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911
한자 市民運動
영어음역 simin undong
영어의미역 citizens' movement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집필자 허석렬

[정의]

시민 각자가 민주주의를 기초로 권리의식을 자각하고 계층의 차이를 초월한 연대를 추구하며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운동.

[개설]

청주지역의 시민운동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기반이 되어 성장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도시산업선교회의 노동인권 보호와 도시 서민의 생존권 보호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고, 청주 YMCA에서도 시민사업위원회를 조직하여 시민들의 민주의식 함양에 힘써 왔다.

1987년 이후 정치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과거 반독재 학생운동에서 배출된 많은 젊은이들이 다양한 시민운동단체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청주지역에서 노동운동이 아닌 시민운동 단체로 처음 결성된 것은 1989년 결성된 청주시민회이다.

청주시민회는 처음에는 경부고속철도 오송역 유치활동 등 지역발전과 관련된 분야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역할을 하였으나 차츰 지방행정에 대한 민주적 감시활동과 시민권리 찾기 운동과 같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과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전개된 낙천낙선운동은 지역시민운동 발전에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청주지역 시민운동의 특징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평소에 각각의 고유한 영역에서 활동을 전개하다가 지역 내의 중요한 쟁점이 생기면 매우 높은 수준의 연대활동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변천]

청주지역의 시민운동은 청주 YMCA가 수행한 몇몇 사업을 제외한다면 청주도시산업선교회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정진동 목사가 주도한 도시산업선교회는 유신독재 기간동안 노동자와 빈민,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그 바탕 위에서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선도하였다.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 출신 인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 농민운동 등에 투신하거나,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1982년에 창립된 기독교청년회(EYC)는 교회의 틀을 빌려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민주화운동협의회가 설립되어 1987년의 6월 항쟁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민주화의 진전은 학생운동이나 청년운동에 종사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 민주화가 아닌 시민사회의 민주화라는 과제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마침 지역사회에서도 환경이나 여성문제 등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적 쟁점들이 분출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92년에 발생한 김보은 사건은 가정폭력과 성폭력이라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조직의 초창기였던 충북여성민우회가 여성문제를 고리로 시민사회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청주YMCA와 청주YWCA도 1980년대 중반부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청주YMCA는 시민권리구제를 위한 시민중계실을 운영하였고 청주YWCA는 공정보도를 위한 시청료거부운동, 가정생활 상담실 운영과 같은 시민생활 영역의 문제를 중심으로 생활개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민운동은 충북시민회가 발족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 청주경실련이 창립되면서 양대 시민단체가 서로 경쟁, 보완하면서 지역시민운동을 이끌어오고 있다.

청주지역 시민운동의 특징이 연대운동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지만, 이 연대운동의 불을 지핀 사안이 1989년부터 불거진 경부고속철도 오송역 설치 문제였다. 이 운동은 그 성격상 일반 시민만이 아니라 지역 경제계에서도 큰 관심사항이었고, 청주지역의 전통적인 엘리트층도 호응하여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오송역 설치가 확정되고 난 후 호남고속전철 기점역 오송유치운동으로 연결된다.

1991년 당시 청주지역의 진보적 재야단체, 시민단체, 직능단체, 보수적 관변단체를 포괄하는 바른선거를 위한 충북지역시민단체협의회가 결성되어 전국적인 공명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시민정치의 영역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1998년 사학재단인 서원학원의 문제가 불거지자 서원학원정상화시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이 위원회에는 총 19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참여하였다. 서원학원 사태는 파행을 지속하다가 2001년에 관선이사가 파견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고, 현재는 정상화 과정에 있다.

환경문제는 환경단체 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시민단체들의 관심사항이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환경보전충북시민연합이 1991년 결성되었는데, 여기에는 10개의 단체가 참여하였다. 이익단체라고 볼 수 있는 청주시약사회와 한국폐자원재활용수집협의회충북지부 등도 이 연합체에 참여하였는데, 시민운동이 경우에 따라서는 이익단체까지도 포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이 연합은 충북환경련이 결성되기 전까지 충북의 환경 쟁점에 대한 시민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중요한 틀이 되었다. 환경문제에서의 연대활동은 그 후 무심천(無心川) 하상도로건설과 명암천 복개 등에 대응하기 위한 무심천 대책위원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국적인 낙천, 낙선운동의 흐름 속에서 충북 총선시민연대가 결성되었다. 여기에는 지역의 중요한 거의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 그룹으로서 교수집단이 참여하여, 국회의원 부적격자의 낙천, 낙선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의 연대운동의 경험은 청주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연대활동의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2002년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북정치개혁연대가 결성되었다.

2003년 6월 원흥이 두꺼비마을 생태문화보전시민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는데, 원흥이 방죽 일대가 두꺼비가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등 생태적으로 매우 높은 보전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져, 이 일대를 생태적으로 개발하자는 운동을 주도 했다. 이 운동은 초등학생에서 일반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시민참여를 이끌어냈고, 장기간 지속되면서 이 위원회는 그 후 원흥이 생명평화회의로 발전되었다.

[현황]

청주지역의 시민운동의 특징 중 하나가 연대운동의 활성화라는 점을 지적했지만, 현재도 이런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지역 사회의 주 쟁점은 청주·청원 통합운동이다. 이를 위해 청주청원 하나되기 운동본부가 결성되어 청주, 청원 양 자치단체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또 시민사회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시민운동들이 2000년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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