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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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山里 |
영어음역 | Song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귀남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송산리는 정실(正室), 우복동(牛伏洞), 중구당(中九堂), 까치골(일명 깐치골)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송산은 자연마을인 정실과 명산 마을을 통합하면서 정실과 명산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정실은 예전 마을에 도둑이 심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부터 도둑이 없어져 안락하게 살게 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송(正松)이라고도 한다.
우복동은 마을 모습이 소가 엎드려 누운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추운 섣달 어느 날 소가 푸른 풀을 물고 누워 죽었다 하여 우복동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우복동(牛福洞), 오복동(五福洞)이라고도 한다.
중구당은 마을 술집에서 한량들이 밤낮으로 두드리는 둥구당 장구 소리가 그칠 사이 없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음운 변화를 겪어 중구당이 되었다. 선지도사가 이곳 산세가 깨끗하다고 한 데서 명산(明山)이라고도 부른다. 까치골은 마을에 나무마다 까치가 와서 둥지를 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1900년경까지 까치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산외방(山外坊) 재부동(在府洞) 50리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송, 명산, 중구, 백복(柏伏)을 병합하여 송산동이라 하고 선산군 산동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동이 이(里)로 바뀜에 따라 산동면 송산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정실을 중심으로 동남쪽에 연봉(鳶峰)이 있고, 연봉 밑에 송산지(松山池)가 있다. 남쪽에 김해시 진례면 송현리, 서쪽에 산동초등학교 송백분교가 있다. 북쪽의 송산천(松山川)을 따라 우복동, 까치골, 중구당이 자리 잡고 있다.
[현황]
산동면 북부에 있는 마을로, 2007년 8월 1일 현재 총 51가구에 116명[남 58명, 여 5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경주손씨, 김해김씨, 한산이씨, 선산김씨, 인동장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거주한다. 1972년 송산교가 가설되었고, 1990년 정실들 경지 정리가 이루어졌다. 지방도 923호선이 마을을 지난다.
의료기관으로 송백진료소가 있으며, 유적으로는 정송사지(正松寺址)에 많은 기석과 기단, 파손된 탑이 남아 있다. 정실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서 동제를 지내 오다가 1970년부터 폐지하였다.
주요 지명으로 용이 솟은 흔적이 있다는 용솟음산, 말 머리와 닮았다는 말바우 등이 있다. 마을에 전해 오는 전설에 따르면, 정실의 정송지 윗골 7부 능선 암벽 밑에 정실샘이 있었는데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깊고 사방 열 자가 넘을 정도로 넓었다고 한다. 샘물의 약효가 매우 좋아 전국에서 피부병 환자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정실샘 어귀에는 부잣집이 있었는데 매일 많은 손님을 치르느라 지쳐 있던 어느 날 부잣집 말이 정실샘에 빠져 죽자, 부잣집에서 정실샘을 메우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그 이후로 부잣집은 가세가 기울어 결국 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