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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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음역 | Cheongdonggi Sidae |
영어의미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상균 |
[정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개설]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는 벼농사의 시작과 더불어 청동기가 유입되고 전쟁이 시작되는 3,000년 전부터 2,000년 전의 시기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청동의 주조술이 전래되어 무기나 장신구 등이 제작되었다. 또한 나무의 벌채로 인하여 대규모로 자연의 변화가 개변이 시작되었으며,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민무늬 토기의 유행과 함께 방직기술 등 생업의 변화도 이루어졌다.
생활 유적인 주거지는 송국리형 주거지가 주류를 이루며 예지리, 우평리, 산정리, 죽림리, 성남리Ⅳ, 삼인리, 남산리, 교운리 유적 등에서 주거 유적이 조사되었다. 묘제는 돌널무덤[석관묘], 독무덤[옹관묘], 고인돌[지석묘]이 축조되었다. 이중 고창에서 주류를 이루는 고인돌은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으로 분류되며, 유물은 타 지역에 비해 부장되지 않는 편이다. 고창에서는 죽림리, 상갑리, 운곡리, 상금리, 계산리, 삼인리, 암치리 고인돌군 등 205개 군집 지역에 1,665기가 보고되고 있다. 또한 죽림리 매산마을 일대는 고인돌의 밀집도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호되고 있다.
[주거지]
청동기 시대 주거지는 주로 낮은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근래에 석교리Ⅱ 유적에서 2기, 오호리 신지매 유적에서 2기, 우평리 유적에서 2기, 율계리 유적에서 5기가 조사되었으며, 기존의 죽림리, 남산리, 예지리, 우평리, 산정리, 성남리 Ⅳ, 삼인리, 신덕리, 교운리 등에 많은 유적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 많으며, 내부의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시설되어 있는 전형적인 송국리형 주거지이다.
예지리의 경우를 예로 들면, 주거의 바닥면에 점질토를 입힌 다음 경화 처리하였고, 내부의 중앙에서는 양쪽으로 2개의 주공이 있는 타원형의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1호 주거지에서 민무늬토기, 갈판, 석촉, 옥이 출토되었고, 2호 주거지에서는 민무늬토기, 홍도편, 삼각형 석도, 석촉, 석착, 갈판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산정리의 경우는 3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으며, 평면 형태는 원형, 방형, 말각방형 등 다양한 구조를 보이기도 한다.
[고인돌]
고인돌의 입지는 대개 평지 보다 약간 높은 산기슭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전방에 농경지가 펼쳐지고, 하천이 있는 지역이 많이 선정된다. 이러한 입지에 선정되는 것은 선조들이 후손을 보호해 준다는 관념에서일 것이며, 묘지 선정에 있어서 조상 숭배 의식이나 규율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창은 한반도 최대의 고인돌 밀집 지역이며, 특히 상갑리, 죽림리 매산마을 일대는 가장 높은 밀집도를 보이고 있다. 전라도 일대에는 주로 바둑판식[남방식] 고인돌이 산재하는데 비해, 고창 지역의 도산리, 상갑리, 죽림리 등지에서는 일부 탁자식[북방식] 고인돌이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도산리의 탁자식[북방식] 고인돌은 제단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 상석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방형, 제형, 원형, 타원형, 장타원형, 삼각형, 부정형 등 다양하다. 이중에 방형이 가장 많은 양상이다. 상석의 무게에 있어서는 규모가 작은 것도 있지만 30~50톤 정도의 중·대형도 상당수에 이르며, 지석은 4지석이 기본을 이룬다. 고인돌의 묘역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고창의 경우는 확실한 경계석이 없으면서 조잡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축조 형태는 부석형을 보이고 있다. 또한 매장 주체부는 지상석곽식과 같은 바둑판식[남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