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001
한자 申天永
영어음역 Sin Cheonyeong
이칭/별칭 신복영(申復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728년연표보기
본관 고령(高靈)
출신지 청주(淸州)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본명은 신복영(申復永)으로 청주 출신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高靈申氏) 입향조인 신식(申湜)의 5대손이자, 경종대에 남인으로 활약하던 신경제(申慶濟)의 손자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는 연산군 대에 낭성과 가덕에 낙향하여 상당산(上黨山)[419m] 동쪽에 살았으므로 산동신씨라고 지칭되어 왔으며, 낭성에서 대과급제 24명, 진사 80여명이 배출될 정도로 청주지역 명가였다.

[활동사항]

무신란이 일어나자 반군은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南延年), 군관 홍림(洪霖)[1685~1728]을 살해하고 청주를 장악한다. 이인좌(李麟佐)는 대원수(大元帥)를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때 신천영(申天永)은 병사(兵使)가 되었다.

이인좌 등의 반군은 신천영에게 청주성을 지키게 하고, 서울을 향하여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거쳐 안성과 죽산으로 북상하였다. 이때 반란 진압을 위하여 출동한 관군에 의하여 반군은 궤멸된다.

이 소식을 들은 신천영은 상당성의 성문을 닫고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 등이 이끄는 창졸(倡倅)과 충청도(忠淸道) 소모사(召募使) 유숭(兪崇)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해 이기좌(李麒佐), 하홍점(河鴻漸), 박만겸(朴萬兼) 등과 함께 사로잡혔다. 잡힌 사람은 모두 청주에서 참형되었으며, 신천영의 수급(首級)은 서울로 올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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