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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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川里 |
영어공식명칭 | Geumch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금천리(琴川里)는 밀양시 산외면의 서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의 다죽리와의 경계에는 화지산[177.3m]이 있으며, 서쪽으로 엄남천이 남기리와 경계를 이룬다. 남쪽으로 단장천 유로를 사이에 두고 활성동과 마주 보고 있다. 북쪽으로 화지산을 사이에 두고 남기리 및 다죽리와 접하고 있다. 북쪽에 화지산이 있고 남쪽에 단장천이 흘러서 지세는 북고남저의 형태를 보인다. 자연 마을로 대촌마을, 신기마을, 화동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금천리의 지명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에 천화면(穿火面)에 속한 리로 기록되어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명은 마을 앞의 넓은 들을 거문고들이라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천리와 죽서리(竹西里) 일부를 합쳐 경상남도 밀양군 천화산외면 금천리가 개설되었다. 죽서리는 당시 남기리에 속하였던 화동마을에 해당한다. 1918년 천화산외면이 산외면으로 개칭되어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금천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의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가 되었다.
금천리의 취락은 화지산 남쪽 산록에 형성되어 있다. 중심 마을인 대촌은 가장 먼저 형성된 곳으로 일명 ‘와야(瓦野)’ 혹은 ‘와우(臥牛)’로도 부른다. 조선 후기 합천이씨와 여주이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신기마을은 대촌 앞들 가운데에 있다. 즉, 일제강점기 농지를 개량하면서 농막이 세워졌던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났다. ‘새터’라고도 한다. 화동마을(華洞마을)은 조선시대 남기리에 속하였던 마을이다. 지명은 마을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전한다.
[자연환경]
금천리의 주산에 해당하는 화지산은 산외면의 중산의 줄기가 남쪽으로 이어지다가 말단부에 솟아 있는 구릉성 산지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단장천도 완만한 구배로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국을 보인다. 단장천 유역에 형성된 넓은 충적지는 토질이 비옥하여 농업이 발달하였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244가구, 448명[남자 233명, 여자 2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금천리의 농업은 단장천 유역에서 벼농사와 시설농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금천리의 중앙을 밀양대로인 국도 제24호선이 동서로 지나고 서쪽에는 대구부산고속도로의 밀양IC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923년에 설립된 산외초등학교가 있다. 산외초등학교 앞 밀양 금천리 팽나무[수령 290년]는 1982년 11월 10일 밀양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유번호 12-13-6-1호]. 관내에 동밀양농협과 경상남도민물고기전시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