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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580
한자 百中
이칭/별칭 망혼일,백종,백종절,중원일,호미씻이,머슴날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집필자 육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음력 7월 15일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음력 7월 15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개설]

백중(百中) 은 조상 영혼의 천도와 일꾼들의 여름철 농촌 축제라는 이중의 의미가 담긴 날이다. 이를 망혼일(亡魂日), 백종(百種), 백종절(百種節), 중원일(中元日) 등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원래 불가의 5대 명절 중 하나로서, 주로 자손이 없어 공양을 받지 못하는 망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온갖 과일과 채소를 갖추고 재(齋)를 올렸다. ‘백중’이라는 명칭 자체가 음력 7월 15일 때쯤 온갖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백 가지의 곡식 씨앗을 갖추어 놓은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민간에서는 백중 무렵 논매기가 일단락되어 호미를 씻고 머슴들에게 하루를 쉬게 하기 때문에 ‘머슴날’이라고도 하였다. 백중은 농민들이 음식이나 술을 먹으며 놀이를 즐기던 2대 농민 축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백중 에 대해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는, 백종에 승가에서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고 사찰에 부녀들이 모여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지냈다 한다. 1782년(정조 6) 정창순(鄭昌順)[1727~?]이 편찬한 『송도지(松都誌)』에는, 남녀가 주식(酒食)을 차려 놓고 삼혼(三魂)을 부르니 우란분재(盂蘭盆齋)의 고풍이라고 하였다. 우란분재는 아귀도에 떨어진 망령을 위하여 여는 불사(佛事)로서, 음력 칠월 보름을 앞뒤로 한 사흘간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조상이나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또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백종절에 백종의 꽃과 과일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복을 빌었기 때문에 백종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민간 풍속까지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망혼일’이라고 하여 여염집에서 중원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갖추어 죽은 어버이의 혼을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조선 전기의 『용재총화』를 비롯하여 후대의 세시기에 이르기까지 백중은 불교적인 의례가 행해진 날로 쓰여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유중림(柳重臨)의 『증보 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와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천일록(千一錄)』에 호미씻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백중이 조선 중기까지는 불교적 의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농사의 유구성을 생각하면, 백중이 불교적 의례일로 정착되기 이전에도 우리 고유의 농경의례가 행해지던 날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절차]

1993년 서울특별시에서 간행한 『서울 민속 대관』의 「놀이의 실상 일람」에는 도봉구 번 2동에 5대째 거주하는 주민 윤수환[남, 66]이 증언한 백중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곳은 논농사를 주로 하던 지역이기 때문에 5월 단오나 6월 유두, 7월 백중 등에는 여전히 바쁘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그런 명절을 중요시 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7월 15일의 백중일에는 대규모의 씨름 대회나 두레놀이 등이 있었으나 이곳에는 아무 행사도 없었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백중 때는 밭이나 논의 김매기가 거의 끝나고 비교적 한가한 시기여서 잠시 농사일을 쉬게 하고 술, 떡, 적과 같은 음식을 장만하여 마을 안에서 한바탕 놀거나 산이나 계곡을 찾아가서 먹고 마시고 풍물을 치며 하루를 즐겁게 놀고 호미를 씻어 치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백중씨름 대회를 여는 곳이 많았다. 중랑구의 경우 보름이나 계속되는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도봉동에서는 백중이면 농사가 일단락되었다고 하여 여유 있는 농가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술과 떡을 내어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즐겼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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