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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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二面 長才里 達城 徐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장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형수 |
전구간 | 북이면 장재리 달성 서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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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북이면 장재리 달성 서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장재리 |
성격 | 집성촌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장재리에 있는 달성 서씨의 집성촌.
[개설]
달성 서씨(達城 徐氏) 7세 서도(徐渡)를 파조로 하는 학유공파(學諭公派)의 11세 서한종(徐韓宗)이 장재리 배나무골에 입향하였다고 전하며, 후손들이 장재리의 배나무골, 새말, 장재동 등에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루었다.
[명칭 유래]
달성 서씨는 본래 배나무골 동쪽 골짜기에 있는 텃골이 세거지였는데, 장재리로 마을을 옮기면서 ‘배나무골’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가져오고 예전 자리는 텃골로 부르게 되었다. 배나무골은 충청도 방언으로 배낭골이라고도 불렀으며, 한자로는 ‘이동(梨洞)’이라 표기하였다. 새말은 배나무골 동쪽에 있으며 새로 생긴 마을을 의미한다. 배나무골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장재동은 예전에 여덟 가구의 장자(長子)가 살아서 마을 이름을 ‘장자동(長子洞)’이라고 하였으며, 변하여 ‘장재동(長財洞)’이 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한자를 바꾸어 ‘장재동(長才洞)’이 되었다. 1910년대에 작성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장재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환경]
장재리 북쪽은 낮은 구릉지로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 남쪽은 부연천이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면서 들판이 펼쳐져 농경지를 이루고 있다.
[현황]
달성 서씨는 한때 장재리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인근 마을까지 포함하여 대략 150호 정도가 거주하였으나 2023년 현재 많이 감소한 상태이다. 최근 장재리 남쪽 일대를 포함하는 북이산업단지가 2026년 준공 예정으로 조성되고 있어서 촌락 환경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