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613 |
---|---|
한자 | 高敞農樂-小鼓- |
영어음역 | Gochang Nongak[Sogo] |
영어의미역 | Gochang Farmers' Music[Small Drum]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성남리 41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훈 |
[정의]
현대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소고춤.
[개설]
고깔소고놀이는 머리에 고깔을 쓰고 삼채가락에 맞추어 춤을 흥겹게 추는 것으로, 가락의 진행과 상황 전개에 따라 즉흥적인 동작을 유연하게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창농악 소고의 특징]
고창농악은 예로부터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등의 지역] 지역에서 해변을 끼고 형성되었다. 고창농악은 일반적이면서도 잡색놀음이 다양하다. 고창농악의 가장 큰 특징은 쇠가락과 장구가락, 고깔소고춤 그리고 잡색놀이이다. 풍성하면서도 음악적 색깔이 짙은 삼채가락, 질굿가락만 들어봐도 고창농악의 특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굿거리 가락에 맞추어 추는 소고춤은 소고잽이의 멋이 가장 우러난 대목이며 반굿거리와 된굿거리에서의 다양한 동작은 ‘꾸리북’리라고 불리는 동작과 어우러져 고깔소고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1998년 고창농악은 정창환 고창농악[소고]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정창환 고창농악 소고]
2010년 현재 고창농악 소고 기능 보유자는 정창환(鄭昌煥)[1923~]이다. 정창환은 지금의 고창군 대산면 성남리에서 태어났다. 같은 마을에 살았던 당골인 선기산과 성송면 암치리에 살았던 고깔소고 명인 강모질로부터 고깔소고춤을 사사하였다.
정창환은 15세 때부터 동네에서 꽹과리와 소고를 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도 동네에서 장구를 잘 치는 사람이었다. 선기산에게 굿거리 가락의 소고춤을 배우고, 당시 고창에서 가장 유명한 강모질의 소고춤과 김양술의 소고춤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나무하러 가서도 소고춤 흉내만 낼 만큼 소고춤에 푹 빠져버릴 정도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하였다. 그 후 18세에 이북으로 넘어가 5년 동안 생활하다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일본으로 징용을 갔다.
해방이 되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25세 때부터 상쇠를 시작하였다. 마을에서 상쇠를 하면서 매굿, 줄굿, 줄감기, 당산굿, 풍장굿 등을 중심적으로 이끌기도 하였다. 이 무렵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다. 이후 1989년 고창문화원에서 고창농악단을 창설할 때 황규언 밑에서 부쇠를 맡아 활동하였다. 하지만 당시 수법고를 마땅히 할 사람이 없어 쇠를 그만두고 수법고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제2의 활동을 하게 되었다. 고창뿐만 아니라 영광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였는데, 이때는 주로 각종 대회의 수법구로 참가하였다.
이후에도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과 화성백중제 명인전, 수원 민족예술제 명인전, 서울놀이마당의 초청 공연을 통해 고창의 고깔소고춤을 보여 주는 전국적인 활동을 하였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동리 국악당에서 농악 강사를 하면서 고창농악과 고깔소고춤을 가르쳤고, 고창농악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1999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에는 고창농악전수관에서 제자들을 길러냈다. 제자로는 고창농악전수관에서 소고를 가르치는 임성준과 문현주가 대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이들이 고깔소고춤 전수의 최선봉에서 전국에 고창의 고깔소고를 알리고 있다.
정창환은 1992년 제11회 시·군 농악경연대회에서 소고 부문 개인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 제18회 남도 국악제에서 소고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1997년 제23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농악 부문 특별 개인상, 1998년 전주대사습놀이 농악 부문에서 고창농악이 대상을 받을 때 수법구로 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