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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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義 李氏 |
영어공식명칭 | Jeonui Le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용 |
[정의]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정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전의 이씨(全義 李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이도(李棹)이다. 이도는 고려 통일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익찬 2등 공신 삼중대광태사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候)에 봉하여졌다. 공주 출신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자 공주에 이르렀을 때 금강이 범람하여 멈추자 도강 방법을 주도한 공으로 ‘도(棹)’라고 사명(賜名)하고 공신 책록과 봉작(封爵)까지 받았다고 한다. 전산(全山)은 전의(全義)의 옛 이름인데 이도는 전의의 이성산(李城山) 아래로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전의를 본관으로 하였다. 전의 이씨에서 예안 이씨가 분관되었다. 이후 후손 문의공(文義公) 이언충(李彦沖)과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 문장공(文莊公) 이혼(李混)의 후손에서 인물이 많이 나와 3대 인맥을 이루었다. 이도의 7대손 이혼은 원종(元宗) 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충선왕까지 섬기면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첨의정승(僉議政丞)으로 치사하였다. 호는 몽암(蒙菴)이다. 일찍이 영해부(寧海府)로 좌천되어 바다 가운데 뜬 나무 등걸을 가지고 무고(舞鼓)를 제작하였는데, 현재까지 악부(樂府)에 전하고 있다.
[입향 경위]
전의 이씨의 청주 입향조는 이정간(李貞幹)[1360~1439]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청주에서 여생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후손들도 세거하게 되었다. 이정간은 자가 고부(固夫)이다. 종3품 사헌부집의를 역임한 뒤, 1405년(태종 5) 강화부사로 부임하였고 이후 강원도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100세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직하고 청주에 있는 송천별서(松泉別墅)에 은거하면서 노모를 봉양하는 데 전심전력하였다. 특히 자신도 노령이면서 100세의 어머니 앞에서는 색동옷을 입고 병아리를 희롱하는 등 출천지효(出天之孝)로 이름이 높았다. 이정간의 효행은 『동각잡기(東閣雜記)』와 『청강선생후정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에 실려 있다.
[현황]
1930년도 국세 조사 통계 자료에 의거하면 전의 이씨는 오창면 학수리에 42가구가 거주하였다.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전의 이씨는 303가구, 894명이 거주하였다.
[관련 유적]
현재 청원구 오창읍 양지리에 송천서원이 있다. 내부에는 15명을 향사하고 있는데, 그중 전의 이씨 가문은 효정공 지중추 이정간, 북병사 청강 이제신, 도호부사 이효석이 있다. 송천서원 오른쪽에는 전의 이씨 전서공파 재실인 목양사가 있다. 내부에는 ‘목양사 묘정비’와 ‘충효재 중건기념비’가 나란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