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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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山里 |
영어음역 | Yong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상휘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용산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주위 산세가 용의 형국이므로 용산(龍山)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흥덕군 이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용산·신덕(新德)·반정(盤亭)을 병합하여 용산리라 하고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라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자연환경]
용산 서남쪽에 산세가 닭이 우는 형국인 계명산(鷄鳴山), 용산 뒤쪽에 건기봉(建祺峰)[일명 건지봉, 노적봉]이 솟아 있다. 건기봉은 굴치(掘峙)[일명 굴재, 구을치, 구을현] 북쪽 장군봉의 장군이 이곳에 기를 꽂을 것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용산 동북쪽에 부안면 상등리 상굴로 넘어가는 굴치가 있고, 굴치 서남쪽에 아산면 용계리로 넘어가는 소굴치[일명 작은굴재]가 있다. 계명산 중턱에 탕건 모양의 탕건바우가 있다.
용산 남동쪽에 먹방골, 용산 동북쪽에 배바우가 있는 배바웃골, 계명산 동쪽에 욧골, 용산 북쪽에 수월골[일명 절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수월골에는 주춧돌과 기와 조각이 남아 있는 수월사 터가 있고, 수월사 터 뒤 골짜기에는 높이 약 7m의 수월폭포가 있다. 소굴치 밑에 굴번들이 있고, 용산 남서쪽 200m 지점에 예전 법당이 있던 법당배미, 법당배미 아래쪽에 소나무가 울창한 아래쪽이 된다는 솔안밑 등의 논이 있다. 연기동(煙起洞) 앞 장숫강에 나루터가 있었다.
[현황]
용산리는 부안면의 남부에 있다.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12.36㎢로 밭 0.5㎢, 논 0.64㎢이며, 201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총 148세대에 293명[남 138명, 여 1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연기리·용산리·용흥리 3개의 행정리와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굴치·바우배기·수래냉기·용머리 등의 마을도 있다. 굴치는 굴치 밑에, 수래냉기는 굴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바우배기는 용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지금의 모정 앞에 큰 바위가 박혀 있어서, 연기동은 용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 연기사(烟起寺)가 있어서, 용머리는 용산 머리 쪽에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바우배기 서쪽 골짜기에 백운암 터가 있고, 연기동 북쪽 소요산에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는 연기사 터가 있다. 문화 유적으로 진흥왕 때 창건한 소요사(消遙寺), 소요사 경내에 소요사 부도, 연기동에 선비 김공배(金公培)의 효행을 기려 1906년(고종 43) 내린 김씨정문(金氏旌門)이 있다. 용산리에 국도 22호선과 지방도 734호선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