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198
한자 淸州出土順天金氏衣服-簡札
영어음역 Cheongju Chulto Suncheon Kimssi Uibok mit Ganchal
영어의미역 Relics of the Suncheon Kim Clan Excavated from Cheo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우종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12월 17일연표보기 -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 국가민속문화재 제10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작시기/일시 조선시대
소장처 충북대학교박물관
소유자 충북대학교박물관
관리자 충북대학교박물관

[정의]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외남리에서 출토된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 시기의 복식(服飾)유물.

[출토경위]

1977년 4월 공군비행장 건설공사로 인하여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외남리 쇠내(金川) 석병산(石屛山) 남쪽벌에 자리한 합장묘인 채무역(蔡武易) 묘를 이장하던 중 체모(體貌)가 깨끗한 미이라화된 순천김씨(順天金氏)의 관(棺) 안에서 복식유물과 간찰(簡札)이 출토되었다. 이들 복식유물과 간찰은 시신을 관에 안치한 후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하여 여러 뭉치로 뭉치어 채워져 있었다. 현재 순천김씨묘 출토 일괄 유물은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기증 받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역사적 관련사항]

채무역(蔡武易)[1537~1594]은 인천채씨로 64세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순천김씨는 출생·사망일을 알 수 없다. 다만 무덤 출토 간찰 내용으로 보면 흥덕골 김채방(金蔡訪)의 딸로서 남편인 채무역보다 앞서 사망한 것으로 보여 부장(附葬)된 복식 및 간찰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1. 복식유물

순천김씨묘 출토 복식은 장례시 특별히 만든 것이 아니고 순천김씨가 평소에 입었던 것을 관속에 시신과 함께 부장한 것이다. 출토복식은 포류(袍類) 3점, 저고리 2점, 바지 1점, 치마 1점, 토시 1점 등 11점이며, 이밖에 은장도(銀粧刀) 1점, 돗자리 1점, 표주박 1점, 만장(輓章) 3점과 목관(木棺)이 있다. 이들 복식유물이 갖는 중요한 학술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갈색누비 명주 천릭(天翼, 貼裏)은 천릭의 원형(原型)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천릭은 이중깃인 점이 주목되는데 신라(新羅)의 당금(幢今)이 반월형인 것과 일치하여 신라 복식의 복원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천릭을 통하여 여자도 상하통복(上下通服)으로된 천릭을 평상복으로 입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저고리의 형태는 몽땅하고 겨드랑이에 무가 달려 있으며 당시에 삼수(縿袖)가 상당히 넓은 특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깃의 모습은 대부분 겹깃의 형태이며 고색(古色)을 띠고 있어서 이전시기의 저고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넷째, 포(袍)는 조선시대 초기의 포로서 직령(直領)의 형태가 밝혀짐으로서 광해군(光海君)의 직령과 함께 대표적인 포의 형태로 평가되고 있다.

2. 간찰(簡札)

복식과 함께 관 내부의 빈 공간을 뭉치로 채워져 있는 상태로 편지[簡札] 192점이 출토되었다. 192점 중 한문편지는 3점이고 나머지 189점은 한글편지 즉 언간(諺簡)이다. 지질은 견인성이 강한 닥나무 한지(韓紙)이고, 크기는 일정하지 않은데 큰 것은 가로 49.5㎝·세로 48㎝이고 가장 작은 것은 가로 3.7㎝·세로 32.5㎝이다. 편지에 쓰인 글씨체는 효빈체(效顰體)인데 홀림체로 쓰여져 있어 판독이 쉽지 않고, 필체(筆體)는 일정하지 않으며 상하좌우 여백이나 뒷면에까지 빈틈없이 적어 지면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어머니와 딸·아들, 시어머니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남편과 아내 등 11건이며, 이 중 친정어머니인 신천강씨(信川康氏)가 시집간 딸인 순천김씨에게 보낸 것이 가장 많다. 편지의 내용구성은 시집간 딸을 그리며 애태우는 모정(母情), 병들고 가난한 노년의 적막한 심회, 외도한 남편에 대한 미움과 하소연, 출타한 남편의 집안 걱정과 안부, 주인과 종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 등 인간사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스며있다. 또한 대화체에 가까운 생생한 일상어를 풍부하게 담고 있으며, 중세국어에서 근대국어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언어이다.

따라서 이 편지 자료는 16세기를 살다 간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보편적 성정(性情), 그들이 취했던 삶의 방식과 태도, 그들이 처한 환경과 생활 등 생활사 및 16세기 중기 국어의 실체 모습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편지의 연대는 크게 볼 때 1550년대~임진왜란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이전의 무덤에서 복식·편지 등 다양한 유물이 풍부하게 나왔고, 복식의 형태와 특징, 편지의 내용과 쓰여진 언어 등은 16세기 복식사, 생활사, 국어사를 조명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1979년 12월 17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영문본문]

These are the clothes and mails founded while the tombs of Chae Muyeok (1537-1594) and his wife were removed from Mt. Seokbyeongsan, Cheongwon-gun, in spring of 1977. His pen name is Sinchon and served as a Sejaigwisadaejik started from a minor post in a local administration in the tenth year of King Myeongjong. He died in the 27th year of King Seonjo,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his second wife died before the war. It is estimated that his grave goods were made before the Japanese Invasion. Kim's wife used to ware these clothes and they are; a piece of Gyeomnubicheonik (lined and quilted Cheonik), two pieces of Gyeomnubibaji trousers, two Gyeophoejangjeogori (a Korean style jacket), a Jingnyeonggyeopdurumagi (a Korean topcoat), a cotton Gyeopjeogori, a ramie fabric skirt, a hemp Jeoksam (a Korean-style unlined summer jacket), a ramie fabric Cheonik and a piece of earthen vessel. A ramie fabric Cheonik is an outer garment made of white ramie cloth of fine texture. Its length of Hwajang (from the back seam to the end of sleeve) is 144 cm long, back is 40 and sleeve is 104. The skirt has 2 millimeters of fine wrinkles with a 63 cm length. It is composed of total 15 Pok (the width of joined parts in a skirt including 6 Pok from outer skirt, 7 Pok from back of the skirt and 2-Pok lined skirt. Pressing the fine wrinkles, it was sewed twice. And its sewing is very elaborate. The outer cloth of a pair of wristlets were made of fine silk and its lining was made of coarse silk. And cotton wool was padded inside. It is 52 cm wide by 39 cm long, rather large. It was edged at the end of it with 1 cm of spaces. There is a Cheonik that was put on when civil and military officials were sent to the foreign country or escorted the King. And it was put on in the time of national crisis. It has the wide sleeves and folds on the waist. And the jacket and skirt are linked together. And women also wear a Cheonik and it is a typical type of Cheonik. Jeogori is rather short and there is a Mu that is attached to under the armpit. And its Hoejang (colorful strips of cloth for trimmings on a woman's coat) and Samsu at the back of the sleeve are quite wide. It has a double collar and old color. It is very useful to studying the Jeogori of the Silla and Goryeo. It is very unique that it has the fine folds and Jingnyeong of the early Joseon has a collar. It is closely related to the Jungdan (putting on under the court dress and also called Cheongchoui) that is preserved in Haeinsa Temple. And it shows the typical shape of Po that is similar to Durumagi (a Korean topcoat) of the early Joseon along with the Cheonik. And three pieces of Manjang (a funeral ode), a silver-decorated knife, a mat, a wooden coffin and a small gourd were founded. And most of all, it is remarkable that 185 pieces of letters were founded and they are regarded as the valuable materials for studying the language of the 16th century. is rather short and there is a Mu that is attached to under the armpit. And its Hoejang (colorful strips of cloth for trimmings on a woman's coat) and Samsu at the back of the sleeve are quite wide. It has a double collar and old color. It is very useful to studying the Jeogori of the Silla and Goryeo. It is very unique that it has the fine folds and Jingnyeong of the early Joseon has a collar. It is closely related to the Jungdan (putting on under the court dress and also called Cheongchoui) that is preserved in Haeinsa Temple. And it shows the typical shape of Po that is similar to Durumagi (a Korean topcoat) of the early Joseon along with the Cheonik. And three pieces of Manjang (a funeral ode), a silver-decorated knife, a mat, a wooden coffin and a small gourd were founded. And most of all, it is remarkable that 185 pieces of letters were founded and they are regarded as the valuable materials for studying the language of the 16th century.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6.26 문화재 용어 변경 중요민속자료 -> 국가민속문화재
2011.03.30 본문 내용 수정 부장(副葬)된 복식 및 간찰은 ->부장(附葬)된 복식 및 간찰은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