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015
한자 韓孝仲
영어음역 Han Hyoju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아내 이언형(李彦亨)의 딸
생년 1559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청주(淸州)
경장(景張)
석탄(石灘)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아버지 천뢰(天賚)
어머니 변명윤(邊明胤)의 딸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경장(景張), 호는 석탄(石灘)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 중종대에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낸 한윤창(韓胤昌), 할아버지는 한극공(韓克恭)이다. 아버지는 한천뢰(韓天賚)이고, 외할아버지는 변명윤(邊明胤)이며, 장인는 이언형(李彦亨)이다. 자녀로는 한필원(韓必遠)한필명(韓必明)이 있다.

[경력]

1590년(선조 23)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05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다. 1618년(광해 10)에 서원현감이 되었고, 도둑을 잡은 공으로 품계가 올라 병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예조정랑으로서 춘추관(春秋館) 기주관(記注官)이 되어 『선조실록(宣祖實錄)』편찬에 참여하였다.

[활동사항]

『선조실록(宣祖實錄)』편찬에 참여하였을 때 이이첨(李爾瞻)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당여(黨與)로 만들려 하였으나 불응하여 안악군수로 좌천되었다.

1622년에 동부승지에 승진, 토목의 남설 및 궁금(宮禁)의 문란에 대해 “토목 공사와 군사를 일으키는 일은 일시에 거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고 우리를 노리는 적들이 가까이 있으며 명나라 군대가 몰려오고 있으니, 궁궐의 공사를 크게 벌여서는 안됩니다.”라고 극언하다가 광해군(光海君)의 노여움을 샀다.

인조반정 이후 직언을 평가받아 공조참의(工曹參議)를 거쳐 좌승지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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