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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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壤 趙氏 |
영어공식명칭 | Pungyang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윤용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13년 - 조백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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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82년 - 조백운 사망 |
본관 | 풍양 조씨 본관 - 경기도 남양주시 |
입향지 | 풍양 조씨 입향지 - 충청북도 청주시 |
세거|집성지 | 풍양 조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상장리 |
세거|집성지 | 풍양 조씨 세거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리 |
성씨 시조 | 조맹 |
입향 시조 | 조백운 |
[정의]
조맹을 시조로 하고 조백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풍양 조씨(豊壤 趙氏)는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낸 조맹(趙孟)을 시조로 한다. 『풍양조씨세보』에 따르면 조맹의 원래 이름은 조암(趙巖)이며 한양부 풍양현 사람으로 천마산 아래 은거하였다. 그러던 중 왕건을 만나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통합삼한벽상개국공신에 올라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후손들은 조맹을 시조로 삼고 출생지인 풍양(豊壤)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시조 이후에 세계가 실전되어 천화사전직(天和寺殿直)을 지낸 조지린(趙之藺)을 중조로 하는 전직공파(殿直公派)와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조신혁(趙臣赫)을 중조로 하는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나뉘었다. 또한 1978년 이후 합적한 조보(趙寶)를 중조로 하는 상장군파가 있다.
전직공파는 조선 말의 세도 정권을 이루었던 풍양 조씨 일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6세손 조염훈의 아들 삼형제가 다시 분파를 이룬다. 7세손 조사충(趙思忠)은 호군공파, 조신(趙愼)은 회양공파, 조임(趙衽)은 금주공파로 나뉜다. 회양공파는 15세 조흡(趙潝)의 둘째 아들 조중운(趙仲耘)의 후계가 크게 번성하였다. 18세손 조상경(趙尙絅), 19세손 조돈(趙暾)·조엄(趙曮) 형제와 조엄의 아들 조진관(趙鎭寬)의 후손이 크게 위세를 떨쳤다. 21세손 조만영(趙萬永)의 딸은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이다.
[입향 경위]
풍양 조씨의 청주 지역 입향 경위는 조흡의 큰아들 조백운(趙伯耘)[1613~1682]의 후손들이 청주 일원에 살면서부터이다.
[현황]
풍양 조씨는 현재 상당구 문의면 상장리, 흥덕구 강내면 태성리 등에 주로 세거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세거하는 후손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다.
[관련 유적]
조장하(趙章夏)[1847~1910]는 부모상을 당하자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임헌회의 학통을 이어 받아 낙론(洛論)을 계승·발전시켰다. 1910년 경술국치에 분노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솔잎으로 연명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49년 지역 유림들이 문의면 상장리에 기산사(箕山祠)를 세워 조장하를 제향하고 있다. 흥덕구 강내면 태성리에는 조동식(趙東植)[1873~1949]의 묘소가 있다. 조동식은 일제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23일부터 3일 동안 횃불 시위를 주도하였고, 그 결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