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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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歷史 |
영어공식명칭 | Histo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
[개설]
전라북도 완주군은 전라북도의 북부 중앙에 위치해서 동으로는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과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 남으로는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서로는 전라북도 익산시(益山市)와 전라북도 김제시(金堤市), 그리고 북으로는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와 경계가 서로 잇닿아 있다. 또 안으로는 전라북도 전주시(全州市)를 감싸 안고 있다.
[선사]
구석기시대 유물 산포지로 전라북도 완주군내에서는 20여 곳이 보고되었다. 이 중 2018년까지 발굴 조사된 곳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의 갈산리·신풍·덕동·옥정유적과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의 운교유적,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의 둔산리2유적,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수계리의 청등유적 등이다. 이들 유적지는 후기 구석기시대[4만~1만년 전]에 해당한다.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 신석기 유적이 다수 분포할 것으로 추정되나, 2018년까지 전라북도 완주 관내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신풍유적이 유일하다. 신풍유적에서는 수혈과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전라북도 완주와 인접한 전라북도 전주를 비롯해 금강 유역과 서해안 일대에 다수 신석기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완주 지역도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 유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확인된 것은 주거지, 고인돌, 제의유적 등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제의유구와 주거지군이 확인되었으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의 반교리·신풍·옥정유적,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의 운교·상운리유적 등에서는 송국리형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2018년까지 35개소가 확인되었다.
[고대]
전라북도 완주군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영토였다. 이후 백제가 마한을 점령하면서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백제시대 완주 지역에는 지금 전라북도 전주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완산(完山),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지역에는 두이현(豆伊縣),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지역에는 고산현(高山縣),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과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서부 지역에는 우소저현(于召渚縣),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지역에는 지벌지현(只伐只縣)이 있었다. 659년(의자왕 19)에 고구려의 고승 보덕(普德)이 반룡산(盤龍山) 연복사(延福寺)에서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고달산(高達山)으로 옮겨와 경복사(景福寺)를 창건하고 열반종(涅槃宗)을 열었다.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멸망한 뒤 일부 지역은 백제부흥운동을 펼치다가 신라에 병합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여러 지명이 한자식으로 변화되었다. 이때 완산은 전주(全州)로, 두이현은 두성현(杜城縣)으로, 우소저현은 우주현(紆洲縣)으로, 지벌지현은 운제현(雲梯縣)으로 바뀌었으나, 고산현은 그대로 이름을 유지했다. 이 시기에 보덕은 경복사를 중심으로 대원(大原), 일승(一乘), 심정(心正) 등 11명 제자를 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위 세 사람이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에 대원사(大原寺)를 설립하는 등 불교문화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외에도 전라북도 완주군내 여러 지역에 사찰들이 건립되었다. 견훤(甄萱)은 892년(진성여왕 6)에 무진주(武珍州)[현 광주광역시]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900년(효공왕 4) 완산주(完山州)[현 전라북도 전주시]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왕’이라 칭했으며, 모든 관서와 관직을 정비했다. 936년 후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완주 지역은 후백제의 영역으로 편성되었다.
[고려시대]
태조 왕건은 918년에 고려를 건국했으며, 936년에는 후백제를 점령했다. 후백제가 멸망하면서 전라북도 완주 지역은 고려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전주를 비롯한 지역의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그 결과 완주 지역은 전주계수관(全州界首官)에 포함되었으며, 전주목(全州牧)이 되고, 두성현은 이성현(伊城縣)으로, 우주현(紆洲縣)은 우주현(紆州縣)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고산현·운제현의 이름은 변경이 없었다. 전주목은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동부이며, 치소는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었다. 이성현은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전라북도 전주시 조촌동·효자동·삼천동·서신동·팔복동 지역이며 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에 있었다. 우주현은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서부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지역이며 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산현은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과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지역이며 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현내리 혹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있었다. 운제현은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주면, 동상면 지역이며 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제리에 있었다. 이 외에도 경명향(景明鄕)이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내에 있었고, 양량소(陽良所)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과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일부 지역에 있었고, 재남소(才南所)는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과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부지역에 있었다.
1010년(현종 1)에 거란이 고려를 침입하자, 현종은 1011년(현종 2) 1월 8일에 삼례역을 거쳐 장곡역[나중 앵곡역]에서 하루를 유숙하고 나주로 내려갔다. 거란이 물러간 뒤 현종은 개경으로 환도하는 과정에서 1011년 1월 26일에 전주에 들어와서 7일간 머무르다가 1011년 2월 3일에 전주를 떠나 삼례를 거쳐 개경으로 올라갔다. 고려시대에 전라북도 완주 지역은 몽골의 침입을 받아 피해를 보기도 했으며,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를 보았다. 특히 1380년(우왕 6) 7월에는 왜구가 서주[서천], 부여, 유성, 운제[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일대], 고산[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일대], 금주(錦州), 옥천, 함열, 풍제를 노략질했다. 이때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화산면 지역이 왜구의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다. 『고려사』에 고산현과 운제현의 인물로 고의화(高義和)와 차달(車達) 3형제가 등장한다.
[조선시대]
1392년(태조 1)에 조선이 건국되면서 행정구역에 많은 개편이 이루어졌다. 운제현은 1392년에 고산현과 통합되었으며, 우주현, 이성현, 재남소, 양량소 등은 전주에 통합되어 직촌화 되었다. 이 결과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는 전주와 고산현 두 개 고을이 있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일본군이 전라도 방향으로 침입하려 하자 전라감사 이광(李洸)은 전라도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서 전라도 관내 관군을 동원해 이치(梨峙)에서 남원에 이르는 지역에 방어망을 구축했다. 일본군은 금산을 점령하고 용담과 진안을 거쳐 전주로 침입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1592년 7월 8일부터 10일까지 이복남(李福男), 황박(黃璞), 정담(鄭湛), 황진(黃進) 등이 웅치(熊峙)와 안덕원(安德院)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어 금산에 있던 일본군이 주변을 노략질하고 이치를 넘어 전주 또는 충청도 방향으로 진출하려 하자, 1592년 8월 경에 권율(權慄), 황진, 공시억(孔時億) 등이 이치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들 전투에서 승리해 전라도 지역으로 일본군이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정유재란 때는 일본군이 우선적으로 전라도 지역을 점령하려고 했다. 그래서 일본군은 1597년(선조 30) 8월 16일에 남원성을 점령하고, 1597년 8월 25일에는 전주를 점령했다. 이후 일본군의 좌군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약탈을 하고, 우군은 충청도로 북진했다. 1597년 9월 7일에 우군은 충청도 직산에서 패해 남하했고, 좌군도 금구 방면으로 퇴각했다. 1597년 9월 14일에 금구싸움에서 전라도 조방장 원신(元愼)과 김언공(金彦恭)이 승리했으므로 이후 일본군은 해안으로 내려갔다. 이 과정에서 완주 지역의 여러 곳이 많은 피해를 보았다. 한편 임진왜란 기간 동안에 완주 출신의 여러 사람들이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병자호란 때는 당시 전라감사였던 이시방(李時昉)이 호소사(號召使) 정홍명(鄭弘溟)과 함께 의병을 모집해 청주와 과천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때에도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많은 의병이 일어났다. 1860년(철종11)에 최제우(崔濟愚)가 설립한 동학은 이후 전라도 지역으로도 많은 포교가 이루어져 신자들이 급증했다. 동학교도들의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과정에서 1892년(고종 29) 1월에 삼례에서 1차 교조신원운동이 발생했다.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도 농민군은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도 많은 항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고산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으며, 농민군은 전라북도 완주군 대둔산에서 최후의 항쟁을 벌이기도 했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고종이 전국을 23부로 나누면서 전주부 산하에 전주군과 고산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1910년 8월 29일[경술국치일]에 국권을 빼앗기고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한반도를 지배하게 된 일본은 1914년 3월 10일에 제도개혁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4월 1일에 고산군과 전주군이 통합되고,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져 32면 657리가 20면 173리로 통폐합되었다. 1930년 6월 26일에는 상관면의 교동리 등 9개리와 이동면의 화산리·상생리·노송리·인후리·검암리의 각 일부가 전주면에 편입되었으며, 1931년 4월 1일에는 전주면이 전주읍으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1935년 10월 1일에는 전주읍을 전주부로 승격하고, 전주군을 완주군으로 바꾸었다. 또한 우림면과 난전면을 우전면으로, 삼기면을 고산면과 화산면에 나누어 소속시켰으며, 운선면과 운동하면을 운주면과 화산면으로 합했다. 1940년 10월 1일에 이서면 중 4개리와 조촌면 중 1개리가 전주부로 편입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이 있었으며, 소작쟁의 등 일본에 대한 항쟁이 많이 일어났다. 또한 완주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현대]
1956년 8월 1일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이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으로 승격되었고,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3호로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과 전라북도 완주군 우전면 2개 면과 전라북도 완주군 조촌면,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의 일부가 전라북도 전주시로 편입되어 전라북도 완주군은 1읍 12면 1256리로 되었다. 1961년 9월 1일 법률 제707호로 「지방자치단체에 관한 임시조치법」의 공포에 따라, 1961년 10월 1일 군 지방자치단체가 되었으며, 1966년 10월 26일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 경천출장소가 설치되어 1읍 12면 1출장소 125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전라북도 익산군 왕궁면 온수리 일부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에 편입되었고,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 일부가 전라북도 전주시 우아동에 편입되었으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면이 봉동읍으로 승격되어 행정구역이 2읍, 11면, 1출장소, 125리, 516분리가 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대성리·색장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 일부가 전라북도 전주시로 편입되었고, 전라북도 김제군 백구면 도덕리 일부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원동리가 전라북도 완주군 조촌면에 편입되었다. 1985년 10월 1일 전라북도 완주군 조촌면이 조천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7년 1월 1일 전라북도 전주시에 편입되었고, 1989년 4월 1일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경천출장소가 경천면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8월 1일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중리와 상림리가 전라북도 전주시에 편입되었고, 1994년 12월 26일에는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금평리의 일부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현재 2개 읍, 11개 면, 106개 리로 되어 있으며, 당시 군청 소재지는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에 있었다. 2005년 10월 28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일원이 전라북도 혁신도시로 선정되었다. 2012년 7월 2일에 완주군청을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운곡리[현 용진읍 운곡리]로 이전했으며, 2015년 10월 1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이 용진읍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