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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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澄石 |
영어음역 | Yi Jingseok |
이칭/별칭 | 취봉,장강,양산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광석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양산(梁山). 호는 취봉(鷲峯).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이전생(李全生)이다. 김종서를 따라 6진을 개척할 때 절도사로 공을 세운 이징옥(李澄玉)과 병마절도사 이징규(李澄圭)는 동생들이다. 이징석을 포함한 세 형제를 삼장수라고 부른다.
[활동사항]
이징석은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1416년(태종 16)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으로 무과 중시에 급제했다. 1421년(세종 3) 상호군을 거쳐 연일진병마절제사·우도병마도절제사 등을 지냈다. 1427년 중군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로 경상도병마도절제사가 되고, 1432년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1433년 도원수 최윤덕(崔潤德)의 부장인 조전절제사로 3,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우라[兀剌] 등지의 여진족을 토벌했다. 그 공으로 중추원사가 되었고, 경상도병마도절제사·경상좌도처치사·경상우도도안무처치사 등을 거쳐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에는 사창(社倉)의 설치를 주장했다.
1452년(단종 즉위)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53년 계유정난 당시 동생 이징옥이 세조에 반기를 든 관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 후 열세 차례 이상이나 세조 측근 중신들의 상소에서 이징석의 삼대구족까지 연좌주살하라는 소란을 겪었으나, 세조의 반대로 구명되었다. 이때 세조는 오히려 이징석에게 도진문의 중책을 내렸다.
[묘소]
경상남도 양산시 명곡동 산83-2에 위치한다.
[상훈과 추모]
1455년(세조 1)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운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고, 양산군(梁山君)에 봉해졌으며, 판중추원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강(莊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