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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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山李氏 |
영어의미역 | Yangsan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 |
집필자 | 정은정 |
세거지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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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 |
입향시기/연도 | 1380년 |
성씨시조 | 이만영(李萬英) |
입향시조 | 이전생(李全生) |
[정의]
이만영을 시조로 하고 이전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연원]
조선의 개국공신 이전생(李全生)은 예조판서(禮曹判書),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등을 역임한 후 노후에는 국록을 받는 중추원사(中樞院事)로 향리에서 소일하다 1450년(세종 32)에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세종은 이전생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공을 치하하여 양산부원군(梁山府院君)으로 봉하였다.
이로부터 양산이씨의 새로운 관향(貫鄕)이 생겼고, 이전생은 양산이씨의 득관조가 되었다. 이때 세종이 내린 만문(輓文, 죽음을 애도하는 글)에서 “두 형제가 한 나라의 전 국경을 도맡아 지키고 있으니 한 나라의 안위가 두 형제의 어깨에 있구나(兩男分禦東南界 一國干城在一門)”라고 예찬하고 이전생의 유택을 왕릉에 버금갈 정도의 석분묘로 마련하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입향경위]
고려 말 이전생이 왕명을 받아 전국을 순찰하던 도중 지금의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三帥里)에 이르렀을 때 이곳이 당대에 삼장수가 태어날 명당지임을 발견하였다. 이후 1380년(우왕 6)부터 이곳에 거주하면서 3남 2녀를 두었는데, 과연 아들인 이징석(李澄石)·이징옥(李澄玉)·이징규(李澄珪) 삼형제가 모두 무과에 급제한 후 판중추(判中樞)까지 지냈다. 이때부터 마을 이름이 초산리(草山里)에서 삼수리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