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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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二面 大栗里 全州 崔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형수 |
전구간 | 북이면 대율리 전주 최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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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북이면 대율리 전주 최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
성격 | 집성촌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는 전주 최씨 문열공파 득평계의 집성촌.
[개설]
최순작(崔純爵)을 파조로 하는 전주 최씨(全州 崔氏) 문열공파의 6세 최득평(崔得枰)[1260~1334]이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며 새텃말 다락말, 증촌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1750년(영조 26)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최득평의 묘지명에 의하면 최득평이 1319년 이후 대율리에 복거(卜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득평의 부인 청주 곽씨가 곽예(郭預)[1232~1286]의 딸이었고 곽예의 묘가 대율리에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청주 입향에 처가가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득평의 입향 이후 후손들은 대율리에 대대로 살면서 15세 최명길(崔鳴吉)[1586~1647]과 17세 최석정(崔錫鼎)[1646~1715] 등 저명한 인물을 다수 배출하였다. 이웃한 용계리 전주 이씨와 진천군 초평면의 경주 이씨와 혼맥이 거듭되면서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소론 가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명칭 유래]
대율리(大栗里)는 최득평의 묘지명에 ‘다율리(多栗里)’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대율과 다율이라는 한자를 통하여 큰 밤이 나거나 밤이 많이 나는 마을이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본래 전주 최씨는 새텃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최명길 묘소 주변 대배미[대뱀이]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배미는 ‘대밤[大栗]이’가 변형된 말로 골짜기 이름이면서 대율리의 모든 마을을 통틀어 부르는 지명으로도 쓰이고 있다.
대율리의 마을인 새텃말, 다락말, 증촌은 모두 전주 최씨 집성촌이다. 대율리 중앙에 자리한 새텃말은 새로운 터에 조성된 마을이라는 의미로 전주 최씨가 대배미에서 옮겨 살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새텃말 남쪽에 있는 다락말[누촌(樓村)]은 대율리에서 가장 높은 용건재라는 산에 감시용 다락[望樓]이 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또는 ‘다락’을 지명에서 높다[高]나 산(山)을 뜻하는 ‘달’과 관련지어 높은 곳에 있는 마을 또는 산마을로 풀이하기도 한다. 새텃말 동쪽에 있는 증촌은 1910년대에 작성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鄭村/증촌’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득평의 묘지명을 보면 최득평을 장사 지낸 곳이 방정촌(方井村) 동산 남쪽 기슭으로 확인되는데, 이를 근거로 ‘증촌’은 ‘방정촌’에서 ‘방’ 자가 빠진 ‘정촌(井村)’에서 변한 말이라는 견해가 있다. 근래 어떠한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경촌(景村)이라 부르고 있다.
[자연환경]
대율리는 북동쪽이 낮은 구릉지로 되어 있으나, 남서쪽은 석화천에 접하여 평야가 발달하였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