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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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漁祭 |
영어공식명칭 | Ritual for Big Catch of Fish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대영 |
의례 장소 | 안섬 포구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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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한진 포구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한진리 |
성격 | 동제 |
의례 시기/일시 | 매년 정월 진일(辰日)|정월 초하루 |
신당/신체 | 용신 |
[정의]
충청남도 당진에서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지내는 마을 제의.
[개설]
바다는 육지와 달리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풍어제를 통해 풍어를 기원하면서, 동시에 항해의 안전을 기원했다. 특히 서해안권에서의 풍어제는 인근 태안군의 황도 붕기 풍어제와 함께 안섬의 풍어제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풍어제는 바다가 보이는 마을 뒷산에 당집을 마련하고 제사를 지낸다. 안섬 당제는 격년으로 대제와 소제를 번갈아 가며 지내며, 한진리 당제는 윤년을 제외한 평년에 제사를 지낸다. 풍어제는 당집에 당주와 선주들이 올라가 마을과 개인배의 축원, 소지를 올리고, 자신의 배에 배고사를 지내는 형태로 진행된다. 풍어제는 준비 과정을 통해 이웃과 화합하며 제사 과정을 통해 어업 생산 활동에 안심하고 임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해안가의 많은 마을에서 풍어제를 지냈으나 6·25 전쟁을 전후해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송악읍의 안섬과 한진리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풍어제는 어업의 역사와 같을 정도로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섬의 경우 400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별도의 근거는 없다.
[신당/신체의 형태]
물과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 용으로 상징된다. 특이한 점으로는 송악읍의 안섬을 중심으로 한진리와 성구미 마을의 당신들이 부부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안섬이 당할아버지, 한진이 큰부인, 성구미가 작은부인으로 되어 있다. 또한 서해안 조기잡이에 참여한 영향으로 임경업 장군에 대한 신앙 역시 남아 있다. 당집에 장군당이 따로 모셔져 있기도 하다.
[절차]
안섬 당제의 경우 전년도 그믐에 제관과 당제일을 정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제사에 필요한 비용은 주민들이 나누어 부담한다. 제물은 일반적인 제례 행사와 유사하며 술은 조라술이라 하여 술을 담가 당집 안에 두었다가 사용한다. 제물에 돼지는 쓰지 않는다. 돼지는 용과 유사한 뱀과 상극이기 때문이다. 제사 전날 무당과 화랭이, 광대 등을 부르는데, 무당은 당주 집에서 잔다. 선주들은 뱃기를 모두 모은다. 다음 날 오후 선주들은 큰 배 순서대로 제당으로 오른다. 기를 당집 앞에 세워 두면 선주들은 제배하고 무당은 굿을 한다. 밤새 축원과 소지를 올리는데, 소지가 불에 다 타서 천장까지 올라가야 좋은 것이라 믿고 있다. 다음 날 배고사와 거리굿, 샘굿 등으로 이어진다. 배고사는 당제를 지냈던 제수 용품을 선주들에게 나눠 주고, 이를 가지고 선주들은 뱃기와 함께 자신의 배에서 고사를 지낸다. 이어서 마을 우물에서 샘굿을 하며, 장승제를 지내며, 거리굿을 한 뒤 풍어굿이 마무리된다. 한진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차이점은 한진리 당제에서는 당이 할미당이라 당주를 감주식으로 단술로 담았다는 점이며, 소를 잡아 산적을 했다는 것이다. 한진리 당제는 오늘날 대동계가 사라지며 마을의 가장 큰 조직인 어촌계에서 주관해 당제를 준비한다.
[축문]
풍어제의 경우 별도로 조사된 축문이 없다.
[부대 행사]
안섬 당제의 경우 마을 축제로서 농악 공연과 줄타기 등 공연을 함께 개최하기도 하였다.
[현황]
당진에는 고대면 당진포 2리 해창, 석문면 교로리, 소난지도리, 장고항리, 우강면 신촌리, 신평면 운정리, 송악읍 고대리[안섬], 도원리, 한진 1리 등에서 풍어제가 있었다고 한다. 고대면 당진포 2리의 경우 해창이 있는 당집에서 지냈다.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 새벽에 동네에서 제주로 뽑힌 사람과 부인이 함께 당집에 올랐다고 한다. 석문면 소난지도리의 경우 1년에 두 번 지내는데, 음력 2월과 9~10월에 크게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지속적인 간척 사업과 대규모 산업 단지 개발로 인한 환경의 변화와 6·25 전쟁 이후 사회상의 변화로 바닷가를 따라 다양한 마을에서 존재하던 풍어제가 현재는 자취를 감추고, 안섬과 한진의 풍어제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안섬의 경우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나 한진리 당제의 경우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어 조치와 지원, 기록화 사업 등이 시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