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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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 崔氏 |
영어공식명칭 | Gyeongju Cho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본관 | 경주 최씨 본관 - 경상북도 경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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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주 최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구룡리 |
세거|집성지 | 경주 최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구룡리 |
성씨 시조 | 최치원 |
입향 시조 | 최응허|최경연 |
[정의]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응허와 최경연 부자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최씨는 시조인 최치원(崔致遠) 이전에 분파된 본관으로는 개성, 삭녕, 동주, 전주가 있고 이후 함양, 청주, 충주, 강릉, 화순, 해주, 진주 등이 분파하였다. 현재 경주 최씨(慶州 崔氏)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전하는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하고, 최치원을 시조로 한다. 오래된 연원만큼 분파도 다양하여, 관련 종친회는 경주최씨중앙종친회[서울 종로구]와 경주최씨총대종회[서울 중구], 경주최씨대종회[경주]로 나뉜다. 경주최씨총대총회에서 제공한 계파도에 따르면 1세 최치원의 아들 최은함(崔殷含)과 최윤순(崔允順), 그리고 2~7세를 실전하여 8세부터 이어진 세계, 또 중조 최언위를 따로 나눈 세계가 있다.
[입향 경위]
청주 지역 경주 최씨의 세거지는 문의면 구룡리로 세칭 ‘오룡동’으로 알려져 있다. 오룡동에 입향한 시기는 병자호란 때의 순절 충신인 최응허(崔應虛)와 최경연(崔慶淵) 부자 때로 보인다. 최응허와 최경연 부자는 병자호란 이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의관(衣冠)으로 혼을 불러 장례를 치르고 묘소는 문의 남쪽 오룡동 뒤쪽에 썼다고 한다. 조정에서 순절 사실을 듣고 통훈대부 군자감주부에 증직하였다. 최경연의 부인 진주 강씨는 승지 강귀년(姜龜年)의 손녀이고, 참봉 강순(姜恂)의 딸이다. 가동 황웅남(黃雄男)이 전장에서 돌아와 남편의 순절을 알리니 어린 아들들을 이끌고 검천에 달려가 남편의 시신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 진주 강씨가 주위에 아들을 맡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모두 충신 가문에 또 열부가 있다고 하였다. 숙종 때 지역 유림들이 상소하였으나 명정되지 못하고 1861년(철종 12) 비로소 정려가 내려졌다. 진주 강씨가 세 아들을 외가에 맡긴다고 한 기록을 보면 원래 문의 일대 진주 강씨 세거지에 경주 최씨 일문이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청주목 성씨조에 화순, 삭녕 최씨와 함께 오른 것을 보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청주 지역의 유력 성씨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청주 거주 경주 최씨는 2000년 1만 4463명으로 전체 여섯 번째이다. 당시 총 인구 70만 1256명 대비 2% 정도이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