주갑에 민정당의 정종택, 청주을에 공화당의 오용운, 제14대 청주갑에 국민당의 김진영, 청주을에 민주당의 정기호가 당선되었다.

제15대는 청주지역의 선거구가 상당구흥덕구로 분리되어 청주 상당에 자민련의 구천서, 흥덕에 자민련의 오용운, 제16대는 청주 상당에 민주당의 홍재형, 흥덕에 한나라당의 윤경식이 당선되었다.

제17대 선거는 청주지역의 선거구가 3개로 확대됨으로써 청주 상당에 열린우리당의 홍재형, 흥덕갑에 열린우리당의 오제세, 흥덕을에 열린우리당의 노영민이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다.

[광역단체장 선거]

1960년 12월 29일에 실시된 충청북도지사 선거에서 조대행이 당선되었고, 이후 1995년 6월 27일의 제1회 충청북도지사 선거에서는 주병덕 후보가 당선되었다.

문단이력제2회 선거에서는 자민련 소속의 이원종, 2002년 6월 13일에 실시된 제3회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이원종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6년 5월 31일에 실시된 제 4회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정우택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제1회 충북광역단체장선거에서 충북의 선거인수는 남자 47만9천4백77명, 여자 49만2천6백93명으로 97만2천1백70명이다. 투표율은 70만6천4백80명이 투표하여 72.7%를 나타냈다.

자민련 소속의 이원종 후보는 고향이 제천시임에도 불구하고 제2회 광역자치단체장선거에서 청주시민들은 주병덕 후보 보다 압도적인 지지를 주어 이원종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시 TV, 신문, 시민단체 등 여러 방법으로 행하여진 후보자 토론회에서 논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정계획을 펼침으로써 이원종 후보가 주병덕 후보 보다 청주시민의 마음에 와 닿았으며, 작지만 강한 도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이원종 후보의 정책아이디어가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원종 지사는 2002년 6월에 실시된 제3회 충북광역단체장 선거직전에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당소속을 변경한 문제로 지역주민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1998년의 선거보다는 지지율이 떨어졌으나 구천서 후보 보다는 압도적인 표를 얻어 2번째 민선지사로 당선되었다.

다만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됨으로써 한나라당으로 소속을 변경한 효과를 더 얻어낼 수는 없었다. 이러한 중앙과 지방간 정당의 이질감을 통하여 지역발전에 심각한 문제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여러 사안에 있어 충청북도는 차질없이 지방자치를 원만하게 운영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제1회 기초단체장 청주시장 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 소속의 김현수 후보가 상당구에서 34,576 그리고 흥덕구에서 39,579 등 총 74,155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기초단체장 청주시장 선거결과는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나기정 후보가 상당구에서 29,609 흥덕구에서 37,112 등 총 66,721표를 획득하여 자유민주연합 소속의 김현수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2년 6월 13일의 제3회 기초단체장 청주시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소속의 한대수 후보가 상당구에서 29,395 흥덕구에서 41,575 등 총 70,970표를 획득하여 민주당 소속의 나기정 후보를 8,000여표 차이를 두고 당선되었다.

문단이력2006년 5월 31일의 제4회 기초단체장 청주시장 선거에서는 전체 유효투표수 20만8107표 중 12만3700표(59.4%)를 얻어 8만4407표(40.6%)를 얻은 열린우리당 오효진 후보를 3만9293표차로 따돌리고 청주시장에 당선되었다.

[교육감선거]

문단이력2006년 말 개정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에 따라 학교운영위원에 의한 간선제였던 교육감선출이 2007년 12월 19일 직선제로 실시되었다. 17대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루어진 제14대 첫 직선 충북교육감 선거에서 전체 투표자 70만2천444표 가운데 41만686표(60.25%)를 얻은 이기용 교육감 후보가 27만925표(39.74%)를 얻은 박노성(61) 후보를 13만9천761표 차로 눌렀다. 충북에서는 첫 직선 교육감이다.

[의의와 평가]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선거에 대한 중요성과 참여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80%정도의 투표참여율이 있어야 한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만큼 선거결과가 왜곡되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선거에 임하는 청주시민들의 정치적 판단이 자발적이고 소신있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명백히 표에 반영되어 나타날 것이다. 부정선거도 그만큼 자리잡지 못 할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통하여 민주적 정치과정이 신뢰받는다면 선거결과에 대하여 정당성을 인정받고 국가의 정부나 지도자가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곧 국가의 경쟁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를 얻어내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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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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