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740
한자 洪錫武
영어음역 Hong Seokmu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아우 홍석기(洪錫箕)|홍석주(洪錫周)
추증/추서 참판
생년 1601년연표보기
몰년 1667년연표보기
본관 남양(南陽)
명여(命汝)
만계(晩溪)
출신지 청주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
아버지 홍이정(洪頤正)
아내 전주이씨(全州李氏)

[정의]

조선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만계(晩溪)로 청주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태사(太師) 홍은열(洪殷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이다.

[활동사항]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홉 살 때 병든 어머니께서 민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마침 장마로 물이 넘쳐 강가에 그물을 치고 슬프게 우니 큰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잡아 드리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에 돌아가시니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쌀죽만 먹으며 삼년상을 치렀다.

효종(孝宗) 때 음사(蔭仕)로 관직에 진출하였는데, 효종송시열에게 인재를 물어 ‘홍석무(洪錫武)’라고 대답하자 특별히 병풍에 이름을 써놓고 잊지 않았다고 한다. 효종이 승하하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매우 슬퍼하여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소식(素食)하며 임금의 이름이 써있는 병풍과 장막을 아침저녁으로 어루만졌다고 한다.

1626년(인조 4) 공주목사에 제수되었다. 그 아들 홍일극(洪一極)도 효성스럽고 재주와 덕망이 있었다. 1806년(순조 6)에 충효와 청백으로 참판(參判)에 추증되고 정려되었다.

[의의와 평가]

청주지역에 세거하는 남양홍씨 익산군파 종중의 정신적 중심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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