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072
한자 金公藝
영어음역 Kim Gongye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485년연표보기
몰년 1537년연표보기
본관 안동(安東)
중아(仲雅)
아버지 김계(金堦)
어머니 유숙(柳塾)의 딸
아내 이달선(李達善)의 딸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아(仲雅)이다. 아버지는 김계(金堦), 어머니는 유숙(柳塾)의 딸이다. 생부(生父)는 김지(金墀)이고, 할아버지는 김종손(金宗孫)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환(金丸)이다. 부인은 이달선(李達善)의 딸이고, 조카는 김계현(金繼賢)이다.

[활동사항]

1513년(중종 8) 계유년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 4등으로 합격하여 출사하였으며, 1514년 춘추관 기사관을 역임했다. 병조좌랑에 이어 1518년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궁중에 잡인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배향관(陪享官)으로 재숙(齋宿)하지 않은 이유를 아뢰지 않았다며 사헌부 탄핵을 받았고, 도사로 재직할 당시 부모 다례(茶禮) 때 가서 보고 청주(淸州)의 관비(官婢)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고, 또 진천(鎭川)의 누상(樓上)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헌부 지평(持平)과 장령(掌令)을 거쳐,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으로 있으면서 세자 보위에 힘을 쏟았다. 그 후 사헌부 집의(執義)에 제수되었다가 1529년 사간(司諫)에 이어 홍문관 전한(典翰)과 직제학(直提學)에 연달아 제수되었다. 경빈박씨의 위세가 높아지자 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빈의 아들 복성군 처벌을 주장하는 등 세자 보위에 앞장섰다.

1534년에 동부승지에 올랐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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