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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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川 蔡氏 |
영어공식명칭 | Incheon Cha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37년 - 채무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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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94년 - 채무이 사망 |
본관 | 인천 채씨 본관 - 인천광역시 |
입향지 | 인천 채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
세거|집성지 | 인천 채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외남동 |
성씨 시조 | 채선무 |
입향 시조 | 채무이 |
[정의]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무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인천 채씨(仁川 蔡氏)의 시조는 채선무(蔡先茂)이다. 선계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채선무는 고려 때 동지추밀원사에 추증되고 인천에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인천을 관향으로 삼았다. 10세손 채귀하(蔡貴河)는 호가 다의당(多義堂)으로 인천 채씨의 중시조이다. 채원길(蔡元吉)의 아들로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이웃 고을에 살던 정몽주와 교유하였고, 벼슬길에 올라서는 제학을 연임하고 가선대부 호조전서에 이르렀다. 고려가 망하자 여러 인사들과 부조현을 넘어 만수산 두문동에 들어갔다. 이후 평산군 목단면의 다의현으로 옮겨 가 다의현에서 사망하였다. 후세에 채귀하의 절의를 기려 정의라 시호가 내려졌고 의현사(義峴祠)를 세웠다.
[입향 경위]
16세손 채무이(蔡無易)[1537~1594]는 자가 중유(仲由), 호는 신촌(新村)인데 생원으로 세자익위사시직을 지냈다. 1579년(선조 12) 43세의 나이로 생원에 입격하였는데, 이때 거주지는 청주였다. 부인은 청풍 김씨와 순천 김씨인데, 청풍 김씨는 자식이 없고 순천 김씨는 채종길(蔡宗吉)을 낳았다. 채무이가 청주로 입향하게 된 뚜렷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부인 청풍 김씨는 우후 김숭의(金崇義) 딸로 오창에 살고 있었다. 김숭의는 충비(忠婢) 삼월(三月)이 길렀다고 하는 김윤(金潤)의 아들이다. 첫째 부인 청풍 김씨가 후사를 잇지 못하였지만 채무이는 청풍 김씨의 고향으로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인천 채씨의 청주 지역 세거지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외남동 일대이다. 청주국제공항 건설과 도로 개설 등으로 묘소의 이장과 주민의 이동이 심한 곳으로 현재 인천 채씨의 족세는 크지 않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